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말하길, “아침에 세계 평화가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도道는 길이죠. 길-도 아닙니까? 그럼 길은 무엇입니까? 사람이든 자동차든, 하여튼 뭔가가 지나다니는 곳이죠. 사람이 다니는 곳을 인도人道, 자동차가 다니는 곳을 차도車道라고 합니다. 차가 인도로 가고, 사람이 차도로 다니면 사고가 나지 않겠어요? 그러니 사람이면 응당 사람의 길을 가야 합니다. 사람의 길이 인도人道, 곧 인간된 도리입니다. 모든 사람이 사람의 길을 가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온다면 천하가 태평하지 않겠습니까? 공자는 도가 제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한 것입니다.
“공부에 몰두하면 배고픔도 잊고, 배움이 즐거워 근심도 잊는다. 심지어 나이 드는 것도 잊을 지경이다.”
누군가가 공자의 제자 자로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오?” 자로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러자 공자가 자로에게 이렇게 말했죠. “나는 말이다, 공부하다 보면 식사 시간도 잊고, 배움이 즐거워 근심도 잊을 지경이다. 심지어 나이 먹는 것도 잊곤 한다니까. 그런 선생님이라고 대답하지 그랬니?” 대단합니다. 아무나 공자가 아닌가 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논어』에서 드러나 보이는 공자의 몰두와 집중력은 유명하죠. 그 당시 고기가 흔치 않았을 텐데 좋은 음악을 들으면 그 음률과 담긴 뜻을 음미하느라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었다고 했습니다. 재테크 개념에 이어 시時테크의 개념이 부각되는 오늘날, 공자의 집중력을 부각시키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군요.
“백성을 다스리는 데 단지 권력과 법률로써 몰아붙인다면 백성들이 법과 형벌이 무서워서 죄를 범하지는 않겠지만 부끄러워하거나 수치스러운 마음은 갖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덕으로 교화하고 예절로써 지도한다면 백성들은 부끄러워하거나 수치스러운 마음이 생겨 당초부터 죄를 범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공자의 사상이란 일종의 온화한 개혁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는 옛것과 새로운 것을 절충하여 예禮 속에 포함된 강제적인 엄격함을 다소 제거하고 그 자리에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추가하였던 것입니다. 그 추가된 부분이 바로 인仁으로, 이 인의 개념을 가지고 당시 사회의 어지러움을 치유하고자 했습니다.
“계로가 귀신 모시는 문제를 물었다. 공자 대꾸하길, ‘산 사람도 못 모시면서 어찌 귀신을 모실 수 있겠느냐?’ 계로가 다시 물었다, ‘죽음에 대해 감히 여쭙습니다.’ 공자 말하길, ‘삶도 아직 모르면서 어떻게 죽음을 알겠느냐?’”
제자는 뭔가 배우려고 심각하게 질문을 하는데 공자는 그냥 쉬엄쉬엄 답변하고 있군요. 그런데 『공자가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옵니다.
“자공이 물었다, ‘사람이 죽어도 감각은 있는지요?’ 공자가 답하길, ‘응…… 죽어보면 알 거야.’”
공자가 말하길, “아랫사람은 경외의 대상이다. 기성 세대를 능가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나이 40, 50이 되어서도 별 볼일 없다면 이런 사람은 역시 겁날 것이 없지.”
뛰어난 젊은이를 볼 때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글자 그대로 젊은이는 경외할 만하다는 것이죠. 왜 그럴까요? 바로 그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성 세대를 능가할 만한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빈둥거리는 젊은이는 어떨까요? 노력하지 않는 젊은이는 무시당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위의 구절에서 그대로 나오지 않나요? 나이 40, 50이 되었는데도 별 볼일 없는 인간은 무시당해도 싸다, 왜 그럴까요? 젊었을 때 피땀나게 노력하지 않았으니까요.
자로가 묻길, “선생님,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요?” 공자 대다하길, “관리는 말이다, 하여간에 솔선수범을 해야 하는 것이야. 그래서 백성들로 하여금 신뢰감을 갖게 해야지. 그래야 비로소 우리와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 할 수가 있지” 자로 생각에 선생님의 이야기가 너무 간단한 것 같아 다시 묻길, “선생님, 너무 간단해요, 한두 마디 더 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그러자 공자가 말하길, “위 두 가지면 충분하단다.”
자공이 묻기를, “선생님, 정치를 할 때 가장 신경써야 할 게 무엇인가요?” 공자가 답하길, “경제를 살리고,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백성들에게 신뢰감을 얻고, 이렇게 하는 것이 정치의 요점이니라.” 자공이 다시 묻기를, “부득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위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면 어떤 항목을 먼저 희생해야 합니까?” 공자 답하길, “그럼, 국방을 희생하는 수밖에 없다.” 자공이 또 묻길, "또 부득이하여 어쩔 수 없이 또 한 가지를 희생해야 한다면요?” 공자 답하길, “그럼, 경제? 희생해야겠지. 내가 왜 이렇게 이야기하는 줄 아느냐? 사람이란 한번 태어나면 죽는 것. 국방력이고 경제고 서로 맘을 합쳐 죽자사자 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지만, 일단 백성들이 정부를 믿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는 것이야.”
공자가 말하길, “옛사람들이 별로 말이 없는 것은 실천하지 못할까 걱정돼서 그런 거다.”
말을 못해서가 아니라 말을 일단 해놓고 실천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말이 안 되니, 그래서 입이 무겁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무게를 잡으려고 말수를 줄인 것이 아니라 실천을 못 할까봐 두려워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공자는 옛사람이라고 둘러댔는데 실은 자기 자신을 암시하는 것 아닐까요?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