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자가 제나라 재상이 되어 외출을 할 때에 마부의 처가 문틈으로 보니, 그 남편이 재상을 위하여 말을 모는데, 큰 덮개를 덮고 말 네 마리를 채찍을 휘두르면서 의기양양하여 심히 만족스러워하였다. 얼마 후 돌아오자 처가 헤어질 것을 청하였다. 그 남편이 까닭을 물으니, 처가 말하였다. “안자는 키가 6척이 되지 않으나 몸은 제나라의 재상이고 이름이 제후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첩이 보니, 그는 뜻과 생각이 깊고 항상 스스로를 낮춥니다. 지금 당신은 키가 8척인데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말을 몰면서, 당신의 뜻은 스스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첩이 이런 이유로 헤어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 후 마부는 저절로 기가 꺾여버렸다. 안자가 이를 괴이하게 여겨 물으니, 마부가 사실대로 말하였다. 안자가 그를 추천하여 대부가 되도록 하였다. ---「2편 관중안영전(管晏列傳)」중에서
오기는 장군이 되자 가장 신분이 낮은 사졸들과 같은 옷을 입고 식사를 함께 하였다. 잠을 잘 때에는 자리를 깔지 않았으며 행군할 때에는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자기가 먹을 식량을 친히 가지고 다니는 등 사졸들과 수고로움을 함께 나누었다. 언제인가 사졸 중에 독창(毒瘡)이 난 자가 있었는데 오기가 그것을 빨아주었다. 사졸의 어머니가 그 소식을 듣고는 통곡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대의 아들은 일개 사졸인데 장군이 친히 그 독창을 빨아주었거늘, 어찌하여 통곡하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그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 오공(吳公:오기)께서 그 애 아버지의 독창을 빨아준 적이 있었는데, 그이는 감동을 받고 전장에서 물러설 줄 모르고 용감히 싸우다가 적에게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오공이 지금 또 내 자식의 독창을 빨아주었다니, 난 이제 그 애가 어디서 죽게 될 줄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통곡하는 것입니다.” ---「5편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중에서
신이 듣기에 요임금은 그 소유하고 있던 땅이 3백 무(畝)를 넘지 못했고, 순임금은 그나마 손바닥만한 지척(咫尺)의 땅도 없었지만 천하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우(禹)임금은 백 사람이 사는 고을도 없었으나 제후들을 거느린 왕이 될 수 있었고, 상(商)을 세운 탕(湯)임금이나 주(周)를 세운 무왕(武王)은 삼천도 넘지 않은 무사들과 3백 승도 못되는 병거 및 3만도 안 되는 병졸들로 천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모두 참된 도리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밖으로는 적국의 강함과 약함을 헤아리고, 안으로는 자국의 사졸의 어질고 불초함을 분간하여 양군이 서로 대치하기도 전에 승패와 존망의 관건이 원래부터 자기의 흉중에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찌 일반 대중의 분분한 의론에 가려 혼미하고 분명하지 못한 태도로 국가의 대사를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9편 소진열전(蘇秦列傳)」중에서
얼마 지나서 문이 한가한 틈을 타서 아버지 전영에게 “아들의 아들은 무엇이라고 합니까?”라고 묻자, 전영은 “손자라고 한다.”라고 대답하였다. “손자의 손자는 무엇이라고 합니까?”라고 묻자, “현손이라고 한다.”라고 대답하였다. “현손의 손자를 무엇이라고 합니까?”라고 묻자, “알 수 없다.”라고 대답하였다. 전문이 말하였다. “군(君)께서 권력을 잡고 제나라에서 세 명의 왕에 걸쳐 재상직에 있었으나, 제나라는 그 영토를 넓히지 못하였습니다. 사저에는 만금의 부를 쌓았지만, 문하에는 한 명의 어진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장수의 집안에는 반드시 장수가 있고, 재상의 집안에는 반드시 재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후궁들은 무늬 있는 고운 명주옷을 늘어뜨리고 있지만, 선비들은 짧은 바지도 얻어 입지 못하고, 하인과 첩들은 쌀밥과 고기반찬을 남기지만, 선비들은 술지게미와 쌀겨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군께서는 남아돌 정도로 많은 것을 축적하여 알지도 못하는 후손들에게 전하는 것에 치중한 나머지 국가의 대사가 나날이 손상되는 것을 잊고 계시는데, 저는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이 이상합니다.” ---「13편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중에서
여러 장수들이 적의 머리를 벤 것과 포로를 바치며 축하하고는,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는 ‘산릉(山陵)을 오른편으로 하여 등지고, 수택(水澤)을 앞으로 하여 왼편으로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장군께서는 저희들에게 도리어 물을 등지는 배수진을 치라고 명령하시고, 조나라를 깬 뒤에 잔치하자고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마음속으로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이겼습니다. 이것이 무슨 전술입니까?” 한신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이것도 병법에 있는 것이다. 그대들이 살펴보지 않았을 뿐이다. 병법에 이런 말이 있지 않던가? 죽을 곳에 빠진 뒤에야 살게 할 수 있고, 망할 곳에 있어야 생존하게 할 수 있다. 또한 내가 평소부터 훈련받은 병사들을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았던 시장 바닥의 사람들을 몰아다가 싸우게 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들을 죽을 땅에 두어서 사람마다 자신을 위하여 싸우도록 만들지 않고, 이제 그들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땅을 준다면 모두 달아날 것인데, 어찌 그들을 쓸 수 있겠는가?” 여러 장수들이 다 탄복하여 “훌륭하십니다. 저희들이 미처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21편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중에서
태사공은 말하였다.
“나는 신농씨(神農氏) 이전의 일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시(詩)』나 『서(書)』에 쓰인 것을 보면, 우(虞)나라 하(夏)나라 이래로 사람들의 눈은 아름다운 것을 보려 하고, 귀는 즐거운 것을 들으려 하고, 입은 여러 좋은 맛을 보려고 하며, 몸은 편안하고 즐겁고자 하고, 마음은 권세와 영화를 자랑하려 한다. 이것들이 오랫동안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비록 집집이 세밀한 변론으로 설득하여도 감화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정치란 백성들을 자연스럽게 놔두는 것이고, 그다음은 이익으로 백성을 이끄는 것이고, 그다음은 가르침으로 깨우치도록 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정해주어 바로잡는 것이고, 가장 못난 정치는 백성들과 다투는 것이다.”
---「26편 화식열전(貨殖列傳)」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