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흙 속에 숨은 보석을 찾으러 왔어.”
야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답답한 기색이었다.
“세상의 모든 악당들이 공주님의 보석인가요?”
야빈이 거의 따지듯 물었지만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닦아도 빛나지 않는다면 그건 자갈이야. 하지만 닦았을 때 빛난다면, 그건 아무리 깊이 파묻혀 있어도 보석인 거야.”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에 잘 속는다. 그것이 전부라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는 본질을 확인할 수 없다. 진짜 빛나는 건 숨어 있기 마련이니까.
“나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할 거야. 하지만 그 의미에 모두가 화답하지는 않겠지. 그럼에도 네가 할 일은, 내가 그들에게 부여한 의미를 인정하는 거야.” ---「약속」 중에서
3년 전, 기달티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고스란히 돌려받았다. 타인의 소중한 사람을 죽인 대가를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것으로 뼈저리게 갚았다. 그 응징이 더 쓰라린 까닭은, 그 참사가 스스로의 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아내를 죽였다. 이제껏 기르고 가르친 아이들을 죽였다. 주민들도, 적도, 피아 구분할 것 없이 모조리 죽였다. 정신을 차린 지금, 기달티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어 또다시 말라 가고 있다. 자신을 혐오하면서, 자괴감에 빠져서.
기달티처럼 자신의 죄에 초연해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무엇보다도 바라는 일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죄의 무게를 똑똑히 깨닫길 원한다. 그것이 얼마나 검고 붉은지, 그것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를 알기 원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사람들이 그 죄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낱낱이 알되 묶이지 않으며 사무치게 깨닫되 함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이 마치 곡예 같다고 불평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회복이니까. ---「양의 길」 중에서
“나는 인간이 싫습니다. 정말 지독하게도 싫습니다. 내가 바로 그런 인간이라는 게 신물이 납니다. 이런 인간을 대체 어떻게 사랑하라는 겁니까?”
자이트의 두 눈은 불길처럼 일렁였다. 광기와 분노가 담긴 그 눈은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의 온도에 타들어 가는 그에게 조용히 답했다.
“사랑은 사랑할 만한 자에게 하는 게 아니에요.”
사랑을 곡해하는 자들은 그렇게 오해한다. 아름다워야, 착해야, 능력이 많아야, 언변이 좋고 재력이 있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그런 자들만 사랑받을 만하다고. 아, 이 얼마나 사랑을 우습게 여기는 말인가.
“마음에 든 것을 좋아하는 건 누구나 해요. 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은 내 안에 있는 것을 주는 거예요.”
그렇다, 사랑은 내 안에 채워진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도무지 사랑할 만한 자가 세상에 없다고 슬퍼할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베풀 만한 사랑이 없음을 슬퍼해야 한다. ---「묶는 나무」 중에서
“멈추고 싶어야 멈춰지는 거야. 네 마음을 잘 들여다봐, 네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지, 미워하고 싶은 건지.”
무아카의 미간이 더 좁아졌다. 돌이켜 보니 이제껏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괴로움에 몸부림칠 뿐, 자신이 뭘 원하는지는 여태 몰랐다. 관심도 없었다.
“난 미워하기 위해 고통받는 편을 택했어. 하지만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미워하는 걸 포기해야 돼. 그 둘은 서로 꼬리를 물고 도니까. 고통스러워서 밉고 미워서 고통스럽고, 영원히 끝나지 않아.”
무아카는 고른 숨만 이을 뿐 반박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아미크의 목소리는 조용하고도 힘 있게 무아카를 내리쳤다.
“선택해야 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워하길 멈출지, 아니면 미워하기 위해 고통받는 편을 택할지.”
어느 쪽이든 쓰라렸다. 그래서 무아카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왜요?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내가 그래야 돼요?”
“네 인생이니까.”
필사적으로 저항했건만, 아미크의 대답은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명료했다.
“그들의 인생이 아니라 네 인생이니까. 그들이 잘못했어도 네 인생을 사는 건 결국 너니까.”
---「단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