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다나카(田中) 일본 수상은 천황에게 “중국을 정복하려면 만주와 몽고를, 세계를 제패하려면 중국을 반드시 정복해야 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리하여 일본은 먼저 중국 침략의 길로 들어섰다. ---「제1장 유럽·아시아에 형성된 전쟁의 기류」중에서
9월 30일 아침, 체임벌린은 서둘러 히틀러와 ‘영·독 선언’을 체결했다. 히틀러는 영국의 경계를 늦추고 평화를 연출하기 위해 선언서에 흔쾌히 사인했다 ---「제1장 유럽·아시아에 형성된 전쟁의 기류」중에서
이날, 일본 내각은 총리·외무·재무·육군·해군 다섯 대신이 참가한 오상회의(五相會議)를 열고, 40만 대군을 동원해 무력으로 중국을 멸망시킬 것을 결정했다. 일본은 겉으로 중국과의 회담에 응했지만 실은 병력증파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제2장 중일전쟁의 발발」중에서
일본군은 난징 점령 후 간음, 약탈, 살인, 방화를 자행했고 도심 여기저기에서는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일본군은 잔인무도한 대학살을 저질렀는데 중산(中山) 부두 부근에서만 남녀노소 5만 7천여 명을 집단 학살했다. 창장 강은 수많은 난징 군민의 검붉은 피로 물들여졌다. 일본군은 상하이, 난징 점령 후 계속 진격해 항저우를 점령하고 더 나아가 장쑤, 저장, 안후이의 광대하고 풍요로운 지역을 차지하려 했다. 침략의 불길이 점점 더 거세게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