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네가 틀렸어! 있지, 수많은 사람들이 무시당한다고 느끼며 살아, 알아? 나도 그렇고, 너도 그래. 그건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이야. 특별히 케빈 쿠퍼만 당하는 일이 아니라고. 알겠어? 수많은 사람들이 외롭다고 느껴. 하지만 다들 목도리를 감고 난간에서 뛰어내리진 않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싶을까, 난 그게 궁금한데?”
나는 앤디를 무시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난 이게 고등학교 생활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알겠어, 앤디? 하나같이 우울해 하고 하나같이 외로워해. 원래 그런다고. 나도 그랬던 거 같아.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진.”
“맞아. 원래 그래, 고등학교란 데가. 하지만 보통은 죽음으로 막을 내리진 않지.”
“아, 미치겠다!” --- p.211
“미안해, 미안하다고. 이 말 천 번도 넘게 했을걸.”
“케빈을 죽이는 놀이에 적극 가담한 게 미안한 거야, 아니면 네가 붙잡힌 게 안타까운 거야?”
앤디가 다그치듯 물었다.
“조금 전에 우리가 본 해 뜨는 모습을 케빈은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미안하니? 아니면 이 일이 네 인생에 오점을 남겨서 속상한 거니?”
“난 케빈 안 죽였어!”
앤디는 맞받아쳐서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꾹 참는 것 같았다. --- p.228
“그래, 토리. 네가 한 짓이라곤 다른 애들 앞에서 멋있어 보이려고 유치한 농담이나 찍찍 해 댄 것뿐이야. 이 일이 생기기 전까진 케빈한테 문제가 있었단 사실도 몰랐겠지. 어쩌면 케빈은 무슨 이유를 들어서라도 결국 자살했을지 몰라. 네가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더라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맞지? 그 일이 있고부터 내가 사람들한테 계속 말하려고 했던 게 바로 이거다.
앤디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하지만 넌 케빈을 도와주지도 않았어. 보고만 있었지. 컴퓨터 화면 너머에 편안하게 앉아 지켜보기만 한 거야. 그러다가 불길 위에 기름을 부었지. 뭘 위해서? 그럼 선배들이 너한테 스마일 이모티콘 같은 걸 날려 줄 테니까? 가끔 복도에서 아는 척도 해 주고?”
내 얼굴, 내 온몸이 앤디의 말 앞에 촛농처럼 녹아내렸다. 저격수처럼 날카롭고 완벽하게 정곡을 찌르는 말 앞에.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니, 토리?”
“아니.”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럴 만한 가치가 없었으니까. 지금도 없고.
--- pp.228~229
“나한테 그 얘길 왜 해?”
앤디는 하늘을 쳐다보려는 듯 위를 올려다봤다. 높다란 주유소 지붕에 하늘이 가려져 있긴 했지만, 그 제스처는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왜냐하면 네가 잠시라도 생각해 봤으면 하니까. 아니, 딱 1분만이라도. 케빈이 그 정도 자격은 되잖아. 네가 꼭 1분만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영원히 다시 들을 수 없다는 게 어떤 건지. 영원히 말이야. 너희 아빠가 만든 매시트포테이토를 영원히 다시 먹을 수 없다는 게 어떤 건지도. 영원히 말이야. 왜냐고? 넌 죽었으니까.”
나는 가까스로 침을 삼켰다. 멜로드라마든 아니든…… 가슴이 아렸다.
“왜냐하면 죽는다는 건 그런 거니까. 죽음은 그런 ‘영원히’의 결정판 같은 거야. 이것도 영원히 안 되고, 저것도 영원히 안 되는 것. 영원히라는 것에서 도망칠 수가 없어. 영원히 즐길 수도 없지. 그냥 존재도 없이 거기 가만히 앉아서, 네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듣지도,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도 없는 거지. 영원히.” --- pp.234~235
“페이스북에 이런 댓글 다는 게 어려워 봐야 얼마나 어려웠겠니? ‘얘들아, 쟤 좀 그냥 놔둬.’ 하지만 넌 그렇게 하는 대신 증오 범죄를 저질렀지.”
(…) “난 결백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앤디는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넌 무죄일 뿐이야. 결백이랑 무죄 사이엔 엄청난 간극이 있어. 너도 오늘 법정에 가서 결백하다고 주장하진 않을 거야. 무죄라고 하겠지. 내가 보기엔 이 둘은 아주아주 다른 거야. 그렇고말고. 아마 넌 무죄일 거야. 하지만 결백하다?”
앤디는 머리를 한 번 가로저었다.
--- pp.236~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