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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던 암벽에서

타오르던 암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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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1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56쪽 | 244g | 128*210*20mm
ISBN13 9788967820473
ISBN10 89678204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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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배성희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서정시학』으로 등단하고 시집 『악어야 저녁 먹으러 가자』가 있다.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시창작지원금을 수혜하였고, 2016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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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물러서서 한 오라기 감정을 매만지며
머뭇거린 적 없다 나는
품에 안겨온 씨앗을 시들게 한 적 없다
현무암과 따개비의 흡착을
혼혈의 交感을 그리고
나를, 전투적으로 사랑했다

존재를 애무하던 바위틈 부드러운 해초들
그 모든 것을,
이제
잊기
바란다

황홀한 소멸을 향해 떨어지는 빗물
기록을 삭제하는 천 개의 손가락이 녹아 흐른다

生이라는
아름다운 이빨에 온전히 제 살점을 내어준 거대심해어
뼈 조각들이 은빛 별자리로 출렁거린다 여기는
나의 마지막 바다

고요히 가을비에 젖어
파스칼 끼냐르 은신처로 깃드는 밤이다
---「은밀한 생」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예외적인가, 인수봉을 오르다가 실족사한 영혼을 생각한다, 그 암벽이 보이는 자리에 세웠다는 위령비를 생각한다, 안타까운 숨들이 이미 산에 스몄으니 비석을 거두어간 손길도 생각한다,

未와 迷 그리고 美에 대하여

어지러운 길 헤매고 돌아서 땀에 젖어 오른 매혹의 정상, 가느다란 오줌을 나무그늘에 누고 기지개를 켜본다 200개의 관절이 몸에서 해방되기를

헛디딘 발은 죽음에게
너는 너에게
가장 필요한 욕망이듯이
나는 나에게
가장 절실한 존재다

인류의 조상이 처음 불꽃을 피울 때처럼, 어제의 쓰라린 묘혈에 불안한 막대기를 세우고 두 손으로 비벼 비벼서 불을 지핀다, 하루 또 하루 기적처럼 새 불이 오래된 불 씨앗에서 되살아나기를

그리하여 소멸은 소멸되지만 나는
가장 아름다웠다
타오르던 암벽에서 너와 함께
---「미에 대하여」 전문

늦가을 옥상에는 북서풍이 불어 닥치고
마음이 생겼다
깃대를 세웠다

다른 삶의 기류가 시작된 날
어떻게 그러냐고 쑤군거리든 말든
우러나는 만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그 아래 건너편 고물 처리장
포크레인 기사는 캠핑 파라솔을 세웠다
그늘도 되고 비도 가리고
룰루랄라 기름 친 관절마다 단독자의 리듬
무소속의 율동은 구겨져 있다가 튀어나왔다

좀 더 움직이는 것 좀 더 느끼는 것
나중에 저기서가 아니고 지금 여기서

내 어린 까마귀가
옥상에서 춤을 추는 동안
---「어린 까마귀가 다녀가는 옥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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