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신 사람들을 묘사하는 것은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모두 이 이야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대학생, 회사원, 퀵 서비스 기사, 영화감독, 자동차 정비공, 화가, 음악인, 언론인, 대학 교수 등 다양한 사람들의 각종 인생 철학이 모여들었던 이 술집은 내 삶의 터전이었고, 10여 년이 지난 후에는 그들을 통해 내가 추구했던 삶이 무엇인지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런 이유에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술을 마셨고 또 떠나갔는지를 전하고자 한다.” --- p.13~14
“로큰롤의 세계는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폭력적이고 무례했다. 인문학 서적에 등장하는 록의 저항성이나 폭발성 같은 말들을 술집에 적용하면 완전히 해석이 달라진다. 술 취한 록의 저항성은 아무것이나 대상이 정해지면 폭발한다. 화장실에서는 말도 못하게 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리면서 세수수건에 매달리는 바람에 한 달이 멀다 하고 나사못으로 박아놓은 수건걸이가 떨어져 나갔다. 환풍기는 1년에 두세 번 정도 망이 깨지거나 살이 부러져서 새것으로 교환해야 했다.” --- p.56
“손님이 모두 나가면 다시 뒷정리가 시작된다. 손님들은 저녁 내내 모든 물건의 위치를 변경시켰고, 나는 그 물건들을 원래 상태로 돌려놓는 일을 한다. 언제나 힘든 일이지만 영업 마감 후에 그날 매상을 계산하고 나면, 소음과 담배 연기와 욕설로 가득한 시간은 감내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바닥의 쓰레기와 더러워진 화장실은 음주의 불가피한 산물인 듯했다. 장사가 잘되니 마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뒷골목의 비밀스럽고 멋진 술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낭만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취객들이 쏟아내는 비이성적인 감정의 횡포 속에서 살고 있다는 외로운 느낌이 한데 뒤섞여 이상야릇한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 p.111~112
“공연과 파티가 이어지는 동안 새로운 연인을 만나거나 갈등을 겪고 때로는 헤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컵과 재떨이를 부수며 호기롭게 이별을 선언했다가 잠시 후에 가게 앞에서 무릎 꿇고 비는 남자가 둘 있었고, 바람을 피우다 현장을 들킨 여자가 화장실로 도망간 경우에는 남자끼리 주먹질을 하는 일도 있었다. 그들은 내가 기억할 정도의 단골은 아니어서 구체적인 내막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장사에는 도움이 된다. 강 건너 불구경을 하게 되면 손님들의 목소리가 유쾌하기까지 하고 술이 더 팔린다. 가끔은 싸우고 헤어진 커플들이 서로 자기가 단골이니 상대방이 다른 술집으로 떠나야 한다고 버텼다.” --- p.113
“많은 록 바들이 생겨나고 또 사라져갔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가게 이름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신촌의 ‘주혹새’. 세한으로부터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무슨 뜻인지 물었더니, 주다스(Judas) 혹은 새버스(Sabbath)란다(메탈 그룹 주다스 프리스트와 블랙 새버스를 가리킨다). 당연히 헤비메탈을 트는 술집이다. 또 하나의 걸작은 ‘딥 퍼플 포에버(Deep Purple Forever)’. 홍대 앞 한 건물에서 그 간판을 보고 문득 떠오르는 장면은 혈기 왕성한 남자들이 생맥주 잔을 탁자에 쿵쿵 내리치며 노래를 합창하던 오래된 신촌 록 바의 풍경이었다. 언젠가 한 번 가봐야지 하다가 2, 3년이 지났다. 그런데 우연히 그곳을 다시 가보았을 때는 이미 간판이 사라지고 없었다.” --- p.116
“경기 침체의 영향은 공평했다. 옆 건물 우동집처럼, 내 카페도 불황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매스컴에서는 IMF 때보다도 체감 경기가 더 나쁘다고 일제히 떠들어댔다. 불황은 태풍이나 가뭄처럼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도 같았다. 한가한 날은 점점 더 많아졌고, 그에 따라 사회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 일도 많아졌다. 요즘은 음악을 들으러 오는 사람이 없다는 둥, 저녁 내내 좋은 음악을 트느라 고생하는 데 아무도 고마워할 줄 모른다는 둥, 그래서 장사는 하나도 안 되고 모든 물가가 오르는데 팔아봐야 남는 것도 없는데다가 설사 내가 이까짓 작은 가게로 성공한다고 해도 얼마나 큰 부자가 되겠느냐는 둥, 또는 이 모든 것이 대중매체가 음악 문화를 기업화, 상업화, 획일화시켰기 때문이라고 거창하게 떠들어댔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좋았던 지난 몇 년간의 일들을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었다. 누가 얼마나 술을 많이 마셨고, 누가 무슨 요일에 춤판을 벌였으며, 주말이면 얼마나 바빴는지를 이야기했다. 돌이켜보건대, 내게 있어 불황 그 자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매너리즘에 빠진 상태에서 불황을 맞은 것이었다.” --- p.142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뒤,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내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았다. 이 장사를 시작할 때 나는 사업성에 대한 판단 능력이 없었고, 또 어려서부터 음악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듣고 자랐다. 디제이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된다는 둥, 록은 70년대가 최고라는 둥, 3대 기타리스트가 누구라는 둥,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최고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 비평가와 레코드 가게 주인과 라디오 디제이들이 전하는 모든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나의 목표였던 대한민국 최고의 디제이가 되겠다는 환상에 벗어난 지금, 나는 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했다. 부조리한 사회에 한 방을 먹인다는 기분으로 록 음악을 트는 멋진 디제이, 그리고 오직 살아남기 위해 버티고 있는 자영업자, 나는 그 둘 사이에 끼어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수십 번도 더 했던 고민이지만 왜 이 장사를 계속하고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자질구레한 일로 바쁘면서 그리 대단치 않은 하루가 지나간다. 어제와 똑같지는 않지만 특별할 것도 없다. 부자가 될 수도 없고 인생이 달라질 만한 사건이 생기지도 않는다. 이제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일만 남은 것이다. 이럴 때마다 아직 의욕이 있을 때 이 장사 말고 뭔가 돈이 되는 다른 일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현관문이 열리고, 영업 마감 시간에도 내쫓기지 않을 만한 단골이 나타나서 약간의 고민이나 외로움을 안고 술을 마시러 온다.” --- p.177~178
“오랜, 그리고 귀한 단골을 만나면 그간 서로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았음에도 정겹고 익숙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나는 여전히 그녀들의 이름이나 직업과 나이를 모른다. 오래도록 내 가게에서 술과 안주를 찾던 사람이라는 것이 내가 아는 전부다. 그런 사람이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내 가게를 찾아오고, 그 사람이나 나나 예전과 똑같이 서로 해오던 각자의 일을 계속한다는 것이 이제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한 사람은 술을 마시고, 한 사람은 육포를 굽는다. 물론 음악도 튼다.”
--- p.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