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타임머신이 첫발을 내디딘 것은 바로 오늘 아침 열 시였습니다. 나는 타임머신을 마지막으로 점검해 보고, 모든 나사를 다시 죄고, 석영 막대에 기름을 한 방울 더 칠한 다음, 안장에 앉았습니다. 자살하려고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눈 채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하는 사람만이 그때 내가 느낀 기분을 이해하겠지요. --- p.34
“아니야. 저건 아까 그 잔디밭이 아니야.” 나는 단호하게 혼잣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바로 그 잔디밭이 맞았습니다. 스핑크스상의 나병에 걸린 것 같은 하얀 얼굴이 그쪽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보니 틀림없었습니다. 이런 확신이 가슴에 뼈저리게 와 닿았을 때 내 기분이 어땠을지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절대 못할 겁니다. 타임머신이 사라져 버린 거였어요! --- p.62
언덕 위로 유령들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따로따로 세 번에 걸쳐 언덕 비탈을 훑어보는데 하얀 형체들이 보였습니다. 두 번은 유인원 같은 하얀 동물이 혼자 꽤 빠르게 언덕을 뛰어올라 가는 것 같았고, 한 번은 폐허 근처에서 유인원 같은 하얀 동물 셋이 조를 이뤄 뭔가 시커먼 물체를 나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서기 802701년의 지구로 시간 여행을 떠난 시간 여행자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환경 속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인류의 후손 ‘엘로이’를 만난다. 문명을 상징하는 모든 건축물들은 모두 폐허로 남은 그곳에서 질 좋은 옷을 입고 한가로이 나무 열매를 따먹으며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인류가 마침내 자연과 사회로부터 완벽한 승리를 얻었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이내 타임머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타임머신을 되찾기 위해 그 세계의 곳곳을 살피던 중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 속에서 이따금씩 자리한 정체 모를 우물에 위화감을 느낀다. 밤과 어둠을 무서워하는 엘로이들의 특성과 사라진 타임머신을 통해 마침내 시간 여행자는 서기 802701년의 지구에 엘로이 외에 또 다른 종족, ‘몰록’이 지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타임머신을 되찾기 위해 몰록들의 본거지인 우물 아래로 내려가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