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과 멘토링의 시대, 상처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치유를 받는 시대가 나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연 이것이 제대로 된 것인가’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저 상처를 망각하게 해 주는 것이 힐링이 아닙니다.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고, 혼자 해결할 수 없음을 인식시키는 것, 그것이 진정한 힐링이요, 멘토링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보다 훨씬 정의롭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지금의 난관들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스스로 그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저 박정희 정권 시절의 고도성장만 떠올리며 옛 방식을 예찬할 뿐이죠. 그러다 보니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고, 이 풀리지 않은 문제가 주는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우리들,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짊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다들 힐링과 멘토링에 목말라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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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직후 일본에서는 그때까지의 문명관이나 가치관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사회시스템의 문제점을 밝혀내 변혁할 것, 즉 ‘갱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일정 부분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사고 후 9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2011년 연말에, 당시 민주당 정권의 노다 수상이 ‘사고 수습’ 선언을 한 무렵부터 경제지상주의가 부추긴 허위 가득한 ‘미래 지향’, 죄 많은 망각의 공기가 급속히 일본 사회를 뒤덮었습니다. (…)
필요한 것은 ‘정신적 케어’가 아니고 원인규명, 진상해명, 책임자 처벌, 사죄, 보상 등의 근본적인 대응입니다. 이렇게 무책임한 체질 속에서는 국가범죄는 반복될 것이며, 그 희생자나 관계자는 계속 고통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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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클레스는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우리 아테네에서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을 그저 자신의 일에만 신경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공동체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인간이라고 부른다.” (…)
모두 다 정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치적 열정을 가진 적지 않은 사람이 있어야 공동체가 좋아진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정치에 참여해서 행복해지기란 어렵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역시 사적인 삶에 있죠. 사생활의 즐거움 없는 행복이란 있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적 생활의 행복도 5분의 1정도 되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책임 있게 이끄는 과업을 감당해줬기에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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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많은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진상규명도 필요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시신 수습도 해야 하고, 예를 갖춘 장례도 필요하고,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는 산 자들의 치유 작업도 필요하고, 또다시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사회 구조 재정비도 필요합니다. 이 와중에 제일 희망적인 소리가 ‘나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였습니다. 나로부터 변화를 시작하고 원인도 나로부터 찾는 것이 성숙의 첫걸음입니다. 큰 변화는 언제나 책임 있고 성숙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나의 작은 의식의 변화가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이자 또 지름길임을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 길들이 있겠지만 꿈이 그 한 가이드라인이 되어 줄 것입니다. 대파국이라는 본래 의미처럼 이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나는 꿈을 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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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상처, 고통은 ‘감정’이 아니라 ‘인지’ 작용입니다. 감정으로써 분노를 언설하는 것은 감정과 이성을 나누는 이분법의 산물입니다. ‘분노는 감정이고 대화는 이성이다’ 식의 사고방식은 아마도 분노에 대한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잘못된 인식일 것입니다. ‘분노 = 폭력’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의 분노’인가가 가장 본질적인 논쟁의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정치적인 행위입니다. 분노를 이성적 판단을 상실하고 생각을 잃은(?) 상태로 본다면, 분노는 ‘문제적인 개인의 문제 행동’일 뿐이게 됩니다. 분노의 원인에서 사회적 맥락을 제거하고 탈정치화시키는 것이지요. 이때 억울한 사람들은 더욱 분노하게 되고 이른바 ‘한’이라는 ‘사유’가 몸에 새겨지게 됩니다. 다시 강조하면, 분노는 인식 과정이고 그 ‘해결’(치유)은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다르게 해석하기의 과정, 인식의 교정, 새로운 앎의 과정입니다. 치유는 ‘어루만짐’을 넘는, 새로운 인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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