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이러한 착오가 있는 법이다. 어떤 시기에 이르러 인간은 도무지 몰락을 면할 길이 없는 것만 같다. 마치 누가 와서 도와주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말을 들었더라면 살아남을지도 모를 모든 충고를 피하고, 몸을 숨겨 열에 들뜬 것처럼 성급히 달아나 드디어 제멋대로 깊은 못 속으로 빠져들고야 만다.
--- p.920
당신은 모르지만, 초라한 건물 속에서, 파리의 지붕 밑 다락방에서, 조용한 시골에서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그 평범한 일생 동안 꾸준히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서 그날그날 자기희생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어요. 이거야말로 항상 프랑스에 존재하는 조그마한 교회입니다. 숫자로 보면 작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커다란 교회이며, 사람들의 눈에 띄는 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실은 프랑스의 모든 힘이죠. ‘선택받은 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부패하고 변모하는 것과는 달리, 그 힘은 묵묵히 영속하고 있는 거요…….
--- pp.1019~1020
혐오감, 피로, 그리고 행동이나 고통이나 추악이나 우열(愚劣)이나 위험성이나 책임 등에 대한 염려, 또는 오늘날 많은 프랑스 사람들의 훌륭한 의지를 좌절시키고 있는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 무서운 생각이 거의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었다. 그들은 지나치게 지적(知的)이었다(그 지성은 활개를 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찬성의 이유와 반대의 이유가 한꺼번에 뚜렷이 보인다. 힘이 부족하다. 생명이 부족하다. 사람은 생기발랄할 때에는 자기가 살아 있는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살기 위해서 살아 있을 따름이다. 왜냐하면 산다는 것은 멋진 일이니까!
--- p.1060
자네들은 자네들을 압박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백배 더 하고, 천배 더 값어치가 있는데, 그들의 뻔뻔스러운 압력에 짓눌리고 있어! 나는 자네들을 이해할 수 없네. 자네들은 가장 아름다운 나라에 살고, 가장 훌륭한 지성, 가장 인간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이용하려고는 하지 않고, 소수의 시시한 사람들의 지배 밑에서 모욕과 짓밟힘을 당하고 있는 거야. 자네들의 참다운 모습을 보여 주게나! 하늘에 도움을 바란다든가, 나폴레옹의 등장을 바란다든가 하는 건 집어치워! 일어나서 단결해야지! 자, 다들 일을 시작해야지! 집 안을 청소하는 거야.
--- p.1062
사람 사이의 오해는 그 사이에 제삼자가 끼어들지 않는 한에서는 결코 중대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제삼자는 반드시 나타나는 법이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남의 일에 흥미를 가지고, 그들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 p.1092
사람이 남에게 감화를 준다는 것은 말에 의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존재에 의한다. 눈초리, 몸짓, 말 없는 가운데 맑은 마음의 접촉에 의해서, 자기 주변에 침착한 분위기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크리스토프는 생명의 기운을 퍼뜨리고 있었다. 그 생명은 마비된 이 집 건물의 낡은 벽이나 닫힌 창을 통하여 봄철의 다사로운 공기처럼 슬그머니 스며들었다. 그것은 슬픔이나 무기력, 고독으로 인하여 몇 해 전부터 침식되고 고갈되어 죽을 지경이 된 사람들의 마음을 되살아나게 했다. 영혼이 영혼에 끼치는 영향력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그것을 주고 있는 사람도, 모두 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이승의 생활은, 그러한 신비로운 인력으로 지배되는 만조와 간조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 p.1139
같은 시대의 모든 사람들 위에 내리덮이고 있는 그 어떤 편견이나 요청의 속박에서 빠져나올 대담성을 가진 인간이, 가장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도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말하자면 자기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벽을 쌓는 일이다. 한편에는 황무지 속의 자유가 있고 한편에는 인간이 있다. 그들은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 쪽을, 가축의 무리 쪽을 택한다. 그것은 고약한 냄새는 나지만 따뜻하다. 그런데, 거기서 그들은 생각지도 않은 것을 제법 생각하는 체한다. 그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 p.1373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타격은 크리스토프 자신이 이미 남몰래 동요하고 있던 시기에 찾아왔으므로 그에게는 더욱더 심했다. 그는 마침 그의 생애에 있어서 신체 조직의 안쪽에서 그 어떤 은밀한 변화 작용이 일어나는 나이에 이르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있어서는 육체도 영혼도 외부로부터 타격을 입기 쉽다. 정신은 쇠약한 듯한 기분이 들고, 막연한 슬픔에 괴로워하며, 사물에는 진력이 나고, 해버린 일에는 도무지 애정이 느껴지지 않으며 게다가 다른 일은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전혀 예측을 하지 못한다. 이런 위기가 일어나는 나이에 있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정적인 의무에 묶여 버린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보호자이다. (…) 그러나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은 이런 공허한 때에 자기를 지탱해 주는 것, 자기를 억지로 걸어가게 해주는 것을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습관에 따라 걸어간다. 그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의 힘은 흐트러지고 의식은 흐려진다. 만일 의식이 몽롱한 이런 순간에 벼락의 일격이 몽유병자 같은 걸음을 멈추게 해버린다면 그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다. 그는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만다.
--- pp.1450~1451
이제 그는 이해했다.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힘의 무서운 주먹 아래서는 자기의 자존심이 공허하다는 것을, 인간의 자존심이 공허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아무도 확실히 자기를 지배할 수는 없다. 밤에도 자지 않고 경계해야만 한다. 만일 잠들면 그 힘이 우리들 위로 덤벼들어 우리를 납치해 갈 것이다…… 대체 어떠한 심연으로 납치해 가는 것일까? 혹은 또 격류는 갑자기 말라 버리고 우리를 건조한 강바닥에 남겨 둔다. 싸우기 위해서는 의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언제라도 바라는 때에, 또 어디서든지 바라는 장소에 사랑과 죽음과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미지의 신 앞에 굴복해야 한다. 인간의 의지는, 이 신의 의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신은 단 한 순간으로 몇 년의 노고와 노력을 무로 돌려 버릴 수 있다. 또 만일 원한다면 진창에서 영구적인 것을 솟아나게 할 수도 있다. 사물을 창조하는 예술가 이상으로 자기가 신의 뜻대로 되는 것을 느끼고 있는 자는 없다. 왜냐하면 만일 예술가가 정말로 위대하다면 ‘신의 영(靈)’에 의해 구술되는 것밖에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 p.1544
크리스토프는 이제 흘러가 버리는 세월을 헤아리지 않는다. 한 방울 한 방울 삶은 사라져 간다. 하지만 그의 삶은 딴 데에 있다. 그것은 이제 역사를 갖지 않는다. 역사는 그가 창조하는 작품뿐이다. 솟아오르는 음악의 끊임없는 노래는 혼을 채우고 바깥세상의 소음을 느끼지 않게 한다.
--- p.1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