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자라는 속도로 드시네요.” 루크가 말했다 .
“무슨 뜻이에요?” 니콜이 물었다.
‘그건 남은 인생을 당신과 함께 보내고 싶다는 뜻입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당신 머리가 하얗게 센 후에도 함께 있고 싶다는……’이라고 말하지 않기 위해 의지와 노력이 필요했다. 루크가 실제로 한 말은 이랬다. “모르겠어요. 그냥 그런 것 같아요.” 그의 접시는 이제 비었다. 그는 그녀가 먹는 모습을, 그 머리칼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빠진 거야, 라고 니콜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마치 키스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루크는 자기 잔에 와인을 더 따랐다.
--- p.83
“모스크에 앉아서 민트차랑 달콤한 하리사를 먹는다는 거지. 벌써 한 잔 더 주문하고 싶네.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루크가 말했다. “한 잔 더 주문한 다음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여자가 바클라바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거지.”
그중에서도 특히 루크는 니콜이 뭔가를 씹을 때 턱뼈가 움직이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녀는 입술에 묻은 부스러기를 냅킨으로 닦았다. 루크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말은, 일단 입 밖에 나오고 나면, 한때 그 말이 담고 있던 감정을 다시는 담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갈망이 더 압도적이었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혼잣말하듯이, 온 힘을 다해 말했다. 사랑해, 사랑해.
--- p.109
“하고 싶은 게 뭐야, 루크?”
“무슨 뜻이지?”
“인생을 어쩔 거냐고?”
“지금 하고 싶은 거 하고 있어.”
“나중에 말이야.”
“나중에도 계속 이렇게 살고 싶어. 계속 이렇게. 그러니까, 내 인생. 내가 자기 핵심에 닿았다고 했지? 나도 같은 느낌이야. 내 인생의 중심, 핵심에 다가가고 있는 느낌.”
--- p.170
알렉스는 샤라의 언어 능력을 존경하고 또 사랑했지만, 그 무엇보다 사랑했던 건 그녀의 습관들이었다. 옷을 갤 때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다든지, 아버지한테 10년 전에 받았다는 펜을 아직도 쓰고 있다든지, 일곱 살 생일에 받은 모자를(여러 색의 고리가 달려 있어, 멀리서 보면 스코틀랜드풍의 체크무늬처럼 보였다) 아직도 쓴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알렉스는 쉰 살이 된 샤라가 여전히 같은 모자를 쓰고, 같은 펜을 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이 좋았다 .
알렉스는 그런 작은 특징들을 일부러 길게 설명하곤 했다. 또한 그는 자신과 샤라가 가까워졌음을, 둘의 관계가 둘만의 어떤 패턴과 리듬을 가진 관계로 발전하였음을 알고 있었다.
--- p.217
“근데, 루크가 정말로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게 뭔지 알아?”
“너.”
“아니야. 행복.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행복은 우연한 거잖아, 거의 부수적인 거. 하지만 루크는 자기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행복한 삶을 사는 데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어. 다른 부분에서 야심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고.”
“그럼 내 말이 맞은 거네.” 샤라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런 이상을 다 담고 있으니까.”
--- p.241
“자기를 알아가는 일, 보는 게 아니라 아는 일. 어떻게 다른지 알겠어?”
“그건, 말하자면,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같은 건가?”
“나는 자기 아주 잘 알아, 루크. 그게 좋고, 그게 날 행복하게 해. 복제한 자기가 있다고 쳐봐. 또 한 명의 자기, 완전히 똑같은 자기가 있다고 말이야. 그렇다고 해도 나는 그 복제 자기와 자기의 차이점을 백 개나 천 개쯤 알아볼 수 있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런 뜻일까? 그이에 대한 작은 것들을 세세하게 구분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
--- p.333
“이보다 더 행복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거야.”
“어떻게 알아?”
“천장이라는 게 있으니까. 한계가.”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재밌다. 눈을 씻고 봐도 천장 하나 없는 이런 곳에서.”
“저 별들이 천장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
둘은 가만히 누워 있었다. 위성 하나가 지구를 맴돌았다. 지나가고, 또 지나갔다.
“지금 무슨 생각해?” 니콜이 말했다.
“행복을 견딜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해.”
그가 말했다. “나는 그런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아. 행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
니콜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가 몸을 돌려 그녀에게 키스했다.
--- p.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