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자들과의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면서, 나는 그런 슬픔이 집단적으로 갇혀 있어 출구를 찾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매번 절망하거나 당황해 했다. 그러면서도 무력하기 짝이 없는 한 편의 시를 함께 계속 읽어 나갔다. 시를 읽으면서, 우리가 한 편의 시를 읽는 일이 지루하고 또 무력한 것일 수 있지만, 적어도 그 시를 둘러싸고 있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또 그 시를 읽고 있는 우리들의 고통에 대해서, 좀더 성숙하고 예민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처받은 자들이 타인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가난한 자들이 오히려 가난한 자들을 핍박하게 만드는 세상의 아이러니 앞에서, 과연 시는 무엇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함께. --- p.55
선생님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려봅니다. 정겹고 포근했던 소중한 인연들이 함께 되살아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힘을 통해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우리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가장 부드러운 혁명’을 몸소 실천한 셈이지요. --- p.72
먹고 살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단단히 다지는 일이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은 분명하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머를 마이 멕에이지, 뭐”라고 했던 촌장의 말에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잘 먹고 잘 사는 것, 시쳇말로 참살이의 비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참살이의 참된 가치는 무엇인가. 오직 나와 내 가족의 안녕과 성장을 위한 이기적 욕망이 아니라, 나와 타자의 소통을 모색하고 공존하려는 공동체적 문화나눔의 정신이라고 믿는다. 무공해 자연식품을 먹고, 일상의 명상을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 참살이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 p.94
인문정신을 매개로 한 만남은 교육자든 피교육자든 주체의식을 자각하는 과정이다. 이런 인문정신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이 더불어 어우러지는 삶의 모둠판 속에서 빛과 향기를 발한다. 이 삶의 모둠판에는 좌초하고 분노하며 환멸을 느끼면서 욕망과 꿈과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개인들의 열정에 가득 찬 행위들이 있다. 그래서 갈등과 대립이 있다. 갈등과 대립이 있다는 것은 서로의 생각과 의견에 다름이 있음이요, 생각과 의견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삶의 가치를 똑같이 인정하고 평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만남과 대화와 소통을 통해 하나의 삶의 모둠판에서 어우러지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삶의 현장은 개인들의 다양성의 가치가 인정되고 단절 없는 소통이 이루어지며 공동체 의식을 나누는 만남의 광장이다. 인문학을 통한 만남도 이런 것이다(것이어야 한다). --- p.116
빈민들이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매우 급진적인 행동이다. 인문학 학습이 빈민들에게 정치적 삶을 가르치며, 진정한 힘이 존재하고 있는 ‘공적 세계’로 그 사람들을 거의 확실하게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인문학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험’한 사람들로 변화시키고, 그 사람들로 하여금 합법적이고 정당한 힘을 갖게 해준다. --- p.119
노숙인에게 인문학이 왜 필요한가. 설사 노숙의 원인이 경제적 문제에 의해 발생한다 해도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경제 문제만은 아니다. 노숙의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의 노숙처럼 급작스럽게 그러한 상황에 처해지는 경우 이로 인한 당혹감, 절망감, 상실감에서 오는 상처는 쉽게 존재감의 상실로 이어져 삶 자체를 포기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경제적 상실로 인한 빈곤도 문제지만 더 절박한 것은 자신감, 존재성, 자존감 등의 회복일 것이다. 따라서 존재감의 상실로 인한 더 큰 어려움을 겪기 전에 훼손된 마음을 치유할 기회가 노숙인에게도 주어져야 한다.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문제 앞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존중감과 자존감 그리고 삶의 의미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노숙인에게 경제 문제의 해결에 앞서 인문학이 행해져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p.130
‘평화平和’는 함께 더불어平 밥을 먹는 일和이라 한다. ‘화’는 벼禾와 입口의 조합이니, 밥을 해서 함께 나누자는 뜻이 담겨 있는 셈이다. 이 말은 문학평론가 고영직 교수가 입버릇처럼 자주 내뱉는 말이기도 하다. 밥을 나눈다는 것이 평화라니! 나는 그 동안 밥을 나누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사실, 고백컨대 인문학은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고 깨우쳤다. 인문학을 하기 전 모습과 그 이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나는 요즘 자주 걸으며, 대화를 즐기고, 몇 번에 걸쳐 원고를 고쳐 쓴다. 생각을 다시 읽고 정리하며, 글의 모서리를 다듬어 나가는 과정이 재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그분들과 만나는 꿈을 꾼다. 그리고 그분들과 다시 만나서 예술을 논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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