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2년 동안 홀로 세계를 여행한 이야기를 담은『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를 쓰고 그렸다. 사람들에게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알려주는 드로잉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보통의 일상은‘ 봉현의 일기그림’을 통해 남기고 있다. 서울에서‘ 여백’이라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여백이 있는 인생을 바란다면. 아, 여백이라는 이름은 어떨까. 고양이 여백이와 함께 살면 어떨까. 내 그림에도 여백이 있고, 내 글에도 여백이 있고, 내 방안에도 여백이 있고, 내 삶에도 여백이 있다면.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에 대해 말을 곱씹는 것이 나는 분명히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행복하다, 라고 되뇌면 조금 더 행복해지고 불행하다, 라고 되뇌면 그만큼 더 불행해지곤 했다. 괜찮다, 할 수 있다, 사랑한다, 같은 말에는 분명 큰 힘이 있다. 단순한 말 한마디라도, 그 말을 되뇌며 살면 그만큼 무언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여백아, 여백아, 하고 부르고 사랑한다면 내 삶에 여백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름 없던 아기 고양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백이’가 되었고, 내 인생에는 여백이 생겼다. --- p.14?15
트위터에 여백이 사진을 올리곤 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엄청나다. 몇백, 몇천 개씩 리트윗이 되고 엄청난 속도로 팔로워가 늘었다. 아무리 열심히 작업을 하고 그림을 그려도 귀여운 고양이 하나를 이겨낼 수가 없다. 아기 고양이 여백이는 힘이 세구나. --- p.49
여백이는 심방 중격 결손증과 삼천판 역류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정확한 병명은 각각 ASDatrial septal defect 그리고 TRtricuspid regurgitation. 심방 사이에 구멍이 있고, 또다른 한쪽 심장 벽이 정상적인 방향과 달리 역류하는 상태이다. 선천적인 문제였다. 이후에 생긴 병이라고 하기엔 여백이는 겨우 4개월 된 아기 고양이다. 고양이에게 많이 나타난다는 심비대증과 비슷하면서 다른 것이라 한국에서의 사례는 별로 없고, 그마나 치료 사례는 미국에서 단 두 건만이 있다고 한다. 특이 케이스라 예후도 기대 수명도 알 수 없다고 했다. 명확한 치료법도 연구도 없었다. 심장병은 마취를 했을 경우에 심장이 멈출 위험이 있어 수술도 할 수 없었다. 여백이의 작은 몸안의 심장은 폐가 짓눌릴 만큼 커져 있었다.
코를 훌쩍이는 그녀에게 무심히, 감기냐고 물었다. 그제야 그녀는 고양이 여백이 얘기를 꺼냈던 것 같다. 털 알레르기라고, 비염이 있는데, 여백이랑 사니까 좀 심해졌다고 그래서 약까지 먹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얼마 전부터 아기 고양이와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런데 그게 그녀에게 어떤 영향이 될 거라는 생각까지는 미처 하지 못했었다. 헤어지고 나서, 그녀의 SNS에 올라와 있는 여백의 사진을 꼼꼼히 보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 사진들에서, 봉현이, 그녀의 방 구석구석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백이가 오기 전까지 딱딱한, 고체 형태의 쓸쓸함으로 굳어 있었을 빈자리. 그녀는 거기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혼자이고, 혼자여서 어디론가 떠났을 것이다. 돌아와서는 다시, 떠날 준비를 하며 보냈을 것이다. 그러자 사진 속 그 작고 귀엽던 여백이가 온기를 가진 존재로, 의미로 와 닿기 시작했다. 그 작은 생명체를 찍는 봉현의 마음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그녀는 알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혼자라는 것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곁을 나누어주기 위한 준비 단계라는 것을. 봄날의 택시 안에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좀 웃었던 것 같다. 보기 좋아서. 적당히 시샘이 나서. 그 웃음은 여백이 이야기를 하며 봉현이 흘렸던 웃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 유희경 (시인)
봉현 작가와 여백이는 지금 함께이다. 그것도 아주 좋은 친구 사이로. 봉현 작가는 여백이의 눈빛, 움직임, 숨소리 표현하는 그 무엇 하나라도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싶은데 정말 그렇게 좋아한다. 이렇듯 서로가 서로를 쳐다볼 수 있는 힘이 아마 사랑 아닐까. 비록 여백이는 이 책을 읽을 수 없겠지만 봉현 작가의 모자 속에 뛰어든 그 순간부터 이미 사랑이었을 것이다. 부서질 것 같은 작은 털 뭉치에서 이만큼 자라기까지 여백이랑 봉현 작가, 수고 많았어요. 읽게 해줘서 고맙고, 보게 해줘서 고맙고, 만나게 해줘서 고마워요. 이엘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