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신흥국에서 투자 침체가 일어난 원인은 서로 다르고, 각국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어떤 경우든 현재와 같이 과감한 금융정책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자국의 상황에 맞게 공공투자와
감세, 소득 재분배 정책 등을 실시하는 등의 자구적 노력이 있어야 하며 금융정책보다는 재정정책의 영역으로 문제 해결의 열쇠를 넘겨야 한다. --- p.23
미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지도 모르는 이민 문제가 전면에 나오지 않은 상태로 법인세 인하, 공공투자 확대와 같은 확장적인 재정정책이 실제로 행해지면, 기업 부문을 중심으로 경제 활동이 활발해져 미국 경제의 성장 페이스는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는 노동시장이 그에 상응해 긴축되어, 임금도 완만한 상승 추세인 가운데 실행되는 재정정책이기 때문에, 하나의 기준점인 2%를 웃도는 인플
레이션이 일어날 위험성도 동시에 높아진다. 실제 트럼프가 승리 연설을 한 다음, 경기 회복이나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시장에 퍼지면서 미국의 장기금리가 급등했다.
미국의 장기금리 급등은 2013년 FRB가 양적완화 정책의 단계적 축소를 시사했을 때에도 일어났다. 만일 트럼프의 경제정책에 대한 기대로 인해 향후에도 미국의 장기금리가 계속하여 상승한다면, 2013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경상수지 적자를 안고 있는 신흥국 등에서 자본 유출에 대한 우려가 퍼지거나, 저금리 상태를 전제로 성립되었던 각종 자산시장에서 가격 조정이 일어날 가능성도 분명 있다. 한편 거시경제정책이 아닌 무역협정 파기, 이민자 배척이라는 보호주의적인 정책이 실제로 시행된다면 금융시장에서는 달러 하락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보호주의의 발상에 근거하는 무역협정 재검토는 미국에 있어서는 수입 물가의 상승 요인이 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pp.52-53
유로존에서는 여전히 경기 회복 움직임의 속도가 느리고, 각국의 금융기관들에는 2000년대에 시행한 공격적인 경영의 부작용, 즉 부실채권을 비롯한 경영의 걸림돌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상태로 판단된다. 최근에도 이탈리아의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 논란과 같은 대형 금융기관의 부실 등이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향후의 유로존 경제에서는 이러한 금융기관의 경영 문제와 부실채권 문제가 금융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EU의 원칙은, 각국 정부와 정책 당국 등이 금융시스템에 공적 자금을 넣을 필요가 있을 경우에 대상이 되는 금융기관의 거액 채무자 등에게 이에 상응하는 부담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 p. 80
지금의 세계 경제는, 선진국뿐 아니라 신흥국에서도 정부가 정책 운영에서 보다 무거운 책임을 져야만 하는 상황이다. 다만 정부의 역할이라고 하더라도, 그 나라의 경제 환경이나 약점에 의해 어디에 역점을 두는지가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처럼 교통 인프라에 대한 과제를 안고 있는 국가라면 인프라 정비에 대한 투자가 경제효율화의 형태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한편 한국 등은 인구 구조상 왜곡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는 사회보장을 통한 소득 분배 방식이 더 큰 문제로 간주될 것이다. --- p.103
미국뿐 아니라 일본 및 유로존 등 비전통적인 금융정책을 도입한 중앙은행이 금융정책을 정상화하려고 하다 보면, 그에 맞추어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조정을 강요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거부 반응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5월에 FRB가 양적완화 정책의 단계적 종료를 시사한 후 벌어진 장기금리 급등과 금융시장의 혼란이다. 당시 1%대 후반에 머물던 미국의 장기금리는 FRB가 양적완화 종료를 시사한 뒤, 한때 3%로 급상승했다. 그 결과 미국 국채시장뿐 아니라 세계 증시마저도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 지속을 전제로 형성된 가격에 대한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 pp.173-174
세계 경제는 두 가지의 큰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그 하나는 자산 버블 붕괴에 따른 대차대조표 조정으로, 실물 투자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문제이다. 또 하나는 신흥국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실물 투자가 실제 수요를 크게 웃도는 과잉상태가 되어, 투자를 동력으로 한 성장에 한계가 오고 있다는 문제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한국 경제는 다소 형태는 바뀌었지만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예를 들어 한국의 가계가 안고 있는 과도한 부채 문제는, 1997년
IMF위기를 극복한 뒤 자금 수요 주체가 기업에서 가계로 이동한 데다, 한국 가계의 노후자금 부족 문제 등과 겹쳐서 부동산 투기열이 높아진 데서 기인한다. 아직까지 부동산 가격의 대폭락이 일어나지 않았고,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리먼쇼크 이후의 미국과 유로존, 그리고 1990년대 이후의 일본이 직면했던 문제와 성질이 비슷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중국 경제를 비롯한 주요 수출 대상국의 경기 둔화가 중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결과적으로 제조업이 보유하고 있는 설비의 과잉을 불러왔고, 새로운 투자 수요를 지속적으로 감소시켰다. 이는 신흥국, 특히 중국이 눈앞에 직면하고 있는 과잉 설비 문제와 비슷한 양상이다. 이처럼 한국 경제는 현재 선진국이 겪고 있는 문제와 신흥국이 가진 문제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 pp.246-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