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언이설』의 주인공인 꺼런(葛仁)은 지식인이며 낭만적 혁명가이다. 꺼런은 기구하게 태어났지만, 범상치 않은 능력으로 일찍이 일본에 유학하여 의학을 배웠고, 리따자오와 천두시우 등과 밀접하게 교류하였다. 베이징 대학에서 의학을 가르치다가 5·4운동에 참여하여 투옥되기도 했으며, 소련에 유학해 레닌을 만나기도 하고 트로츠키를 동정하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상하이 대학에서 취치우빠이, 루쉰과 내왕하였고, 나중에는 소비에트 구에 가서 혁명과 장정에 참가하였으며, 옌안에 온 후에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저작의 번역에 종사하였다. 그러던 중 과거 트로츠키를 동정한 이력이 혁명 윤리와 어긋난다는 판단에 따라 위기 상황에 몰리게 되자, 그를 아끼는 사람의 특별한 배려와 획책하에 일제와의 전면전이 있었던 얼리깡 전투에서 희생된 것으로 꾸며져 ‘민족영웅’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꺼런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시가 세상에 발표되면서 그가 아직 살아서 따황 산에 은거하고 있다는 소식이 새어 나온다. 그리고 실제로 그가 따황 산의 바이포 진으로 도피해 자신의 전기소설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는 정황들이 포착된다. 그의 행적이 폭로된 후 지극히 희극적인 상황들이 출현하고, 당시 중국의 패권을 다투던 각 세력들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그의 생사여부는 결코 그 개인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 세력은 “그의 명성을 보호하기 위해 그를 사살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 적대 세력의 지하공작자는 꺼런을 구출하려고 한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세 당사자가 시차를 달리하여 진술하고 있는 내용이 『감언이설』의 스토리를 이끌어 나간다. 의사 출신인 바이성타오와 수감자 자오칭야오, 그리고 법학자 판지화이가 그들이다. 작품은 이 세 명의 구술에 따라 3부로 나뉘며, 여러 관련 인사들의 이야기와 인용문들이 세 명의 진술과 함께 제시된다. 그리고 소설의 집필자인 ‘나’의 서술도 함께 기록되는데, 기묘한 것은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서술은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꺼런의 연인인 삥잉과의 사랑과 엇갈림 등이 각자의 입장들과 기묘하게 어울리며 꺼런의 마지막 운명을 향해 치달아 나간다. 제1부가 꺼런의 사살을 향해 치닫는다면, 제2부는 그를 구하기 위한 쟁투들이, 그리고 제3부에서는 제3자를 통한 ‘우회 살인’에 대한 진술들이 숨 가쁘게 전개된다. 즉, 얼리깡 전투에서 죽은 일본인의 동생 가와이를 움직여 꺼런을 암살하도록 함으로써 그의 죽음에 대한 명분과 그의 명예를 동시에 지킨 것이다.
장군, 그 후 일어난 일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당신들이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요, 나는 또우스종의 분부대로 곧바로 아칭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우선 꺼런이 아직도 바이포진에 머물고 있는지 알고 싶었죠. 마을에 사는 한 노인을 통해서 나는 꺼런이 감금되어 있는 곳을 알아냈습니다. 맞아요, 그곳은 바로 바이포의 소학교였죠. 진 안으로 들어오면서 나는 사실 그곳을 지나쳤고 또한 두 사람이 교문 앞을 서성이는 것을 보았었죠. 그들은 비록 평상복 차림이었지만 깔끔하게 차려 입은 모습으로 보아 그곳 현지인이 아니었죠. 나는 곧바로 또우스종과 아칭이 아직까지 연락을 취하지 못한 게 틀림없으며, 아칭은 눈이 빠져라 내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죠. 장군의 말이 맞아요. 바이포 소학교를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나는 이미 뒤에서 누군가가 미행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습니다. 맞아요, 그들은 바로 아칭의 수하였죠. 나중에 아칭이 나에게 하는 말이, 그의 수하가 나를 미행한 것은 내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는 거였죠. 아, 그 역시 당연한 것이죠. 당시 내 생각이 물론 모두 맞아 떨어지긴 했지만 정말로 꺼런을 만날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떨리고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며 다리조차 후들거리는 것을 걷잡을 수 없을 정도였죠. --- p.186
동지들, 이 점은 중요한 얘기요. 나머지는 얘기하고 싶지 않은데, 좋은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오. 혁명 사업을 위해서 꺼런은 따황 산에서 영광스럽게 희생된 거요. 여러 해 동안 그 일을 생각하면서 나는 칼로 도려내듯 마음이 아팠소(위펑까오 동지가 각별히 해명한 바로는, 아칭의 통곡은 마치 부모가 돌아가신 것처럼 애통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러니 그 일에 대해서 나는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소. 그러니까, 꺼런이 희생되기 전에 나는 결코 내 신분을 노출하지 않았던 것이오. 내 기억은 아주 분명하오. 판지화이는 그곳에 도착한 뒤 나와 양펑량을 물색하고 상부에 그 업무를 보고했소. 교활한 적이 면전에서 감언이설로 희롱하고 있으니, 약간의 허점에도 주의하지 않으면 조직 전체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소. 그 당시 나는 죽음의 위험에 직면해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으며 가슴도 전혀 뛰지 않았다는 걸 말하고 싶고, 동시에 판지화이에게 마음으로도 복종하고 입으로도 복종했다고 떠벌리는 것이오. [……] 동지들, 웃지 마시오. 내 말은 모두 진실이오.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 개인의 능력이 한계가 있어서, 비록 내가 꺼런을 구출해내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나는 전심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벌써 뒈졌다고 해도 여한이 없소이다. --- pp.376~377
나는 직접 손을 쓰지 않았소. 왜냐하면 공산당은 필경 승리할 것이고 국민당은 패배할 것이라고 거론한 꺼런의 말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었는데, 그것을 여전히 좀 반신반의하고 있었기 때문이오. 꺼런의 일생은 대단히 신중했고, 큰일에는 뤼단(呂端)처럼 흐리멍텅하지 않았소. 장기적으로 투쟁을 실천하던 과정 중에서 내게도 그런 품격이 길러졌지. 만에 하나 팔로군이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그렇다면 꺼런은 공연히 총에 맞는 셈 아니오? 나는 제일 현명한 방법으로 이 일을 가와이에게 맡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소. 누가 이기든 누가 승부에서 패배를 하든 상관이 없었소. 그리고 누구 손에 의해 역사가 어떻게 씌어지든 상관없는 일이고, 꺼런에게는 민족적 영웅이라는 월계관이 씌워질 테니까. 오, 훌륭한 나의 아가씨, 내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구려. 내가 어떤 요구가 있어 여기 머물고 있는지 아가씨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오. 천지에는 양심이 있고 나는 꺼런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으니, 비로소 그렇게 했던 것이오. --- pp.593~594
오늘날 중국에서 현대적 지식인의 운명에 대해 이처럼 각고의 노력으로 고심과 퇴고를 거듭해가며 성숙한 서사 능력을 보여준 작가가 있었던가. [……] 소설가로서의 리얼의 탁월함은 『감언이설』 같은 현대 중국 역사 속의 지식인의 운명과 생존 양식에 대한 서사에서 보여주는 안목과 통찰력, 그리고 복잡하면서도 성숙한 서사수법의 운용을 통해 더욱 잘 드러난다. 또한 리얼이 각종 인터뷰와 대담, 강연 등에서 보여주는 문학에 대한 독창적인 예지나 평론을 통해 왕왕 드러나는 번득이는 통찰력은 예사롭게 보이지가 않는다. 오늘날의 중국 작가 중 보기 드문 지략형 작가라는 말이 새삼 와 닿는다. _박재우(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발문 「만만치 않은 지략형 작가 리얼과의 포스트 조우」 중에서
주인공 ‘꺼런’의 삶을 경험한 세 명의 구술자가 자기 생애를 마감할 무렵 자기 관점으로 꺼런의 죽음을 구술하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다. 우리는 『감언이설』을 읽는 순간, 역사와 현실 그리고 진실과 허구라는 사각형 구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역사가 과거의 현실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실에 가깝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를 기술하는 자의 사관이나 사상이 왜곡되어 있다면 진실한 역사라고 일반인이 알고 있는 상식도 완전히 허구일 수 있다. 그러므로 동일한 시대를 살아간 세 사람의 구술을 통해 근대사를 재정립해야만 하는 책임은 독자 개개인의 판단에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주된 메시지인 것이다._박명애
--- 옮긴이 해설 「서술하되 창작하지 않는 감언이설 속의 역사의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