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추수하고 양조해서 술병에 담지 않는 교목과 관목, 섬세한 야생화는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식물학이나 원예 과학이 진보할 때마다 알코올이 듬뿍 들어 있는 인간의 음료도 그만큼 발전을 거듭해왔다. 술 취한 식물학자라고? 전 세계의 위대한 술들을 만들어내는 데 식물이 하고 있는 역할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술에 취하지 않은 식물학자가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식물의 관점에서 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약간의 역사와 원예학을 다루며, 실제로 식물을 키워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재배 관련 조언까지 제공하고자 한다. 처음에는 포도나 사과, 보리와 쌀, 사탕수수와 옥수수처럼 실제로 알코올의 원료가 되는 식물들부터 시작할 것이다. 효모의 도움만 받으면 이들 식물 중 어느 것이든 취기가 돌게 하는 에탄올 분자로 변신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근사한 진이나 고급 프랑스 리큐어는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많은 허브, 씨앗, 과실로 풍미를 내는데, 증류 과정에서 재료로 사용되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술을 병에 넣기 직전에 첨가되는 것들도 있다. 일단 이러한 술병이 술집까지 도달하게 되면 세번째로 민트, 레몬과 같은 혼합용 식물들이 등장하고, 만약 우리집에서 열리는 파티라면 신선한 할라페뇨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맥아 혼합물 통이나 증류기에서 술병과 술잔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따라가는 형태로 이 책을 구성했다.
나는 세계의 풍부한 식물들 중에서 일부를 취사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되도록이면 우리가 마시는 술의 원료 중에서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이국적이고, 잊힌 식물들도 좀 다루고 세계를 여기저기 여행해야만 비로소 만나볼 수 있는 희귀한 술도 몇 가지 소개하려고 노력했지만, 이 책에서 만나게 될 대부분의 식물은 아마 미국과 유럽의 주당들에게 친숙할 것이다. 모두 160종의 식물을 다루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몇백 종을 더 소개하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서 소개한 식물의 상당수가 식물학과 약학에서, 또 요리법에서도 방대한 역사를 보유하고 있어 고작 몇 페이지 분량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리 없고, 실제로 퀴닌, 사탕수수, 사과, 포도, 옥수수와 같은 몇몇 식물은 이미 그 중요도에 걸맞게 책 한 권에 걸쳐 심도 있게 다뤄지기도 했다. 내가 바라는 바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술집의 카운터 뒤편에 진열되어 있는 그 모든 술병 속에 들어 있는 풍요롭고, 복잡하고, 맛있는 식물들의 삶을 약간이나마 맛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술은 식물에서 출발한다. 여러분이 정원 가꾸기를 좋아한다면 이 책이 칵테일파티에 영감을 불어넣어주기를 바란다. 만약 여러분이 바텐더라면 이 책을 읽고 온실을 짓거나 적어도 창가에 화단이라도 하나 마련할 생각이 들기를 바란다. 그리고 식물원을 산책하거나 산을 하이킹하는 모든 사람들이 단지 초록색 풍경뿐만 아니라 식물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삶의 묘약인 알코올도 떠올리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나는 항상 원예학을 기분좋게 취할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해왔다. 여러분 역시 그러길 바란다. 건배!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