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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상전집

책소개

목차

제1장(98~180년) … 15

두 안토니누스 황제들 시대
제국 판도와 군사력
브리타니아 정복/트라야누스 황제가 이룩한 영토 확대/내정에 힘쓴 후계자들
제위를 뒷받침한 병제와 군사력/제국의 속주
칼럼 로마의 건국―로물루스와 레무스

제2장(98~180년) … 47

두 안토니누스 황제들 시대
로마제국 통일과 번영
관대한 종교 정책/실용적인 로마인/라틴어 보급과 그리스 문화의 유산/로마제국의 노예들/황제들이 위신을 걸고 시행한 공공사업/부호의 터무니없는 재력/로마의 뛰어난 건축 기술/속주를 잇는 ‘로마길’/‘우리 바다’-지중해/외래품종과 농업의 발전/부유층을 위한 온갖 물건들/세계 여러 나라와의 교역/번영의 그늘 쇠퇴의 톱니바퀴/두 안토니누스 황제 시대의 로마제국 정치체제/제정 초기 여러 모습의 황제상/로마의 사법권이 미치는 범위
칼럼 로마인의 별장/농산물 거래

제3장(180~248년) … 107

콤모두스 황제의 잔혹성, 어리석음과 살육
근위대에게 암살당한 후계자 페르티낙스
티투스 율리아누스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근위병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승리와 엄격한 정치
카라칼라 황제의 폭정
엘라가발루스 황제의 어리석음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의 어진 정치
혼란 속 빈번한 황제 교체
필리푸스의 제위 찬탈과 건국 축제
철인 황제의 인품/황제의 권한이 못난 아들에게/콤모두스가 폭군으로 변한 날/간신 페렌니스/새 간신 클레안데르/황제의 음행과 어리석음/군주가 원형경기장에서/폭군의 최후
칼럼 로마법

제4장(248~285년) … 126

데키우스, 갈루스, 아이밀리아누스, 발레리아누스, 갈리에누스 황제
여러 야만족들 대침입
30인의 참주들
클라우디우스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치세와 승리
타키투스 황제 프로부스 황제와 카루스 황제 부자의 치세
격랑의 시대/데키우스, 반란군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다/고트족의 등장/이동하기 시작한 야만족들/고트군과 교전하다/감찰관에 추대된 발레리아누스/데키우스 황제, 전사하다/교체되는 제위(帝位)의 주인들/발레리아누스의 즉위/아들 갈리에누스를 공동 황제로/프랑크족/알레만니족/고트족/페르시아인/적의 포로가 된 로마 황제/냉혹하고 경박한 황제/30명의 참주/옥좌에 앉은 기분/세태의 단면
칼럼 로마의 군대

제5장(285~313년) … 172

디오클레티아누스와 3명의 동료
막시미아누스, 갈레리우스 및 콘스탄티우스의 치세
제국 전역의 평화와 질서 회복
페르시아 전쟁과 그 승리 및 개선
새로운 통치체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퇴위
디오클레티아누스, 제국을 재건하다/공동 황제 막시미아누스/제국의 4분할 통치/로마 영토 내에 정착한 야만족/고난의 아르메니아/페르시아 전쟁과 로마군의 참패/설욕을 이룬 갈레리우스/마지막 강화와 그 뒤 동방 변두리/쇠퇴해 가는 로마의 지위/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통치수법/자신의 의사에 의한 퇴위/퇴위를 선언한 두 황제/퇴위한 뒤의 나날/문예와 학문은 돌아보지 않고
칼럼 황제의 신격화와 황제예배

제6장(305~330년) … 205

디오클레티아누스 퇴위 뒤의 혼란
콘스탄티우스(1세) 사망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 즉위
6황제의 동시 재위
막시미아누스 황제와 갈레리우스 황제의 사망
막센티우스, 리키니우스 두 황제에 대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승리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제국 통일
새로운 제도(帝都) 콘스탄티노폴리스 건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퇴위한 뒤 혼란/콘스탄티누스 등장/황제가 사라진 지 오래인 로마시/막센티우스의 봉기/갈레리우스 황제, 친구 리키니우스를 공동 황제로/동시에 재위한 6명의 황제/막시미아누스, 갈레리우스 두 황제의 죽음/패권 다툼을 벌이는 네 황제/콘스탄티누스, 막센티우스와 대결하다/막센티우스의 비참한 최후/리키니우스 황제의 승리/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최후 승리/새로운 제도(帝都)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건설
칼럼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명장 한니발

제7장(그리스도교의 발전) … 255

원시 그리스도교도의 신앙과 습관
이단 박해
아리우스파 논쟁
아타나시우스
콘스탄티누스 황제 및 그 아들들의 치세에서
비제국과 그리스도교회의 혼란
이교에 대한 관용
신도들의 열정/영혼불멸에 대한 신앙/원시 그리스도교회의 기적/순수하고 준엄한 도덕/단결과 규율/콘스탄티노폴리스의 창건/집정관과 귀족/근위대장/기병대와 보병부대 총사령관/조신(朝臣)들/이단에 대한 박해/신학 논쟁/아리우스파를 옹호한 콘스탄티우스 2세/꺼지지 않는 신학 논쟁/‘정통파’ 아타나시우스/아타나시우스 체포 명령 내리다/아타나시우스의 도피 생활/계속되는 저항/이교도 위에 내리는 희망
칼럼 동방계 밀의(密儀)종교

제8장(360~363년) … 341

갈리아 군단의 율리아누스 황제 추대
율리아누스의 진격과 승리
콘스탄티우스(2세) 죽음
율리아누스 민정
페르시아 전쟁 중 율리아누스 사망
후계자 요비아누스의 굴욕적 강화에 의한 로마군 구출
율리아누스 명성을 떨치다/간신들의 책략/고민에 빠진 율리아누스/신하로서의 미덕을 보이다/친애하는 병사들이여!/저항할 수 없는 물살 속에서/내전에 대한 대비/화해를 도모하다/인종(忍從)의 끝/갈리아군의 호쾌한 진격/콘스탄티우스(2세) 황제 서거/율리아누스의 인간성/배교자(背敎者) 황제
칼럼 로마 시대 기후와 인구

제9장(365~398년) … 367

고트족 다뉴브강을 넘어오다
고트 전쟁
발렌스 황제의 패배와 사망
그라티아누스 황제, 동부 제국을 테오도시우스에게 이양하다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인물과 승리
고트족의 평화와 정착
정통파 승리 이단파 소멸
테오도시우스 황제 두 아들에 의한 제국 최종 분할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고트족의 정착 요청/야만족 집단의 도하/비열한 로마의 간신들/달아나는 로마군/무훈을 서두르는 발렌스 황제/제국의 명운을 좌우한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동부 제국도 그라티아누스의 어깨에/동부의 황제가 된 테오도시우스/힘을 되찾은 로마군/다시 맞서는 야만족들/책략가 테오도시우스/제국의 방위 임무와 맞바꾸어/존재의 위험성
칼럼 로마의 복식

제10장(398~410년) … 399

고트족의 반란
고트족의 그리스 약탈
스틸리코 장군의 활약
알라리크의 이탈리아 침입
원로원과 민중의 상황
고트인에 의한 세 번째 로마 포위와 약탈
고트족의 반란/스틸리코 장군의 활약/알라리크의 이탈리아 침공/그 무렵 로마시와 원로원 의원의 수입/부유층의 생활/평민의 생활/‘빵’ 배급/공중목욕탕과 빈둥거림/대경기장에서의 공연/야만족에게 포위당한 영원한 도시/야만족 왕 압력에 의한 새 황제 추대/분노에 휩싸인 알라리크의 로마시 약탈
칼럼 고대 로마의 사회와 생활

제11장 … 427

서로마제국 멸망의 길
그래도 인류는 진보한다
멸망의 원인은 어디에/팽창과 붕괴/그리스도교의 영향/로마사가 주는 교훈/인류의 진보
칼럼 로마의 세제

제12장(동로마제국의 융성) … 442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
황후 테오도라
대경기장의 당파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소란
젊은 날의 테오도라/이례적인 황후/제국의 수도를 들끓게 한 경기/청색파 녹색파의 항쟁/니카 폭동/황제를 구한 황후의 발언
칼럼 결혼의 끝

제13장(이슬람 세력의 대두) … 466

무함마드의 탄생
이슬람의 성격 및 교리
역대 칼리파의 영화
영광의 계보/무함마드의 탄생/예언자의 풍모와 인품/자연을 교사로/이슬람의 교의(敎義)/쿠란이란 무엇인가/세계사에서의 쿠란과 무함마드/이슬람의 지속성/무함마드 다음의 아랍 세계
칼럼 알리멘타 제도

제14장(동로마제국의 멸망) … 482

튀르크인의 콘스탄티노폴리스 포위와 최종 정복
공성(攻城) 개시/계속되는 공방/제도(帝都)를 향하는 원군/마지막 불꽃/오스만 함대, 산을 넘다/낙성 전의 성안/결전을 향해서/콘스탄티노폴리스 최후의 날/전야(前夜)/총공격 개시/지휘관의 전의 상실/마침내 성벽에 선 예니체리/황제의 전사와 성의 함락/성안의 혼란/승자의 권리/침해된 성역/정복왕의 입성/낙조에 물들어
칼럼 로마의 연극

제15장 에필로그 … 510

위대했던 로마를 돌아보며
시간 현상 자연 소멸/자원 남용 약탈 파괴/로마인에 의해 파괴되는 로마/콜로세움과 함께 무너지는 로마
칼럼 로마인의 이름

로마사 연표 … 524
에드워드 기번의 생애와 로마제국쇠망사 … 534
젊은 나날/카피톨리누스 언덕 위에서 《로마제국쇠망사》 구상하다/기번의 역사의식

저자 소개1

에드워드 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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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Gibbon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1737년에 영국 서리 주 퍼트니에서 태어났다. 병약한 탓에 웨스트민스터 공립학교를 중퇴했고, 열다섯 살이던 1752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모들린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14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이후 스위스 로잔에 머물며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마스터했고, 이 시기에 볼테르의 클럽에 드나들며 계몽사상을 흡수했다. 1757년, 스무 살의 기번은 로잔에서 쉬잔 퀴르쇼를 만나 결혼을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이 시기에 사귄 스위스인 조르주 데베르당은 기번의 평생 친구가 되었다. 기번은 1764년에 이탈리아를 여행했는데, 로마에 입성하여 카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1737년에 영국 서리 주 퍼트니에서 태어났다. 병약한 탓에 웨스트민스터 공립학교를 중퇴했고, 열다섯 살이던 1752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모들린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14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이후 스위스 로잔에 머물며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마스터했고, 이 시기에 볼테르의 클럽에 드나들며 계몽사상을 흡수했다. 1757년, 스무 살의 기번은 로잔에서 쉬잔 퀴르쇼를 만나 결혼을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이 시기에 사귄 스위스인 조르주 데베르당은 기번의 평생 친구가 되었다. 기번은 1764년에 이탈리아를 여행했는데, 로마에 입성하여 카피톨륨의 폐허를 본 순간 《로마제국 쇠망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자서전에 적고 있다. 1776년 2월에 출간된 《쇠망사》 제1권은 빅 히트를 쳤다. 1781년 3월에 《쇠망사》 제2권과 제3권이 나왔고, 이어 1788년 5월에 제4~6권이 출간되었다. 말년에 지병인 음낭 수종으로 고생하다가 1794년에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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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강석승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동 대학원 행정학과 졸업.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박사 학위 받음. 인천대학교, 경기대학교 겸임교수 역임. 통일부 통일교육원 연구개발과장, 통일부 정보분석본부 정세분석팀장 역임. 지은책 『북한학개론』『국제사회와 북한』『북한총람』『북한대사전』 근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쇠망사』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6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544쪽 | 153*224*35mm
ISBN13
9788949714318

책 속으로

젊고 소질이 있는 노예에게는 기예나 학문을 가르쳐, 그 기능과 재능에 따라 값이 매겨졌다. 부유한 원로원 의원 저택에는 학예 분야이건 기능 분야이건 온갖 직업 노예들이 있었다. 사치와 관능적인 생활을 위한 노예들의 수는 오늘날의 사치 관념을 훨씬 넘어설 정도로 많았다.
상인이나 제조업자는 일꾼을 고용하기보다 노예를 사는 편이 이로웠으며, 농촌에서는 노예가 가장 값싸고 일 잘하는 농기구였다.
--- p.60

사람이 더없이 행복한 세상에서 살 때,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쇠퇴의 기운을 알아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바야흐로 이때 제국 중심부에는 그러한 오랜 평화와 로마의 단일 지배에 의한 해독이 서서히 퍼져 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생각은 점차 획일화하고, 천재의 불꽃은 사그라지고, 심지어 무예를 중시하는 마음도 희미해져 갔다.
--- p.77

인간의 모든 욕망 가운데 가장 위험하고 배타적인 것은 무엇일까? 바로 권력욕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만족을 위해 많은 사람의 복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법은 사문화(死文化)하는데, 그렇다고 인도주의가 그것을 대신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치열한 경쟁심, 승리에 의한 오만, 성공에 대한 갈망, 잊을 수 없는 원한, 미래의 위험에 대한 공포, 이 모든 것이 격정에 불을 붙이고, 자비의 목소리를 잠재운다. 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동기에 의해 민중이 피를 흘리지 않았던 시대는 거의 없다.
--- p.110

찬탈자는 즉위하자마자, 그 대가로 병사들에게 막대한 상여금을 내렸는데, 그것은 원래 피폐한 백성들로부터 착취한 것이었다. 아무리 고결한 인물이라도, 또는 아무리 숭고한 의도에서라 해도, 빼앗은 지위를 유지하려면 수탈과 폭거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몰락하면 휘하 군대와 속주도 함께 몰락했다.
--- p.162

로마법에서는 기만적이고 위협적인 고문(이렇게 강변했다)이 인정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용인되었다. 이 잔학한 고문 방법은 노예에게만 적용되었다. 오만한 공화국 시민들은 정의와 인도주의를 저울질할 때 천민들의 고통은 생각지 않았지만, 자유시민의 신성한 신체를 침해하는 데 대해서는 죄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가 없는 한,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 p.315

고트인은 모두 자유를 사랑했지만, 자유로워도 비참한 환경에서 삶을 마치는 것보다, 예속된 상태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는 쪽을 선택했다. 악랄한 것이라 치면 은인으로 가장한 자들의 횡포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은혜를 베푼 뒤 나중에 취소하고는 처음의 자선에 대한 보답은 꼬박꼬박 강요한다.
--- p.372

제국으로까지 팽창했던 한 도시의 융성은 매우 놀라운 일로서 철학자의 탐구심을 유혹할 만한 주제다. 그러나 그 쇠퇴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바로 비정상적인 팽창의 필연적인 결과였다. 번영이 쇠망의 스위치를 움직이자 쇠망의 요인이 정복의 확대와 함께 여러 가지로 늘어났다. 이윽고 시간과 사건에 의해 인공적인 기둥이 제거되자, 이 엄청난 구조물은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로마제국의 쇠망 과정은 지극히 단순하고 명백하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어떻게 이다지도 오래 존속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 p.428

옛적과 오늘날 항해자들에 의한 발견 이야기나 개화한 나라들의 역사와 전승을 읽어 보면,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헐벗고 법과 예술은 물론 관념, 아니 거의 언어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야만인 이야기가 반드시 나온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동물을 길들이고 농사를 짓고 바다를 건너고 천체를 관측하게 되었다. 그러한 인간의 활동은 처음에는 발걸음이 불규칙하고 한없이 느리지만 그 뒤 가속도가 붙어 장족의 발전을 보이면서 상승한다.

그리고 정점에 도달하면 갑자기 다시 추락한다. 그렇게 세계의 다양한 지방이 빛과 어둠의 변전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그 4000년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오히려 불안을 떨치고 희망을 키워야 한다. 왜냐하면 인류가 어느 정도의 완전성을 지향해야 하는지 밝히는 것은 어렵다 해도, 자연이 완전히 뒤바뀌지 않는 한 어떠한 국민도 다시 원래의 야만적인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436

이러한 민중의 고질병은 수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지방의 각 도시에서도 두 파의 지지자가 각각 강력한 당파를 형성하여 서로 싸우며 지배체제의 취약한 기반을 뒤흔들었다. 격정에 휩쓸린 민중의 이 집요한 대립이 가장 심각했던 분야는 경제상의 이해관계와 종교상의 문제였다. 게다가 이 대립은 가정의 평화를 파괴하고 형제와 친구들도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또 종종 여성을 유혹하여 마음대로 농락하거나 남편을 배신하게 했다.

그야말로 옥석 구별 없이 법이라는 법은 모조리 무시된 것이다. 승자가 된 당파의 행동에서는 개인과 사회를 배려하는 모습은 눈곱만큼도 볼 수 없었다. 안티오키아에서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도 방종의 극을 달린 그들의 모습은 ‘민주주의의 자유’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한 상황이었으므로 명예를 원하는 사람은 불문곡직하고 청색파 또는 녹색파, 어느 한쪽에 속할 수밖에 없었다.
--- p.452

대도시의 몰락과 이어지는 약탈에 대해 기록할 경우, 역사가는 그 참상만을 되풀이해 얘기하게 마련이다. 같은 격정에서는 같은 사건이 일어나도록 되어 있다. 그러한 격정이 무한정으로 허락되었을 때 문명인과 야만인의 차이는 없어진다. 편견과 증오에 뿌리를 둔 격렬한 항의 가운데, 이슬람교도가 그리스도교도의 피를 마음껏 흘렸다는 비난은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실천 원칙, 즉 고대의 법칙으로 치면 피정복자의 목숨은 정복된 단계에서 잃어버린 셈이다. 따라서 정복자는 합법적인 대가로서, 포로의 노역과 매각 등을 통해 재산을 얻는 것이 허용되었다.

---p.502~503

출판사 리뷰

흥미진진 기술, 해박한 고증, 정확한 사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는 학술 연구사상 하나의 큰 기념물이다. 지금도 여전히 2세기부터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기까지의 약 1,300년간의 로마제국을 알기 위한 기본적 문헌으로서 지위를 지켜내고 있다.

기번은 어려서부터 독서광이었다. 병약하여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더욱 독서에 빠져들었다. 그는 자신의 지적인 성향에 따라 혼자 연구해나갔다. 그의 저작은 다른 학자들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으므로 독특한 개성이 돋보인다. 옥스퍼드, 로잔, 파리 등에서 문학가, 철학자들과 교류하며 자유롭게 수학했고, 1764년 로마로 가서 고대 제도와 풍습을 연구하는 동안 로마의 쇠퇴와 멸망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하여 2세기부터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까지의 로마 역사를 다룬 『로마제국쇠망사』가 탄생한다.

기번은 『로마제국쇠망사』에서, 로마제국을 몰락으로 이끈 제국 내부의 쇠퇴와 다른 기본적인 모든 요인을 매우 강력하게 그려냈다. 그 자신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로마의 쇠퇴는 제국의 거대함에서 비롯된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일이었다. 번영이 쇠퇴의 원리를 무르익게 한 것이다. 정복 지역이 확대되면서 파멸의 원인도 증가했다. 그때 우연인지 필연인지, 인위적인 기둥이 제거되자마자 이 거대한 건축물은 자체의 무게 때문에 무너졌다.” 로마의 역사는 요컨대 불멸의 성공을 거듭 쌓아올리는 듯하다가, 세계를 정복한 뒤 마침내 자신과 자신의 문명을 파국으로 몰아넣은 주목할 만한 제국의 이야기다.

시대를 초월한 스승 에드워드 기번

12년에 걸쳐 완성된 『로마제국쇠망사』는 로마제국의 역사를 학문적으로 최초 개관한 역사서로 평가받는다. 이 책의 특징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상세한 기술, 해박한 고증, 정확한 사실로 알려진 고전적 역사서라는 점이다. 그래서 여러 곳에서 앞 다투어 번역 보급하고 있다.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손수 제1권을 번역하였다. 인도의 네루 수상은 옥중에서 이 책을 숙독하고 영감을 얻어 그 장엄한 명구들을 창조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주 소련 대사였던 미국 외교관 케난은 전쟁이 끝나고 어려운 국제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자주 『로마제국쇠망사』를 생각해내어 문제해결의 지혜를 얻었다. 애덤 스미스는 “당신은 이 저서 하나로 유럽 문단의 최고봉에 섰다”며 기번을 크게 칭찬했다. 케임브리지의 위대한 역사가 J. B. 베리는 “기번은 시대를 초월한 우리의 스승이다”라고 칭송했다.

또한 영광에 찬 아우구스투스 시대부터 디오클레티아누스 치하의 제국 분할통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대제 시대부터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거쳐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한 동로마제국의 부흥, 제국의 영광스러운 최후까지 상세하게 기록된 이 역사서는 명백한 역사연구 자료들로 분명히 뒷받침되어, 근대 역사학자들의 사료 분석 작업을 선도하기도 했다.

독서를 좋아하는 한 병약한 영국소년이 자라 문장가가 되었고, 로마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올라 폐허를 바라보며 얻은 한줄기 영감이 몇 년 뒤 그로 하여금 대제국 로마의 역사를 쓰게 했다. 그 쇠퇴와 멸망의 대서사시가 인류 문화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로마제국쇠망사』는 성실한 천재였으며 성품이 공정하고 결백하여, 끊임없이 사료를 정확하고 올바르게 읽어간 한 젊은 역사가의 위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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