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악스런 야만인이 주는 애틋한 비애
서지문
『 Tess of the D'urbervilles 테스』와 『 The Return of the Native 귀향 』
의 작가로 우리에게 친숙한 토머스 하디의 『 The Mayor of Casterbridge 캐스터브릿쥐의 시장 』은 우리의 세련된 감수성보다는 원초적 감성에 호소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마이클 헨처드라는 떠돌이 건초단 묶는 일꾼이 조그만 시골 장터에서 술김에 아내를 경매에 부쳐 팔아치우는 장면으로 막을 연다.
19세기 말에 쓰여졌고 19세기 초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인물들이나 배경이 태고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 작품은 학식도 인격도 보잘 것 없고 다만 고집과 감정이 지나치게 강한 마이클 헨처드라는 사회부적응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독자들을 매혹할 만한 매력이 거의 없는 듯한 이 인물은 그러나 한 세기 이상 매우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하디는 『 Tess of the D'urbervilles 테스』의 여주인공 테스 더비필드나 『 The Return of the Native 귀향 』의 여주인공 유스테이시아 봐이, 그리고 『 Far from the Madding Crowd 광란의 속세에서 멀리 떨어져 』의 여주인공 베스쉬바 에버딘 등 여성인물 창조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지만, 이 작품의 남주인공으로 지성이나 이지력보다는 원초적 감정이 강한 마이클 헨처드는 그들에 버금갈 만큼 성공적인 인물상이다.
술김에 아내를 팔아치우고 다음날 깨어서 자신의 행동을 깨달은 헨처드는 교회에 들어가서 자기가 살아 온 햇수인 21년 만큼 앞으로 절대로 술을 먹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다. 20년간 술을 끊고 성실히 일한 덕분에 헨처드는 캐스터브릿쥐라는 소도시의 시장이 된다. 그 동안 그가 아내를 팔아버린 선원을 찾아서 아내와 딸을 되찾으려고 은밀히 무진 애를 썼지만 찾지 못하고 포기했고, 사업상 여행을 하다가 병이 걸렸을 때 같은 여관의 투숙객으로 그를 간호를 해 주었던 루셋타라는 미모의 세련된 여인과 결혼을 약속한 처지였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자기를 사들인 선원을 따라 외국에서 살다가 그 선원이 사망하자 옛 남편을 찾아 온 그의 아내는 그가 영광의 자리에 앉아 있는 광경을 창 밖에서 엿보고 착찹한 한숨을 짓는다. 그날 저녁의 만찬 자리는 헨처드가 영광의 정점에 있었던 자리면서 또한 그의 몰락의 시발점이 되는 자리였다. 그의 에너지와 추진력을 높이 샀던 시민들은 그의 완강함과 비사교성에 진력이 나기 시작했고, 그에게서 변질된 밀가루를 산 시민들은 그를 비난하고 불신하게 된다.
돌연히 나타난 그의 아내 때문에 루셋타와의 결혼계획은 무산되고 헨처드는 의무감에서 아내와 재결합을 한다. 그에게는 이미 늙은 아내보다 참한 처녀로 성장한 딸이 큰 기쁨이 된다. 그러나 그의 사업은 기울어가고 그가 첫눈에 큰 호감을 느껴서 거의 애걸하다시피해서 자기 사업장의 지배인으로 붙들어 둔 도널드 파프레이는 사교적이고 남의 감정을 잘 배려할 줄 알아서 곧 시민들의 총아가 된다. 헨처드의 호감은 곧 격렬한 미움으로 변하고, 파프레이와 자신의 딸 엘리저베스제인 사이에 싹트는 사랑을 그는 엄금한다.
아내 수전이 병들어 죽고, 그녀의 유서에서 엘리자베스 제인이 자기 딸이 아니고 자기 딸이 어려서 죽은 후에 태어난, 수전의 두번째 남편이었던 선원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엘리자베스 제인에 대한 애정도 증오로 변한다. 엘리자베스 제인을 단념한 파프레이가 루셋타와 사랑에 빠지자 루셋타를 미온적으로 밖에 사랑하지 않았던 헨처드는 격렬한 질투심에 불타서 루셋타를 협박하며 결혼을 요구한다.
그러나 점쟁이의 말을 믿고 사들였던 곡물의 값은 폭락하고, 그가 20년 전 아내를 팔아치웠다는 사실도 폭로되자 시민들은 파프레이를 시장으로 추대한다. 지위도 잃고 재산도 잃고 연인도 잃고 딸도 잃은 헨처드는 그 때 21년간 맹세한 금주의 기간이 끝나 다시 폭음을 하게 되고 점점 추하게 몰락하게 된다. 그러나 그간의 천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돌보아 주는 엘리자베스 제인에게 그는 마지막 모든 애정을 쏟는다.
파프레이를 살해할 마음도 품어보고 자신과 루셋타와의 관계를 악의적으로 폭로하려는 마음도 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는데 그러나 루셋타의 과거는 드러나고 루셋타는 그 타격으로 세상을 뜨고 만다. 엘리자베스 제인의 생부가 나타나자 헨처드는 자기 생의 마지막 의지할 곳을 잃지 않으려고 엘리자베스 제인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해 버리고 만다. 그것을 안 엘리자베스 제인은 그를 용서할 수 없다고 단호히 선언하고 그는 홀로 황야로 사라진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재앙을 불러오는 사나이, 그의 모든 비운이 (거의)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인 사나이, 이성이나 면밀한 타산보다는 애증이 너무나 강하고 격렬한 사나이. 이 우매하고 억세면서도 나약한 사나이가 놀랍게도 많은 세련된 독자들에게 큰 동정과 공감을 샀다. 독자들 자신 속의 원시적 인간을 자극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갈수록 세련되고 타산적이 되어가는 세태에 대한 염증의 반작용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