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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부서

사색의 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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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1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246g | 130*188*20mm
ISBN13 9788994015989
ISBN10 899401598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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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그 얘길 했을 때는 우리가 서로 모든 걸 터놓고 얘기하기 몇 달 전이었어. 그리고 그때조차 어떤 것들은 너무 사소해서 굳이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그것들이 날 찾아와 괴롭히는 걸까? 하필이면, 내가 모든 것에 진력이 나 있는 지금. --- p.9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은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대신 괴물 예술가가 되고자 했다. 여자는 여간해선 괴물 예술가가 되기 힘든 건, 이는 괴물 예술가는 오로지 예술에만 천착할 뿐 세속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보코프는 자기 우산조차 펼치는 법이 없었다. 우표를 붙일 땐 베라가 그를 대신해 침을 묻혀주었다. --- p.15

아기와 함께 지내는 날들은 길게 느껴졌지만, 밖으로 연결되는 출구는 전혀 없었다. 아기를 돌본다는 것은 내게 언뜻 보기에 다급하면서도 지루한 일련의 고된 일들을 반복해야 함을 의미했다. 그러다 보면 하루는 잘게 쪼개져 부스러기가 되어버렸다. --- p.37

그가 그녀에게 물었을 때 그들은 커피숍에 있었다. 당신은 언제 제일 행복했어? 그 순간 그녀가 놓쳐서는 안 되었던 것,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의 의미, 그 순간 공기가 결을 달리 하던 것. --- p.121

나보다 더 커?
나보다 더 말랐어?
나보다 말수가 적어?
더 편해, 그가 말한다.
--- p.123

이 도시엔 울 수 있는 데가 없다. 그러나 아내는 어느 날 한 가지 수를 낸다. 그들 아파트에서 800미터 남짓한 거리에 묘지가 하나 있다. 거기라면 다른 사람을 심란하게 만들 일 없이 울면서 헤매어도 괜찮을 것이다. 심지어는 손을 막 내저어도 괜찮을 것이다. --- p.126그녀는 그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던 첫날밤을, 그래서 두려움이 밀려들던 그때를 떠올린다. 그녀는 머리를 그의 가슴에 기대고 심장 뛰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언젠가 이 소리도 멈추겠지, 그녀는 생각했다. 안 돼, 안 돼, 그래선 안 돼. --- p.129

그녀가 눈치 채고 난 후 처음으로 그와 섹스했던 그날. 맙소사. 맙소사. 그 여자의 몸이 아닌 아내의 몸을 내려다보는 그, 남편의 얼굴이 아닌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그녀.
“당신을 그렇게 외롭게 만들어서 미안해.” 나중에 그녀는 남편에게 말했다. “사과는 하지 마.” 그가 말했다. --- p.137

기혼자들의 그 참혹한, 쫓기는 눈빛은 볼 만큼 보았다. 결혼한 사람은 늘 그런 눈빛을 하고 있었는데 그저 그녀가 이제 와서 보게 된 것일까? --- p.151

당신의 가장 행복한 기억 속에 나도 있기를 바랐었어.
나중에 아내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남편이 그 문장의 단어 하나하나를 그렇게 특별히 강조했던 까닭을 알게 된다. --- p.172

돌이켜 생각하면 그가 왜 떠나고 싶어 하는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그에게 머리끝까지 화가 난 두 여자가 있다. 한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려면, 그는 지하철을 타고 도시를 횡단해 그녀의 집 앞으로 가야 한다. 다른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려면,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짠 헤어셔츠를 입고 한없이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다. --- p.190

그래도 그녀는 얼마 전부터 그가 다시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다는 데 주목한다. 적어도 조금은. 요새 그는 늘 그녀를 쓰다듬고 얼굴에 흐트러진 머리칼을 뒤로 넘겨준다. “고마워.” 어느 날 밤 함께 마당에 앉아 있는데 그가 말한다. 마치 그들이 모두 자동차 밑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데, 그녀가 불가해한 힘을 끌어 모아 차를 움직인 것 같다는 투다. 그는 그녀에게 키스한다. 그때 뭔가, 파르르한 떨림인지도 모를 어떤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귀에 살충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즈즈즈프트. 즈즈즈프트. 즈즈즈프트. “우릴 절벽으로 몰아 떨어뜨리지 말지 그랬어.” 그녀가 말한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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