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삶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넘어, 그저 임신해서 사회 재생산에 기여하는 존재로만 여기는 세상에서 과연 여자들은 아이를 기꺼이 낳고 싶어할까? 출산과 양육이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고 오직 여자만이 커리어의 중단을 맞이하는 것이 아름다운 희생 정도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여자들은 그 희생을 감당하려고 할까? 낮아지는 출생률을 올리는 것은, 낙태죄가 강화된 사회가 아니라 아이를 낳고도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칠 수 있다는 기대가 존재하는 사회이다. 아이를 낳더라도 자신의 중요한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을 때,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고 출생률은 올라갈 것이다.
---「임신을 중단할 권리에 대하여」중에서
오랫동안 크고 작은 위협들을 경험해왔지만 그래도 내가 조심하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던 여성들에게, 이 사건은 ‘이것은 내가 조심해서 될 일이 아니며 나도 얼마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강력한 자각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마음 한쪽이 불편했던 조바심의 기억들이 모두 소환되었다. 언론이 ‘이것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라고 힘주어 반복적으로 이야기할 때마다, 여성으로서 느끼는 불안과 피해자에 대한 추모의 마음마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에 대하여」중에서
안타깝고 화가 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소위 지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개그의 소재로 삼기 힘든 사회적 분위기가 된 이후부터, 유난히 여성을 비롯한 상대적 약자를 개그의 소재로 삼는 장면들이 더 많이 목격되고 있다는 것. 강자를 풍자할 수 없으니, 약자를 조롱하는 것으로 분량을 채울 수밖에 없다는 건가? 대부분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여성은 ‘예쁜 외모로 인생 편하게 사는 여자’ 혹은 ‘못생겼는데 미련하고 우악스러운 여자’로 양분되며, 이러한 이분법 속에서 여자는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일 수 없는 존재로 비춰지곤 한다.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느끼는 유감에 대하여」중에서
생리는 그저 내 몸에서 일어나는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감춰야 하거나 안 아픈 척 참아야 하는 일도 아니다. 비싼 생리대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감당해야 할 이유도 없다. 여자인 내 몸의 문제가 곧 여성의 문제이며, 또한 나를 둘러싼 세계와 밀접하게, 그리고 다양한 층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 달에 한 번 생리를 겪어내는 몸에 대하여」중에서
다양성을 무시한 사이즈도 그렇다. 애초에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44, 55, 66, 이 세 가지 사이즈로 이토록 많은 여성들 의 몸을 구분하겠다는 설정이 말이다. 그나마 판매중인 66 사이즈는 예전보다 작아져버리는가 하면, 또 상당수의 브랜드는 프리사이즈라는 명목으로 단 한 사이즈의 제품만을 판매한다. 이것은 극소수 브랜드의 차별화가 아니라 국내 패션브랜드에 널리 퍼진 전략이 되었기에, 이 역시 여성의 몸을 향한 폭력적 규율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 사이즈를 넘어간다면 당신은 여자가 아닙니다. 가녀리지 않은 당신, 반성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담은.
---「여성복 매장에서 느낀 씁쓸함에 대하여」중에서
하나마나 한 뻔한 이야기들을 훈계하듯이 늘어놓는 성교육의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19금이라는 닳고 닳은 단어 뒤에, 정말로 해야 할 이야기들을 감춰두는 시대는 막을 내려야 한다.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이 성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부가 배포한 자료를 따라가기보다, 십대의 사랑을 다룬 영화 한 편을 다 같이 보고 토론 방식으로 수업을 하는 것이 훨씬 적절한 시간이 될 만큼 지금의 십대는 어리지도 어리석지도 않다.
---「참을 수 없는 2016년 성교육에 대하여」중에서
여자 혼자 떠나보면 알게 된다. 내가 본래 태어나 자란 곳이 어떤 규칙을 여성에게 적용시키고 ‘당연한 문화’로 이해시켜왔는지를. 내가 앞으로의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이토록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하는데, 한국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졌던 선택지란 아주 뻔한데다 몇 개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진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던 나지만 오직 혼자 떠났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나에게 남긴 교훈들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에 대하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