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로서의 의무를 다할 수 없는 사람은 아버지가 될 권리가 없다. 가난도 일도 체면도, 자식을 키우고 가르치는 의무를 면제해줄 이유가 될 수 없다. 독자들이여, 그 점에 대해서는 나를 믿어도 좋다. 예언하건대, 누구든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토록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는 자는 오래도록 자신의 잘못에 대해 통한의 눈물을 흘릴 것이며 결코 그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것이다.”
교육학의 명저로 꼽히는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에밀 또는 교육론(Emile ou de l’education)』 앞부분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쓴 저자는 자신의 아이들을, 그것도 무려 다섯 명이나 고아원 문 앞에 내다 버렸다. --- p.3~4
루소 시대에 자식을 고아원에 보내는 것이 “사회의 관행”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중략) 그러나 아무리 “사회의 관행”이라고 해도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는 것은 부모로서 부끄러운 일이었다. 루소는 편지들과 말년의 회고적인 글들에서 자식을 버린 행동을 변명했다. 그는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우며 양심의 가책과 친지들의 비난을 물리치려고 애썼는데,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것은 열악한 경제 여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p.8~9
그는 “내가 내 자식들에 관해서 취한 결정은 아무리 분별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늘 내 마음을 편히 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교육론 『에밀』을 구상할 때 나는 무엇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의무를 소홀히 했음을 느꼈다. 마침내 회한이 쌓여 나는 『에밀』의 첫머리에서 내 과오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야 말았다”고 솔직히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루소가 『에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언급해야만 할 것 같다. 바로 고아원에 맡긴 자식들에 대한 후회와 속죄에 대한 것이다. 루소는 자신과 편지를 주고받던 한 사람에게 “아직 나에게는 책을 써서 씻어야 하는 오래된 죄가 있습니다. 대중은 그 후에 나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 p.12
『에밀』은 단순히 교육학자만의 연구 대상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인간의 본성에 관심을 갖는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읽고 연구해야 할 고전이다. 그 무엇보다 『에밀』은 교육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교본이 아니다. 루소 자신도 “다양한 경험적 상황을 배제하고 인간 교육의 일반 원리들을 찾기 위해 이론적이고 보편적인 전형을 만들었을 뿐이며, 각 교육자들은 특수한 교육적 상황에 따라 이를 제 나름대로 적용하라”라고 충고한다. --- p.15
루소에게 가장 중요한 지식은 인간에 대한 지식이다. 따라서 루소는 “인간을 형성하는 예술”인 교육에 큰 관심을 가졌다. 인간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부터 인간에 관한 지식을 탐구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서 인류의 역사가 철학적으로 추론되고 있다면, 『에밀』에서는 한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의 역사가 그려져 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지 못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이 『에밀』에서는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 『에밀』이 긴 작품이라는 것은 그만큼 루소가 인간의 본성을 심오하고 풍부하게 다루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한편으로 인간을 완전하게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 p.16
루소는 말년의 작품인 『대화(Dialogues)』에서 자신의 사상 체계의 근본 원리를 다시 드러내어 밝히면서 『에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통해 자연은 인간을 행복하고 선하게 만들었으나, 사회는 그를 타락시키고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장 자크의 위대한 원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에밀』은 널리 읽히면서도 별로 이해되지 못하고 나쁘게 평가를 받고 있는 책이지만, 특히 그 책은 다름 아닌 인간의 원초적 선함에 대한 논문이며, 인간 본연의 모습에 맞지 않는 악과 오류가 어떻게 인간의 외부에서 들어와서 그를 슬그머니 변화시키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 p.24~25
루소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에밀을 교육하는 최종 목표는 그를 “도시에서 살도록 만들어진 미개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사는 자연인과 사회 상태에서 사는 자연인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에밀은 아무도 살지 않는 오지로 보낼 미개인이 아니라 도시에서 살도록 만들어진 미개인이다. 그는 도시에서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구하고 주민들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하며 그들처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알아야 한다. --- p.55
『에밀』은 복잡한 책이다. 이 책은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엄청난 사색이 필요한 무거운 이론서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정치, 사회, 종교, 역사 등 수많은 분야가 거론되고, 루소가 이전에 쓴 글에서 다룬 대부분의 주제가 담겨 있다. 이 책에는 학문과 예술, 문명과 사회, 인간 사이의 불평등, 정치와 교육, 종교의 제도나 조직 등에 관한 사유가 들어 있다. --- p.89
후대의 많은 인물들이 『에밀』의 사상에 흠뻑 빠져들었다. 평생 시계처럼 날마다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로 산책을 했던 칸트가 딱 한 번 산책을 거른 적이 있었는데, 그날이 바로 『에밀』을 읽고 있던 날이었다고 한다. 괴테는 “호주머니에는 언제나 호메로스를, 그리고 머리에는 언제나 『에밀』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나폴레옹 또한 자신의 진중(陣中) 문고에 『에밀』을 꼭 챙겨 다녔다고 한다. --- p.94
『에밀』은 서구 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기념비적 저작이다. 교육사가 보이드는 『에밀』의 교육사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한다. “『에밀』은 18세기의 교육적 저작 중에서 비길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교육의 이론과 실제에 끼친 영향으로 판단한다면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교육적 저작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 p.9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