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65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62281866
ISBN10	896228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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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 1901∼1981)는 「목 매이는 여자」(1923)를 시작으로 『세종대왕』(1977)에 이르기까지 총 20여 편의 역사소설을 발표한,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작가라 할 수 있다. 역사소설의 외길 위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월탄이 처음부터 역사소설을 창작한 것은 아니다. 그는 1921년 「장미촌」 창간호에 시 「오뇌의 청춘」, 「우윳빛 거리」를 발표하여 등단 과정을 거치고, 1922년 「백조」 동인으로 참여하여 시뿐만 아니라 평론, 단편소설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한다. 『백조』에 발표한 단편소설이 신숙주를 주인공으로 한 그의 첫 소설이자 한국 역사소설의 초기 작품으로 여겨지는 「목 매이는 여자」다. 그 후 첫 시집 『흑방비곡』(1924)을 상재(上梓)하기까지 그는 주로 시인으로 활동했다.

월탄이 본격적으로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한 시기는 「매일신보」에 연재된 『금삼의 피』(1935) 이후라 할 수 있다. 『금삼의 피』 이후 『대춘부』(1938), 『전야』(1940), 『다정불심』(1940) 등 그를 대표할 수 있는 역사소설이 속속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소설의 본격적인 창작 시기는 월탄 역사소설의 지향점을 시사해 준다. 그가 활발하게 역사소설을 창작하던 시기는 조선에 대한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 본격화되던 1930년대 중·후반이다. 그는 역사소설을 통해 훼손된 민족의식을 복원하고자 하였으며 민족애를 일깨우고 민족정기를 드높이고자 했다. 그에게 역사소설은 사회 현실에 참여하는 방법이었으며 나아가 민족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편이었다. 또한 민족을 억압하는 식민지 현실에 저항하는 길이었다. 그는 스스로 천명(闡明)하였듯이 철저한 민족주의자였다.

광복 이후에도 역사소설의 창작은 계속된다. 주요작품으로 『임진왜란』(1954)을 비롯하여 『여인천하』(1959), 『자고 가는 저 구름아』(1961), 『아름다운 이 조국을』(1965), 『세종대왕』(1969)이 있으며 이 밖에도 여러 역사소설이 발표되었다. 위의 작품들이 대부분 방대한 분량의 장편소설이므로 각 작품의 면면을 세세히 살펴볼 수는 없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는 있다. 그것은 당대 현실과의 연관성이다. 월탄은 당대 현실을 조명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채택하고 그것을 소설화함으로써 당대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를 제시한다. 그의 역사소설은 현실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방식이며 그의 역사소설이 담지하고 있는 것은 당대의 현실이다. 여기에서 당대 현실에 대한 작가의 판단이나 태도가 어떠한가는 별개의 문제다.

월탄은 역사소설을 통한 사회 참여 이외에 실제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1949년부터 1954년까지 서울신문 사장을 지냈으며 1955년에는 예술원(藝術院)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1970년에는 통일원 고문, 1980년에는 국정 자문위원을 맡기도 하였다. 이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제1회 문학공로상(1955), 문화훈장 대통령장(1962), 5·16민족상 제1회 문학상(1966),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1970)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반대로 위와 같은 이력과 수상 경력은 그를 체제 지향적 인물로 평가하고 그의 역사소설의 가치를 폄하하는 잣대가 되기도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의 역사소설이 대부분 신문 연재 형식으로 발표되었다는 이유로 상업적이며 통속적인 작품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어떤 작가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분량의 작품을 남긴 한국 역사소설의 거목으로서의 월탄의 위상을 흔들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역자 : 방인석

경기도 이천에서 출생하여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경희대에 출강하며 현대문학 연구에 정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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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으로 출간하는 한국 근현대문학은 작품이 처음 발표된 대로 현대에 살려내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초판본을 그대로 싣고자 했습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습니다. 현재는 과거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우리 앞에 펼쳐진다. 미시적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재는 곧 과거가 되고 과거가 될 현재는 도래할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요 미래의 자화상이다. 현재는 끊임없이 과거와 연결되어 있으며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일단 역사의 부산물로 태어나 점진적으로 역사의 주류에 편입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낳은 역사가 우리에게 유익하든 불리하든 우리는 그 역사를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역사가 선사한 선물을 받고 행복하고 풍요롭게 출발할 수도 있고 때로는 역사가 지운 짐의 무게에 눌려 불행하고 가난하게 출발할 수도 있다. 문제는 항상 우리가 역사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며 역사는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어찌하겠는가. 역사가 우리를 낳고 우리는 역사에 편입되어야 하는 것을. 이렇게 우리는 역사의 어느 한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처한 현실은 어떠한가?’, ‘나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나는 어떤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가?’, ‘나와 연결된 과거는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나는 그 과거를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가?’로 바꾸어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구획을 나누어 정립할 수 없을 만큼 축소와 확장, 동떨어짐과 겹침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현대 사회에서 나의 정체성을 확인한다거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한다거나 내 앞에 펼쳐질 미래를 예견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기를 반복한다. 나는 누구이고 어떠한 상황 속에 놓여 있으며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역사소설의 가치는 아마도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과 병치될 수 있는 역사적 상황과 그 상황에 대처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역사소설의 장이다. 우리는 역사소설을 통해 현실을 바라볼 수 있으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기반 위에 작가의 상상력으로 쌓아 올린 아름다운 누각 위를 조용히 거니는 것이 역사소설을 읽는 묘미가 아닐까. 누각을 거닐다 보면 어느샌가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만 여겨졌던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겹쳐지고 과거를 통해 현재와 만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박종화의 『대춘부(待春賦)』는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된 장편 역사소설이다. 이 책은 1955년 을유문화사(乙酉文化社)에서 간행한 『대춘부』(전편·후편 총 2권)를 원본으로 삼아 주요 부분을 발췌하여 구성했다. 『대춘부』는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분량은 어림잡아 원고지 3200매 정도다. 이 중 420매 가량을 발췌하여 실었으니 전체 분량의 1/8(약 13%)에 해당한다. 발췌한 각 장과 제목은 3장 ‘남한산성’, 6장 ‘강화 함락’, 7장 ‘삼학사’, 8장 ‘만고 한’이다. 그렇다고 하여 각 장 전체를 수록한 것은 아니다. 발췌한 부분은 물론 작품의 중심 내용을 담고 있는 부분이다. 작품의 중심 내용을 배제한 채 작품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첫째, 역사소설을 역사적 사실(그 속의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로 규정한다면, 『대춘부』 역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창작되었을 터이니 당연히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소설 쓰기를 보여주는 부분을 발췌해야만 했다. 둘째, 역사소설도 소설의 범주에 위치하므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역사적 현실의 재구성이라는 소설의 본질적 측면을 외면할 수 없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반영된 부분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셋째, 작가의 창작 의도에 충실했다. 즉 작품의 주제의식과 밀접히 관련된 부분, 또는 작가의식이 구현되는 부분을 발췌했다. 이렇게 보면, 발췌의 원칙 중 첫째,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소설 쓰기를 볼 수 있는 부분이 6장 ‘강화 함락’이 될 것이고, 둘째,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역사적 현실의 재구성을 잘 보여주는 부분은 3장 ‘남한산성’이 될 것이며(3장 ‘남한산성’은 제목이 그러할 뿐 주 내용은 임경업과 일지청에 관한 이야기다.), 셋째, 작품의 주제의식이나 작가의식이 드러나는 부분은 7장 ‘삼학사’와 8장 ‘만고 한’이 될 것이다. 이 중 8장 ‘만고 한’은 삼전도에서의 굴욕적 항복 의례를 묘사함으로써 당대 우리 민족이 처한 식민지 현실을 떠올리게 하며 7장 ‘삼학사’에는 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의로운 죽음을 통해 민족혼을 일깨우고 조국애를 고취하려는 작가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대춘부』는 “인물이 없소. 인물이 없어!”라고 한탄하며 조용히 숨을 거두는 정충신과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는 백성들의 한숨 소리로 시작된다. 정충신은 임진왜란(1592년) 때 권율 장군에게 발탁되어 종군하고 정묘호란(1627년) 때 부원수로 참전했으며 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원로 장군으로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나기 바로 전에 생을 마감한 조선 중기의 무인이다. 정충신은 최명길에게 편지 한 장을 남긴다. 그 편지에는 아무런 사연도 없이 다만 ‘화(和)’ 자 한 자와 ‘임경업(林慶業)’ 석 자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정충신의 편지에 적힌 ‘화(和)’ 자와 ‘임경업(林慶業)’ 석 자는 소설의 전체 이야기를 미리 보여주고 소설의 중심인물이 임경업임을 알려주는 소설적 장치라 할 수 있다. 『대춘부』는 크게 청의 침략과 조선의 항거, 항복 과정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한 부분과 병자호란 이전의 신장(神將) 임경업의 명성과 활약상, 그리고 조선의 굴욕적 패배 이후 명나라와 손을 잡고 삼전도의 굴욕을 씻고자 하는 임경업과 지사(志士)들의 도전과 실패를 다룬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636년(병자년) 12월, 청 태종 홍타시[황태극(皇太極)]는 몸소 팔기병(八旗兵) 6만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침략한다. 압록강 건너에는 신장(神將)으로 소문난 의주부윤 임경업이 백마산성을 철옹성같이 지키고 있었으나 이를 미리 알고 있는 청은 의주부와 백마산성을 피하고 사잇길을 택해 한양으로 향한다. 지체없이 한양으로 향하는 청의 진군(進軍)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조선은 김경증을 강화도 검찰사로 삼고 윤방과 김상용으로 하여금 종묘사직의 신주(神主)와 빈궁(嬪宮)과 원손(元孫) 이하 봉림대군(鳳林大君), 인평대군(麟坪大君)을 모시고 강화로 피난하게 한다. 인조 또한 강화로 몽진(蒙塵)하려 했으나 청군이 길을 막으니, 최명길의 제안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세자와 함께 남한산성에 당도한 인조는 훈련대장 신경진과 구굉, 이서, 이시백 등에게 남한산성을 굳게 지킬 것을 명한다. 그러나 청이 군대를 집결시켜 남한산성을 포위함으로써 남한산성은 고립되고 만다. 이후 남한산성을 둘러싼 간헐적 전투가 벌어진다. 청과의 화친(和親)을 거부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에 임하는 장수들과 백성들의 모습이 비장하게 그려진다. 청의 대군에 맞선 조선의 남한산성 전투 장면은 마치 삼국지를 연상시킬 만큼 화려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그러나 장수들과 백성들의 악전고투(惡戰苦鬪)에도 불구하고 고립된 남한산성은 청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끝내 버티지 못하고 청의 요구에 따라 항복하게 된다.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의 항복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해내기 위하여 청과 화친할 것을 주장하는 친화파(親和派)와 목숨을 내어놓을망정 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음을 강변하는 척화파(斥和派) 사이의 논쟁이다. 최명길과 장유로 대표되는 친화파(親和派)와 김상헌, 홍익한, 윤집, 오달제, 정온 등의 척화파(斥和派) 사이의 논쟁은 옳고 그름을 떠나 실리와 명분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마침내 인조는 항복을 결심하고 청의 요구에 따라 척화신(斥和臣) 윤집과 오달제를 청의 진영으로 보내고 최명길을 통해 항복 조건을 협상하게 한다. 한편, 강화는 지세(地勢)와 형세(形勢)만을 믿고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검찰사 김경증의 실정(失政)이 화가 되어 함락되고 만다. 청군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배와 뗏목을 만들어 우마(牛馬)와 낙타를 실어 삼강(三江)을 건너고 얼지 않은 강화 앞 갑곶 강을 통해 강화도로 진격한다. 당황한 김경증은 제 몸을 피하기에만 급급할 뿐, 전열(戰列)을 가다듬지 못한 채 천혜(天惠)의 요충지인 강화를 내어주고 만다. 충청수사 강진흔의 악전고투(惡戰苦鬪)와 김상용의 순절(殉節)이 있었으나 강화를 지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강화를 함락한 이후 청은 빈궁과 봉림대군을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향한다. 마침내 굴욕적인 항서(降書)가 써지고 인조는 세자와 더불어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三田渡)에서 청 태종 홍타시에게 굴욕적인 항복의 예(禮)를 갖춘 후 한강을 건너 동대문을 통해 한양으로 돌아온다. 청은 소현세자와 빈궁, 봉림대군을 볼모로 하고 척화(斥和)의 상징적 인물인 삼학사(三學士), 즉 홍익한, 윤집, 오달제를 잡아 본국으로 되돌아간다. 삼학사는 청에 대항하여 끝까지 자신의 의기(義氣)를 저버리지 않고 의로운 죽음을 택함으로써 조선의 충절을 알리는 본보기가 되었다. 1645년 2월, 볼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9년의 볼모 생활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오지만 2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한다. 이에 부고(訃告)를 받은 봉림대군이 귀향하여 세자가 된다. 1649년 인조가 승하하고 뒤를 이어 효종으로 등극한 봉림대군은 청에 대한 굴욕을 씻고자 북벌(北伐)의 꿈을 펼친다. 그러나 효종은 북벌의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4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여기까지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대춘부』의 간략한 줄거리다. 이는 사료(史料)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토대로 하여 구성된 이야기다. 만약 이것이 전부라면 역사소설 『대춘부』를 굳이 읽을 이유가 없다. 시기별로 잘 짜진 사서(史書)를 읽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소설 『대춘부』를 읽는 이유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된 소설적 현실을 바라보고 그 속에 담겨진 작가의식을 공유하기 위함이며 딱딱한 사료(史料)를 뒤지기보다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역사적 현실과 만나기 위해서다. 『대춘부』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은 임경업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작품 서두에서부터 임경업의 비범한 능력을 제시한다. 염탐하러 온 청의 장수 마부대의 속셈을 미리 알아차리고 능수능란하게 대처한다든지, 술에 취한 척하다가 갑자기 뛰쳐 일어나 마부대가 보낸 괴한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어 달아나게 한다든지, 역시 비범한 능력을 소유한 일지청(一枝靑)을 발탁하여 청 태종의 침실에 침입하여 홍모자를 가져온 후 마부대를 조롱하고 청 태종의 간담(肝膽)을 서늘하게 하는 장면 등은 임경업의 비범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이렇게 비범한 능력을 소유한 임경업은 청의 조선 침략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청은 한양으로 들어오는 가장 빠른 길인 의주부를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 의주부에는 임경업과 백마산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삼전도에서의 굴욕적 항복 이후, 즉 병자호란이 조선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긴 채 끝을 맺은 후, 임경업은 서산대사의 제자인 독보 스님과 더불어 명의 부활을 꿈꾸는 홍승주, 오삼계와 손을 잡고 청에게 당한 국가의 치욕을 씻고자 한다. 불행히도 명장(明將) 홍승주가 청에 항복하고 비밀 계획을 토설함으로써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청으로 압송되는 처지가 되지만 임경업의 의기(義氣)는 더욱더 찬란하게 빛난다. 이후 본국으로 돌아온 임경업은 역적모의를 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음을 맞이한다. 향년 53세였다. 작가는 임경업을 제시하여 우리 민족에게 치욕을 가져다 준 청에 대항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가의식과 만난다. 작가는 패배감에 휩싸인 우리 민족에게 비범한 능력을 행하는 이상적 인물을 제시하여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려 했다. 역사소설을 매개로 한 민족의식의 회복과 민족적 자긍심 고취는 작가가 역사소설을 택한 이유였으며 민족주의는 작가의 변치 않는 신념이었다. 여기에 일지청이라는 허구적 인물을 도입하여 소설적 재미까지 더하고 있다. 임경업과 일지청의 만남과 일지청의 활약상은 작품 전체가 주는 비장함에서 벗어나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가장 소설다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김상헌, 이경여, 정온 등의 척화파(斥和派)와 최명길, 장유 등의 친화파(親和派)의 현실 대응 방식,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의로운 죽음을 비롯한 여러 충신과 지사, 열부들의 순절(殉節), 이와 대조적인 강화 검찰사 김경증의 실정과 병자호란 이후 친청파가 되어 임경업을 모함하여 죽게 만들고 효종을 필두로 한 조정의 북벌(北伐) 계획을 청에 밀고하는 김자점의 기회주의적 태도 등은 현실에 맞선 인간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춘부』는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섬세한 상상력이 더해져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얽혀 소설을 읽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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