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예수회 말씀의 집은 긴 터널의 끝자락에 숨어 있었다. 수원 ㅡ 신갈 간 고속도로는 좁은 터널 하나만을 남겨둔 채 마치 성과속을 나누듯 수원과 광교산 자락의 말씀의 집을 이렇게 나누어 놓았다. 가냘픈 몸매에 우수에 젖은 듯한 하영 씨도 속세를 벗어나듯이 다른 수련 참가자들과 함께 이 터널을 건너왔다. 몇 달 뒤면 평생 다시 나올 수 없는 봉쇄수도원에 들어가 수녀로서의 삶을 살기로 한 그는 새 삶을 앞두고 평신도로서는 얼마 남지 않은 짬을 이 영신수련에 할애했다.
고아인 그는 경기도 의정부의 한 가정에 입양되었다가 세 번이나 양부모로부터 버림받는 뼈저린 아픔을 겪었다. 열일곱 살 때부터 공장에 다니며 외롭게 살아온 그에게 삶은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영신수련의 첫 과제는 그에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었다. 수녀의 길을 택한 만큼 이젠 속세에 미련도, 상처도 남지 않았다고 자위했다. 하지만 그는 오래지 않아 이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묵상 도중 초등학교 때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사랑을 받고 싶어 밤새 눈이 퉁퉁 붓도록 우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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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존귀한 대우를 받아본 적도 없고, 자신이 이처럼 존귀하다고 여겨본 적이 없었던 그는 마치 자기 안의 보물을 드디어 발견한 것 마냥 가슴을 쓸어내리며 벅차오르는 감격을 억누르지 못했다.
구석에 앉아 있던 '사랑하게 된다면'의 눈물샘이 고장난 것은 이때였다.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던 그는 지극 정성으로 자신에게 삼배를 올린 한 참석자의 품에 안겨 울고 있었다. 그의 얼었던 가슴은 이렇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절을 하는 이도, 받는 이도 없었다. 부처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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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타 스님은 자신이 개발한 '나지사 명상'을 통해 참가자들이 불쾌한 상황에 봉착했을 때 자기의 마음을 다루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제시했다. 나지사는 '구나'와 '겠지', '감사'의 끝글자를 합친 말.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랬구나'라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본 다음,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라며 상황을 이해하고, 그나마 더 상황이 나빠지지 않는 것을 '감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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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것으로써 자성(自性)의 定을 세우자. 심지는 원래 어리석음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어리석음을 없게 하는것으로써 자성의 慧를 세우자. 심지는 원래 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그름을 없게 하는것으로써 자성의 戒를 세우자.' 본디는 '없건만' 경계에 따라 '일어났다 사라지는' 마음의 원리를 살펴 많은 수행자들이 찾아 헤매던 '시비분별이 없는, 한 생각이 일기 바로 전의 자리'인 원래 마음에 머무르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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