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에는 현관 자물쇠를 열어도 인기척이 없고, 밖에서 "규정아, 아빠 왔다." 부르는데도 아무런 대답이 없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신발도 벗지 못한 채 방안으로 들어갔다. 얼굴에 바짝 마른 눈물 자욱과 콧물이 얼굴 여기저기 딱지 앉듯 얼룩진 채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에이, 이놈의 세상을…"
솟아나는 자책감에 괜히 세상 탓을 한다. 왜 세상 탓을 하는지조차도 모르면서, 화가 나면 늘 하는 얘기건만 지금의 이 얘기는 분명 나 자신의 비겁함을 스스로 탓하는 것이다.…

우리집에는 아빠와 나 둘뿐이다.
그런데 한 분이 더 있다.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우리집에는 한 분이 더 계시다. 그게 누구냐면 바로 엄마다.
우리집에는 아빠랑 나랑 둘이 사는데 또 엄마가 있다고 하면 거짓말한다고 혼내킬 수도 있다. 왜냐면 우리 아빠는 아침이면 엄마가 되고 저녁이면 도로 아빠가 되기 때문이다.
아침만 되면 나의 늦잠을 깨우시느라 잔소리하시고, 앞치마를 두르고 아침밥을 짓고 국도 끓이시니 그럴 때는 꼭 엄마 같다. …

하늘에 별빛이 반짝거립니다.
엄마별은 어떤 걸까 어디 가셨나
아마도 저기 반짝거리는
저 별이 엄마별일 거야

나는 매일같이 밤에만 엄마와 만난다
그래서 비오는 날이 싫다. 비가 오면 엄마별은 빗물 땜에
아마도 외출을 못하시나 보다

어느 날 엄마별이 더욱 반짝거릴 때 엄마가 웃는 거라고
난 생각한다…

일곱 살, 엄마 품을 그리며 눈물 자국 얼룩진 채 잠들던 아이가 이제 열 세살 속 깊은 꼬마가 되었습니다. 밥을 짓고, 찌개를 끓이며, 술에 취해 잠든 아빠의 옷과 양말을 벗깁니다. 창 틈으로 흘러 들어온 가느다란 달빛에 물든 아빠의 얼굴을 보며 낯익은 미소 하나 떠올립니다. 그리운 엄마의 얼굴입니다.<br/>세상의 수많은 인연 중 나의 아내, 나의 엄마가 되어 이것이 사랑이고, 행복이라는 걸 느끼기 시작할 때 그 사람이 떠난다고 합니다. 남겨진 자의 슬픔과 절망감을 떠나가는 사람은 알 수 있을까요. 열 세살 소년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힘겹고, 아픈 일이지만 가슴 속에 그리움을 묻으며 조금씩 잊어갑니다.<br/>'레테'는 '망각의 江'입니다. 그 강물을 마시면 강 이편의 것을 잊을 수 있다고 합니다. 잊는다는 건 비워간다는 의미입니다. 비워야 비로소 채워지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고 그리움이겠지요. <br/>아내의 빈자리를 느끼는 아버지, 그리고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는 아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 부자(父子)에겐 아직 강을 건너 그 이편에 도달하는 일이 너무도 멀어 보이지만, 해가 지고, 바람이 불어오듯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그들이 느끼는 빈자리를 서로 채워가겠지요. <br/>오늘도 그들은 기억 저 편 그리움을 가슴에 묻으며 천천히 레테의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