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김만섭, 신을 만나자 당황해서 좌충우돌 횡설수설...
공자는 사내 나이 오십에 하늘의 뜻을 알았다고 했는데 나는 나이 오십에 하늘의 뜻을 알기는커녕 하늘의 뜻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고 죽어야 하다니. 하기야 죽어가는 마당에 하늘의 뜻이라는 게 있는지 알아낸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마는. 하늘의 뜻이라. 하늘! 그게 정확하게 무슨 뜻으로 쓰였을까? 공자가 살았던 시대의 중국에 신이라는 개념이 없었을 테니까 창조주라는 뜻으로 쓰이지는 않았을 터이고.
근데 신이라는 게 진짜 존재하는 것일까?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도? 아이고 있다면 어쩌나. 그거 난감한 노릇이네. 자살한 사람을, 아니 그땐 이미 사람이 아닐 테고, 영혼을, 근데 영혼이라는 게 진짜로 있나? 내 영혼? 어쨌든 자살한 영혼을 천당에 보내지는 아니할 테고. 근데 영혼이 어떻게 자살을 하나. 자살을 하는 것은 사람인데 벌은 왜 영혼이 받아? 어쨌든 지옥에는 말고 연옥 정도에는 가야 될 텐데. 지옥만 있고 연옥이라는 게 없으면 어떡하지? 내가 살아온 꼴을 보건대 언감생심 천당에 갈 꿈이야 꿀 수가 있나. 죽어가는 순간인데 나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야지.
“아이고 아, 아닙니다요. 그으냥 계속하시지요. 신님께서 제 머리 속에 이미 똬리를 틀어놓고 앉아 계시다는데 제가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신님의 눈짓 하나로 번쩍 기억이 날 텐데요 뭐.”
“그래, 그래. 이제 쬐끔 진도가 나가는 군.”
“무슨 진도?”
“내 주제파악! 즉 신이란 무엇일까? 받는 걸까? 주는 걸까? 받을 땐 꿈 속 같고.”
“줄 때는 안타까워. 신에 울고 신에 웃고…….”
“이제야 우리 제대로 궁합이 맞는구나.”
얼씨구 절씨구 좋겠네.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이건 뭐, 이 양반 변화무쌍한 정도가 귀신, 아니 신이네, 정말.
“그래 그래. 당연하지. 신이란 무엇이냐? 신이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게 자네가 나를 정의한 것 아닌가.”
“안 그런가요?”
“그렇기도 하고 안 그렇기도 해.”
“또또또.”
“아니, 이건 심각한 대답이야. ‘예스 엔 노’가 가장 정확한 대답인 경우가 허다 해.”
“그럼 어떨 땐 예스고 어떨 땐 놉니까?”
“아하. 그럼 진도를 쬐끔 더 나가 볼까? 자 궁극적으로 모든 대화는 언어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언어라는 것이 묘상해서 잘못 쓰면 둘이 허공에서 따로따로 맴돌다 끝나요. 각각 신나게 노래는 하는데 듣는 쪽에선 그게 노래인지 악을 쓰는 건지 영 구별이 안 되는 거야.”
“언어가 언어이기 위해서는 말에 정의가 내려져 있어야 한다. 단어의 정의를 공유하지 않고서는 두 사람이 생각을 나눌 수 없다. 즉, 대화를 할 수가 없다. 뭐 그런 말 아닙니까?”
“그렇지 그렇지. 스마트! 똑똑해. 과연 박사야. 그러니 자네와 내가 대화를 하면서도 허공에서 맴돈 것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쓴 말의 정의가 불분명했기 때문이지. 자네가 쓰는 신이라는 말의 정의와 내가 내리는 정의가 달라요. 안 그런가?”
“글쎄요. 내가 쓴 신의 정의야 오류라고 이미 판단이 난 상태고.”
“아냐, 만섭이. 자네가 내린 정의가 오류가 아니고 자네의 논리가 오류라고 했네.” --- ㅂ
“자네 살았을 때 물리학 박사 맞나? 그 정도 논리도 파악 못 하게. 게다가 눈치는 왜 또 그렇게 없어?”
“?”
“자네의 논리가 그럴 듯하지만 그 논리는 오류라는 지적을 해 주려고 삼단논법이라는 용어까지 엮어 가며 얘기한 거야.”
“무슨 얘기야? 내 논리가 틀림없는데. 불가능한 것이 있으면 그게 어디 신이야? 내가 아무리 종교니 철학이니 하는 것과 담 쌓고 지냈지만 그 정도는 안다고. 말하자면 신이라는 것이, 만일에 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말이지, 그 신이라는 것이 정말 있는 것인지 그것도 사실은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신이라는 것이 진짜로 있다면 ‘신에게는 불가능이 없다’ 라는 게 어울려야 하는 존재라고. 근데 당신에게는 불가능이 있단 말요. 내 생각을 읽는 것을 멈추는 것을 못 한다는 것이잖소. 당신이 정말 신이라면 그냥 ‘스톱’ 하고 한 말씀 하시면 끝날 텐데 그것도 못 한다니. 그러니 당신이 어디 신이요? 당신이 신인 줄 알고 큰절하는 연습을 한 내 꼴이 가관이지.”
“자네, 너무 급해. 결론을 너무 빨리 내면 에러가 생겨요. 모든 결론은, 자네들 학자들 용어를 빌리자면, 모든 이론은, 가만있자 너무 빨리 가면 자네 정신이 더 헷갈릴 테니 우리 스텝 바이 스텝 얘기하면 어떻겠나? 즉, 말이지, 삼단논법을 들어 얘기하세. 자네의 삼단논법은 첫 장부터 틀렸다네. 무슨 말인고 하면 ‘신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다’ 라는 서술 자체가 에러야. 아주 그럴 듯해 보이긴 하?만 말야.”
“이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그럼 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존재란 말이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당신, 신이라면서 자기 자신도 모르고 있다는 얘기잖아. 그러니 가짜지. 안 그래?”
“흠……. 그거 재미있군. 자네 말 잘 했어. 그러니까 ‘주제파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자네는 내가 내 주제를 파악하지 못 한다고 하고 있고, 나는 자네가 자네 주제파악을 못 한다고 지적하는 셈이 됐군. 아니 그런가?”
“뭐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당신이 진짜 신이라면 당신이, 즉 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소? 당신은 내 생각 속에 들어가는 것은 할 수 있으나, 그것도 내 허락도 안 받고 말이지, 내 생각을 꿰뚫는 일을 스톱할 수는 없다고 하고, 게다가 신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조차 모르는 것 같으니 그게 어디 신이야?”
“병신이지.”
“뭐요? 병신?” --- 본문 중에서
제2장: 김만섭, 배짱 좋게 신에게 따지다.
이 양반 내가 신이라고 인정해 주는 듯하니까 아주 기고만장이네. 신은 욕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른다고? 내가 모를 줄 알고?
“여…어보세요, 시…인님. 내가 아무리 형이상학이니 종교니 하는 필드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고는 하나 이래봬도 대한민국의 교수에 박사예요. 아니, 였지요. 삼류든 일류든 그거 대한민국에서는 쉬운 것 아니라고요.”
“그렇지 그렇지. 그래서 내가 자네 칭찬을 하고 있었잖아.”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살면서 그 정도로 교육을 받고 일을 하려면 아무리 형이상학이니 종교니 하는 필드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고 해도 어깨 너머라도 무지무지하게 많이 배우게 된다고요. 보세요. 대한민국에 종교가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상고시대부터 온 세계의 내로라하는 종교는 다 들어와서 자기네 터가 더 크다고 우긴다고요. 게다가 향토신학은 또 얼마나 많은데요. 무당이니 점이니 조상들 묫자린가 뭔가 하는 풍수지리와 운명, 사주 및 팔자, 손금과 관상, 토정비결……. 또 뭐가 있더라? 아 작명! 거 이름과 운명 코너까지 있다구요. 대한민국의 향토신학과에요. 이런 게 몽땅 형이상학인데, 말하자면요. 형이상학이 뭐 별 겁니까? 어쨌든 과학이나 이성의 힘으로는 설명하거나 해결이 안 되는 것을 설명해내고 해결해 주는 건 몽땅 형이상학 아닙니까. 대한민국이라는 문화권에 한 번 태어나서 살아보세요. 다들 자동적으로 형이상학의 도사가 되게 돼있어요. 신학과 향토신학 사이를 평화롭게 오락가락하면서 인생을 꾸려가는 게 보통이라고요. 귀신의 힘을 빌렸다 신의 힘을 빌렸다 하면서 말이지요.”
“그것 봐, 내가 뭐랬나. 귀신하고 신은 글자 하나밖에 차이가 없다고 했잖아. 흐흐흐.”
내 참, 말을 말아야지.
“자네 논리가 그렇잖나. 과학이나 이성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작용하는 것을 설명하고 해결해주는 것은 귀신의 힘을 빌리든 신의 힘을 빌리든 다 형이상학이라고.”
“……? 내가 그랬네!”
“그렇다고 해두자고. 자네와 내가 서로 주제파악을 하려면 일단 우리 둘이서 단어의 정의는 내려놓아야 할 게 아닌가? 나는 뭐 항상 주제파악 그 자체라서 자네가 정의하는 대로 따라가도 앞뒤가 딱딱 들어맞게 되어 있다네. 내가 누군가? 신 아닌가, 신! ominscience, omnipotence, omnipresence!”
“아이고, 그 옛날 고리짝 시절에 쓰던 말은 빼고, 그냥 쉬운 말로, 플리이즈!”
“평소에는 자유의지, 결과에 대해서는 형이상학. 쉽게 말하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놓고 결과는 신 탓. 아니면 귀신이나 조상 탓. 자네의 경우는 자살기도는 자네 자유지만 인생이 정말 별 볼 일 없는 꼴로 종친 것은 신인 내 탓. 자네가 따지고 싶은 게 바로 그것 아닌가?”
얘기를 하고 보니까 내가 그렇게 따지고 있었네 그래. 그렇담 내 인생이 그 꼴로 종친 게 전적으로 다 내 잘못이라는 얘긴가?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은데. 그러면 신은 어디 소속이지? 구경꾼? 그냥 그 좋은 머리로, 뭐라 그랬더라? 아, 전지, all knowing, 거창하게 omniscient 하니까 내 인생의 종말을 뻔히 알고 있었을 거 아냐. 개떡 같은 내 성질도 잘 알고 있었을 테고. 그 성질로 내가 좌충우돌 할 때 좀 말려주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아니지. 말렸다면 내가 인간의 ‘자유의지’ 하고 들이 밀었겠지. 이 양반 얘기에 일리가 있기는 있어. 신이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때? 김박사’ 하고 기껏 컨설팅을 해 줬다 해도 내가 싫으면 안 했을 거라고. 내 오기에 그렇게 쉽게 신에게 설득 당했겠어. 신하고 그런 껄끄러운 씨름을 하게 될까 봐서 인생 상담을 하고 싶다가도 얼른 아닌 척한 게 맞는 것 같은데. 내가 그렇담 옹졸했다는 얘기잖아. 그렇다 해도 좀 말려주지. 신은 그 정, 아니 사랑하고 관련돼 있다니까. 사랑이 그런 거 아닐까? 하다못해 자살까지는 안 해도 되도록 해줘도 좋았을텐데. 아이고, 또 책임소재에 대한 논리네. 정말로 다 내 잘못일까? 신이 잘못한 것도 있는 것 같은데. 그것 참. ‘꼬집어 말할 순 없어도’, 원, ‘서러운 마음 나도 몰라’네.
“내가 자네를 아주 잘 이해해, 만섭이. 자네 ‘두 눈에 눈물 고였잖아’, 쯧쯧.”
“말 조심 하세요. 안 그래도 울고 싶은 데 뺨 때리면 그 후엔 나 정말 책임 못 진다고요. 내 성질 알잖아요.” --- 본문 중에서
제3장: 김만섭, 인간의 필요에 따라 남성도 되고 여성도 되고 지렁이도 되는 신?
“흐흐흐, 자네 정말 재미있는 과학자군.”
가만있자????? 도대체 내가 금방 뭐라고 했지? 신이 나와 동성이 아니라고 했다가 바로 신이 남자라고 했네. 신의 성이라. 그럼 신이 내 필요에 따라 여자였다 남자였다 한다는 얘기인데. 그럼 뭐야? 그럼 또 병신으로 돌아오네. 근데 아까 내가 논리를 풀다가 내가 여자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했는데. 그럼 내가 뭐야? 내가 남자에 여자면 암수한몸이라는 얘기잖아! 도대체 이놈의 논리는 맞는 것 같다가도 돌고, 돌다 보면 또 맞는 것도 같고. 도대체 헷갈려, 헷갈려!
“자네 아까 논리의 비약이니 차원이니 하는 얘기를 썼잖아. 수학 얘기도 하고. 뭐 고등수학까지 갈 필요는 없고, 그냥 중등수학의 차원 정도면 해결될 것 같은데.”
“뜬금없이 뭐가요?”
“자네 논리의 오류를 파악하는 것 말이야. 온전히 돌아오는 것.”
“글쎄 그 도는 것이 어느 방향으로 돌아야 하는 것인지 왔다갔다 한다니까요. 이번에도 돌다 보니까 내가 암수한몸이니 하는 괴상망칙한 논리가 나와서 내가 어디서 어떻게 잘못 돌았는지 생각하는 중인데요. 전 암수한몸은 곤충들이나 지렁이의 차원, 그렇지 그것도 차원이네, 생명 발달의 차원. 그렇지요? 그런 차원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거든요. 가만, 가만요. 아까처럼 물리학적으로, 입자 물리학적으로 분석하면 지렁이를 구성하는 입자가 나를 구성하는 입자하고 똑같은 것들이고 또 신이 어디에나 다 있으니까, 그놈의 omnipresence, 그게 항상 말썽이란 말이야. 내 논리의 세계에. 그렇지요? 신님이 어디나 계시니, 지렁이에도 계시고, 나에게도 계시고, 내가 신이고, 여자니, 아이고 또 돈다. 내가 이번엔 지렁이잖아요오!”--- 본문 중에서
제4장: 김만섭, 무한과 신과 우주는 아무리 따져봐도 하나더라.
“무한한 것은 다 신이야, 그럼?”
“논리적으로 그렇게 돼.”
“어떻게?”
“무한한 것이 두 개 있을 수 있어?”
“그게 무슨 말이지?”
“생각해봐. 무한한 것이 두 개 있을 수 있는지.”
“그래 생각해볼께. 만일에 무한한 것이 여기 두 개 있다고 치자. 그러면, 흠. 그게 이상하네. 이 무한과 저 무한이 부딪치게 되겠네. 둘 다 무한이라고 우길 거 아냐!”
“부딪히면 전쟁이 나겠지.”
“무한한 게 어떻게 무한한 것하고 전쟁을 해. 자기가 자기하고 전쟁을 해?”
“그렇다면 전쟁을 하는 것은 유한한 것이지. 그치?”
“그렇다면 전쟁을 하는 신은 유한한 신이다. 그치?”
“비약하지 말기.”
“알았어. 그럼 무한한 것 두 개는 같은 것이다. 그래?”
“그래. 그게 무엇이든지.”
“그게 무슨 언어로 표현되든지.”
“무한은 무한한 언어를 포함하고 있다.”
“숫자도 그 중 하나. 입자도 그 중 하나.”
“숫자나 입자나.”
“숫자도 무한이고 입자도 무한이니까?”
“그 두 무한이 접선하는 곳이 우리집 안방, 아니 그쪽집 안방이던가?”
“그럼 두 무한이 전쟁하는 곳?”
“아니, 두 무한이 하나라는 것을 증명하는 곳.”
“즉 무한한 숫자와 무한한 우주가 논리적으로 겹쳐지는 곳?”
“그럼 그럼.”
“어떻게 겹쳐지지?” --- 본문 중에서
제5장: 김만섭, 인간과 신의 진정한 관계는 친구였으면....
원, 그래도 제일 편안한 때가 그 양반이 내 불알친구처럼 생각될 때였다고. 세상에. 살면서 그렇게 마음 편한 인간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었잖아. 상대방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미주알고주알 고백해가면서 말이지. 처음에야 이 양반이 느닷없이 ‘내가 신’ 하고 나타나는 바람에 내가 좀 정신을 못 차리고 좌충우돌해가면서 천방지축이었지만. 근데 이 양반 내가 자살할 때까지 기다릴 것 없이 살았을 때 와서 그렇게 불알동무 노릇을 해줬으면 좀 좋았겠어? 그럼 자살로 종치지도 않았을 것 아냐? 내가 죽는 순간에야 형이상학에 대해 관심을 진지하게 가져서 그 순간에야 나타났나? 그럼 살아 돌아가면 평소에 거기에 대한 생각을 좀 열심히 해 볼까? 그 방면에 대한 책도 좀 빌려다가 읽고? 그러면 이 양반이 나타나서 말동무도 되어 주고 인생 상담도 해주려나? 그렇게만 해주면 얼마나 좋아? 신이 뭐야? 그런 것도 안 해주고. 이제부터는 그렇게 좀 해주라! 살아있을 때에!!! 알아들었겠지. 신이니까.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