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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책 한권

퇴근길 책 한권

: 롯데백화점의 책장을 들여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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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1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196쪽 | 150*210*20mm
ISBN13 9788924041910
ISBN10 892404191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아울렛에 근무하는 동안 직장 내의 인간관계에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직원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 욕심과, 행여 화라도 냈다가 상대방과 전처럼 지낼 수 없을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나는 늘 화를 누르고 살았다. ‘사고 치지 말자’는 생각이 인간관계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제까지 나름 잘 지켜왔다고 생각한 이미지를 한순간에 잃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가 남에게 잘못하는 만큼 아이들에게 돌아온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계속 떠올라 더욱 남에게 확실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혼자 전전긍긍 애태운 적이 많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생각 탓에 내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정말 쓸데없는 고민들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가슴 한편이 시원해졌다. 책의 결론은 간단하다. 인간이란 그 존재 자체로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꼭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야 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라고 느낄 때 개인은 스스로의 가치를 실감하게 되고 자신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 p.24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셨죠. 다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소녀가 아내, 아내가 엄마가 된 것이에요.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늘 바빴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하루의 준비를 모두 마치고는 힘든 공사 현장으로 일을 하러 갔죠.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렸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기다린 것은 엄마가 들고 오는 보름달 빵과 우유였어요.
그때만 해도 간식거리가 없고 먹을거리도 귀했던 터라 엄마는 매일 공사 현장에서 나오는 새참을 드시지 않고 늘 가져오셔서 오빠와 나, 그리고 막내에게 주셨지요. 그것도 모르고 그때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고 엄마가 어찌나 반가웠던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 빵과 우유를 꾸깃꾸깃 들고 오는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지 조금 헤아려지네요.
엄마! 당신은 늘 그런 사람이었죠. 당신보다는 남편과 자식들을 걱정하고 당신을 돌보기보다는 늘 식구들의 건강과 행복을 먼저 챙기셨어요. 어느 날 한평생을 희생한 당신께선 기억을 잃어가는 병을 얻었죠. 그것도 가족에게 짐이 될까봐 얘기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에는 가족의 손을 놓고 길을 잃으셨죠. 얼마나 깜깜하셨을까요? 그럼에도 가슴 깊이 있던 자식에 대한 사랑이 기억이 되어 어머니는 그 자취를 따라 어린 자식과 함께 살았던 곳, 그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을 찾아다니셨어요. 어머니가 두려움 속에서 다친 발로 힘든 몸을 이끌고 그때 그 시절의 행복함이 남아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떨어졌어요.
--- p.64

뒤척거리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싶었는데 어느덧 아침이다. 또다시 반복되는 하루. 아닌 게 아니라 그날 저녁에 그 고객은 여지없이 매장을 방문했다. 어제의 반복이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반복의 연속. 말 그대로 지옥에 빠진 느낌이다. 나도 백화점 생활 짬밥이 10년하고도 몇 년인데 이런 고객은 처음이다. 피가 마른다.
이열치열이라고 할까. 마치 구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화’, ‘용서’, ‘심리학’과 관련된 책을 닥치는 대로 사서 읽기 시작했다. 틱낫한 스님의 《화》를 시작으로 해서 《용서》, 《긍정 심리학》, 《불평 없이 살아보기》, 《생각 버리기 연습》, 《용서해야 할 101가지 이유》에 이르기까지. 다 열거할 수 없지만 훨씬 더 많은 책들을 읽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하룻밤에 두 권이든 세 권이든, 심지어 많을 때는 다섯 권도 읽었다. 그렇게 집중해서 책을 읽던 도중에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내가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무조건 고객을 원망하고 미워했던 것은 아닐까?’--- p.88

“고전은 어디선가 보았던, 들었던, 느꼈던 것 같은 감정을, 한 번 읽었을 때에도, 다시 한 번 읽었을 때에도 계속해서 불러일으키는 책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프루스트의 책이야말로 이런 ‘고전’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은 후로는 누군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항상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자신 있게 권해주고 있다.
이 책이 내게 가져온 변화가 한 가지 있다. 바로 시간 나는 대로 일기를 쓰게 된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엔 사소한 것도 하나 놓치지 않고 기억하곤 했다. 아주 어린 꼬마일 때도 유치원에 다녀오면 그날 아침부터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한참이나 재잘거렸다. 그렇지만 요즘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내는 것조차 힘들 때가 많다. 기억에 남을 만큼 큰 사건이 없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시간만 훅훅 흘러가는 것 같아 문득 두려운 마음이 밀려든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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