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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 정적의 조화

구스타프 클림트, 정적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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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2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69쪽 | 578g | 176*248*20mm
ISBN13 9788988933848
ISBN10 898893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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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를 다시 보다

1990년대 초에 마흔이 넘어 오스트리아에서 클림트의 그림, 특히 '키스'를 다시 보았을 때 클림트는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그 전에 본 클림트 그림과 달리 상당히 어두운 전시실에 그림만 은은하게 조명된 분위기 탓이었는지,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너무나도 조용한 분위기 탓이었는지, 아니면 그 전날까지 다닌 빈의 고색창연한 느낌이 아직 다 가시지 않았던 탓이었는지, 아니면 그날 비가 내렸기에 언젠가 빗속에서 했던 키스가 생각났던 탓인지 '키스'는 마치 여느 성당의 제단화처럼 나에게 숭고하게 다가왔다.
그것은 에로틱한 그림이기커녕 너무나도 성스러운 느낌의 성화였다. 그림 전체의 황금빛은 천박한 돈의 황금이 아니라 숭고한 혼의 황금이었다. 제목인 키스의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키스하는 남녀는 그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남녀는 그 숭고한 황금빛 속에 녹아 영원한 황금이 되어버렸다. 그래, 사랑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사랑이란 우리 모두를 녹여버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모든 비순수를 순수로 승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그런 느낌은 그의 다른 그림들, 특히 정적의 조화를 추구한 풍경화를 보면서 더욱 강해졌다. 앙상한 가지만의 네그루 어린 자작나무나, 너도밤나무나 사과나무로만 빼곡한 숲이나, 해바라기나 농가나 호수의 풍경 앞에 나는 몇 시간이나 정신없이 서서 마치 그 그림들 속 자연의 정적에 앉아 명상에 젖었다. '소냐 크닙스'를 비롯한 인물화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에로티시즘의 대표작이라는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나 '베토벤 벽화'를 보아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 조용한 정적의 풍경들이나 품위 있는 인물들이나 '베토벤 벽화'나 '키스' 같은 우의화도 나에게는 마찬가지로 모두 숭고했다. 도대체 그 어디에 에로티시즘이 있는가? 아니 내가 이해한 그의 에로티시즘이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도대체 나는 클림트를 왜 이렇게 잘못 알았던가? 아니면 내가 색채나 장식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진 것이 아닌가?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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