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P.C.T
몇 시간 뒤 서서히 지옥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모기떼가 나타난 것이다. 더운 날씨에 바람막이까지 꺼내 입었지만, 가도 가도 모기가 없는 곳을 찾기 힘들 것 같아 적당한 야영지를 찾아야 했다. 저녁이 되자 날씨가 상당히 추워서 가져간 옷을 모두 껴입고 있는데도 한기가 가시지 않았다. 이런 날씨에도 모기는 늦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 43p
화산지대를 벗어나 겨우 길 다운 길이 나오는가 했더니, 산불이 나서 그늘이 하나도 없는 숲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산불을 낸 것도 사람이고, 그늘을 잃은 것도 사람이고, 그 길을 걷는 것도 사람이라니, 좀 아이러니했다. - 53p
폭포를 지나자 어느 순간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평평하고 좋은 길을 주던 P.C.T가 막판에 힘든 길을 주니, 마치 남자친구에게 배신당한 것처럼 성질이 났다. 너무 힘들었지만, 대원들과 수다를 떨다가 이야기에 푹 빠져 힘든 것도 잊은 채 올라갔다. - 62p
나의 한계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고, 내가 이 길 위에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 웃기도 많이 웃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한 용기도 얻었다. 고맙고 또 고맙다. - 66p
키르기스스탄 천산산맥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에 오상현 대원의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혼잡한 틈바구니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다행히 여권과 중요한 것들은 따로 보관을 해서 큰 손해는 없었다. 게다가 지갑 안에는 한국 돈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마 그 도둑은 지갑을 훔쳤는데도 돈을 쓰지 못해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 111p
어제의 피로가 아직 남아있는데다 비까지 맞으며 등산화를 질질 끌면서 걸었는데, 기껏 올라간 곳은 목적지였던 빙하가 아니라 그 옆의 너덜지대였다. 잠깐 안개가 갠 순간 그것을 보고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우리는 실망으로 어깨가 축 쳐진 채 간신히 올라간 길을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또다시 안개는 짙게 끼었고, 우리의 마음도 안개만큼이나 막막했다.
- 117p
세상에 지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은 많다. 그러나 오지탐사대는 단순히 지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지더라도 세상 앞에 쫄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인 것 같다.
- 125p
나는 여전히 이기적이다.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나는 주변 사람들보다는 나를 더 위했고, 그런 내가 한없이 미웠다. 오지탐사대를 통해 변하려고 했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 135p
인도 히말라야
‘왜 상태가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는 걸까? 왜 나에게만 고소증세가 이렇게 심하게 올까?’
짜증, 분노, 절망, 회의…. 수많은 감정들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며 나를 괴롭혔다. 이제는 고소가 정말 지긋지긋했다. - 189p
나는 모든 대원이 다 같이 멘톡 캉그리 정상에 올랐으면 좋겠고, 힘든 대원이 있으면 맏형인 내가 책임지고 데려가고 싶다. 그러나 입 밖에 꺼내진 못하고 마음으로만 다짐을 했다. 식량 담당이 아프면 내가 밥을 해먹이고, 촬영 담당이 아프면 내가 카메라를 메고 사진을 찍겠노라고. 그러니 모두 함께 가겠다고…. - 191p
이곳까지 힘들게 올라왔는데, 정상을 눈앞에 두고 내려가야 하는 대원들의 심정은 어떨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도 모르는 내가 너무 바보처럼 느껴졌다. 정상으로 향하는 대원들의 어깨에는 내려간 대원들의 꿈과 열정이 함께 얹혀 있었다. 그래서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었고,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가며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 200p
나는 이미 탐사를 하면서 정상에 오르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산에 오르는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일 뿐이고, 그 속에서 얻는 것은 곧 ‘우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204p
페루 안데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내 두 눈에 들어온 풍경을 보면서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마치 큰 산줄기가 내 마음에 비집고 들어오는 느낌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갑자기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 249p
나는 두 갈래 길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 하고 싶은 것을 미루고 안정된 삶을 살 것인가? 그렇게 고민하던 중 우연히 오지탐사대원 모집 포스터를 보게 되었고, 거기에 적힌 ‘Break Yourself’라는 문구를 보고 내가 가야할 방향을 정하게 되었다. - 251p
지금까지 우리의 정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꿈이 모인 이곳, 여기가 바로 우리의 정상이다. 비록 우리의 오지탐사는 여기서 끝이지만, 각자 인생에서의 탐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도전하라! 빼쉐들이여! - 252p
이번 탐사는 ‘나’로 채워온 한 권의 책 속에 12명의 다른 주인공들이 모인 새 챕터를 써내려간 시간이었다. 함께 있었기에 그 시간들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는 걸, 서로의 색채를 칠해 그 자체로 멋진 수채화 한 폭을 완성해냈다는 걸 모두가 느꼈으면 좋겠다. - 260p
__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