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몇 번이나 이렇게 군마가 빙그르르 몸을 돌려 자기 집 입구 옆의 흙을 발굽으로 파내 던지고, 뒤이어 길가와 광야의 길 없는 길을 거쳐서 그를 전선으로─시커먼 죽음이 카자흐들을 노리고 있고, 카자흐들의 노래 구절에 의하면 ‘밝으나 어두우나 24시간 내내 두려움과 슬픔만’이 가로놓인 그 전선으로─태워간 것일까. 그러나 유독 이 화창한 아침만큼, 무거운 마음으로 고향집을 나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막연한 예감과 꽉 죄어드는 듯한 불안과 우수에 견딜 수 없어 하며, 그는 고삐를 안장 테 위에 놓아둔 채 뒤도 돌아다보지 않고 언덕 가까이까지 나아갔다. 먼지투성이 길을 풍차집 쪽으로 꺾인 모퉁이에서 돌아다보았다. 문 옆에는 나탈리야 혼자만이 서 있었다. 상쾌한 새벽 미풍이 그녀의 손에서 검은 상장(喪章)과도 같은 목도리를 떼어내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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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디푸른 심연(深淵)과도 같은 하늘에 바람에 불려 끓어오른 구름이 끝없이 헤엄쳐 갔다. 파도처럼 구비치는 지평선 위에는 안개가 가로놓여 있었다. 말은 느린 걸음으로 나아갔다. 프로호르는 안장 위에서 몸을 흔들며 꾸벅꾸벅 졸았다. 그리고리는 이를 악물고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는 녹색 버드나무 숲이며, 변덕스럽게 꾸불꾸불 구부러진 은빛의 돈강 줄기며, 돌아가고 있는 풍차 날개를 보았다. 이윽고 길은 남쪽으로 빗나갔다. 밟혀서 망가진 곡물 그늘의 습지도, 돈도, 풍차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그리고리는 휘파람으로 뭔가를 불면서, 조그마한 장식용 구슬 같은 땀에 덮인, 금빛으로 빛나는 붉은 털 말의 목을 열심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는 안장 위에서 몸을 돌리지 않았다. ‘전쟁 같은 건 없어져야 해! 몇 차례의 전투가 치르 연안에서 벌어졌고, 돈 근처를 지나갔다. 나중에는 호표르 근처에서, 메드베디차 근처에서, 부즈르크 근처에서 포성이 울릴 것이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 적의 탄환이 결국 나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건 마찬가지 아닐까?’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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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야는 지쳐빠진 발에서 단화를 벗겨내어 발을 씻고는 볕에 달아 뜨거워진 물가 자갈 위에 잠시 앉아서 햇빛에 부신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갈매기들의 구슬프게 우짖는 소리와 단조로운 물결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녀에게는 이 고요함과 뼈에 사무치는 듯한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눈물이 나올 만큼 서글펐다. 그리고 뜻밖에도 몸을 덮쳐 온 재난이 새삼 괴롭고 슬프게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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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탈리야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고서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일리니치나와 함께 외밭의 풀을 뽑으러 나갔다. 일을 하고 있자니까 다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볕을 받아 말라서 바삭바삭한 모래흙에 규칙적으로 삽을 디밀다가 이따금 허리를 펴고 한숨 돌리기도 하고, 얼굴의 땀을 훔치기도 하고, 물을 마시기도 하면서 잠시 잊고 지내게 되었다.
바람에 불려 잘게 찢어진 흰 구름이 푸른 하늘을 떠돌다가 아주 풀려 없어졌다. 태양광선이 대지를 따갑게 내리쬐었다. 동쪽에서 비가 몰려오고 있었다. 나탈리야는 머리를 들지 않고서도 몰려든 구름이 태양을 가로막는 것을 등허리에 느꼈다. 한순간 휙 몰려와서 열기로 허덕이는 갈색 대지에, 덩굴을 뻗은 수박 위에, 키 큰 해바라기 줄기에 휘익 회색 그림자가 비쳤다. 그 그림자는 구릉 비탈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외밭들이며, 더위에 녹초가 되어 납작 엎드린 잡초들이며, 산사나무 덤불이며, 작은 새들의 똥을 뒤집어써서 풀이 죽은 잎새들이 달린 가시나무 덤불을 덮어나갔다. 까라진 듯한 메추라기들의 울음소리는 전보다 더욱 높이 울려 퍼지고, 종달새들의 귀여운 노랫소리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달아오른 잡초를 가볍게 흔드는 바람도 전보다 더 뜨거워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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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리는 침침하게 흐린 눈으로 질경이가 나 있는 멋진 바깥뜰과 노란 덧문이 달린 초가지붕의 집과 높직한 우물을 보고 있었다. 타작마당 옆 낡은 울타리의 말뚝 하나에 비를 맞아 뿌옇고 움푹한 눈구멍만이 거무스름하게 보이는 말의 두개골이 매달려 있었다. 그 말뚝을 녹색의 호박덩굴이 나선형으로 감으면서 기어 올라가 햇볕이 닿는 쪽으로 쭉쭉 뻗어 있었다. 덩굴은 말뚝 꼭대기에 이르러서 부드러운 끝줄기가 두개골의 돌출부와 말 이빨을 감은 뒤 다시 맨 끝은 받침대를 찾아 가까이에 있는 덤불나무 가지에 닿으려 하고 있었다. 똑같은 전경을 꿈속에서인지 혹은 먼 옛날의 어린 시절에선지 그리고리는 본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자 문득 엄습해온 심한 향수에 사로잡혀 울타리 밑에 엎드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말에 안장을 얹어라!”
멀리에서 꼬리를 길게 빼는 호령이 들렸을 때야 그는 겨우 일어났다. 밤중의 행군 때 그는 대열에서 벗어나, 말을 갈아타려는 것처럼 하면서 말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차츰 멀어져 조용해져가는 말굽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말에 올라타자 길을 벗어나서 다른 방향으로 마구 달렸다. 그는 5킬로미터쯤 쉬지 않고 말을 달리다가 이윽고 평보로 바꾸어 뒤에서 추격자가 오지나 않나 귀를 기울였다. 벌판은 적막했다. 다만 도요새가 물가의 모래밭에서 슬프게 울어대고, 어딘가 멀고먼 곳에서 개 짖는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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