희 자 (누운 채 정아를 올려다보며) 정아야, 우리 델마와 루이스처럼 여행 가자. 이 집 팔아서.
정 아 (영화만 보며) 니 애들이 이 집 팔아, 너랑 여행 간다면 아이고 어머니 잘하셨네 하겠다.
희 자 (담담히) 돈 다 쓰면.. 죽을 때 될 건데, 애들이 뭐라든 알게 뭐야. (앉아서, 정아 보며) 근데, 넌 정말 니 남편이 신혼여행 때 약속한 둘만의 세계일주 할 거 같애? 만약, 니 남편이 안 가면?
정 아 (영화만 보며, 따뜻하게 웃으며, 덤덤히) 나라도 가야지.
희 자 (보며) ?
정 아 (영화만 보며, 담담하지만, 깔끔하게) 갈 거야, 나는. 혼자라도. 내가 울 엄마 평생 지지리 궁상으로 살다가, 결국엔 오 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요양원에 처넣던 날, 하늘에 두고 맹세했네. 난 엄마처럼 절대 요양원에서 갇혀 죽을 날 기다리진 않아야지.. 난 죽을 때 죽더라도 길 위에서 죽어야지...
희 자 멋있다... 길 위에서? 나랑 같이 죽자.
정 아 (보며, 좀 큰 소리) 죽을 때라도 따로 죽어. 평생을 뭐한다고 붙어 다녀?
---「2부」중에서
정 아 너 왜 그랬냐? 대체, 왜 죽을라 그랬어?
희 자 (창밖만 보며, 담담히, 작게 편한 웃음 띠고) 깨진 전구도 혼자선 못 가니까... 의사가, 망상도 있다 그러고, 이러다, 치매 걸리면... 우리 착한 민호도.. 결국엔 화내고 지치겠다 싶어서.. 그냥..
정 아 (속상한) 자식이 돼서 그만한 일은 해야지! 그래서 지금 니가 치매 걸렸냐?! 걸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란 소릴, 괜히 겁먹고! 나랑 같이 죽자며, 너 죽음 나는.. (눈가 붉어져) 나는!
희 자 (정아 보며, 눈가 붉어, 짠해 웃으며) .. 그러게.. 니가 있는데, 그지?!..
난 희 (속상해, 창문 열고, 바람 맞고)
정 아 그지는, 개그지 같은 게.. 의리 없는 년.
희 자 (씁쓸히 웃고, 창가 보며, 짐짓 편하게) ... 너무 좋다... 지금.. 이 순간이...
정 아 (속상한)
완 (백미러로 희자를 보게 되는, 착잡한, 가만 보는, N, 담담히) 나에게 희자 이모를 몇 마디로 정의하라면 아주 쉽다. 철없다, 막무가내다, 사차원이다. 그런데, 그런 이모가 자살 시도라니... 추하지 않으려 꽃단장을 하고, 혼자 밤길을 걸어 한강 다리 위에 섰을 쓸쓸한 이모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문득 한순간이고, 살고 싶은 이유도, 기껏 한강 다리의 불빛이나 바람 때문이라니.... 어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3부」중에서
완 (N) 어떤 사람의 인생도 한두 마디로 정의하면 모두 우스꽝스런 코미디가 되고 만다. 충남 이모도 예외는 아니다. (충남 얼굴에 포커스) 중졸 콤플렉스에, 자기도 늙은 주제에 늙은일 무시하며 젊은 애만 밝히면서, 정작 독거사를 무서워하는 한심한 꼰대! 그러나, 충남 이모가 그때까지 살아온 날들을 알게 된다면, 얘기는 다르다.
---「5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