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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화

요화

: 요괴의 꽃

김선정 | 뮤즈 | 2016년 12월 08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0 리뷰 8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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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2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560쪽 | 730g | 140*210*35mm
ISBN13 9791104910609
ISBN10 110491060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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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득뽀득.
어둠이 자욱하게 내려앉은 산길엔 눈길을 밟는 소리만이 적나라하게 울려 퍼졌다. 두툼한 버선과 꽃신을 신은 채 걷고 있던 여인은 더 이상 걸음을 옮기지 않은 채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서고 말았다.
잇새에서 쏟아지던 뜨거운 숨결이, 차디찬 공기를 뚫고 나와 하얗게 모습을 드러냈다.

“홍아, 너는 마을로 내려가 살어. 이렇게 첩첩산중에서 살지 말고…… 꼭 내려가 살어.”

문득,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조부의 목소리가 떠올라 지그시 눈을 내리감았다.
이렇게 눈발이 몰아치던 어느 겨울날, 갓 태어난 홍이는 할아버지의 집 앞에 버려져 있었다고 했다. 아니, 집 앞이 아닌, 조부의 집 앞에 있는 제단이었다.

“아, 글쎄, 얼굴이 뽀얀 놈이 뻘건 눈을 껌뻑껌뻑하면서 날 쳐다보더라고. 어쩌겠어. 데려와야지. 보석을 발견했는데, 그대로 얼어버리게 놔둘 수 있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였지만, 그들은 그 누구보다 끈끈한 ‘가족’이 되었다. 힘들 때에도 기쁠 때에도 홍이는 조부를, 조부는 홍이를 의지하며 살아갔다. 마침 손재주가 좋은 홍이 덕에 삯바느질거리가 근근이 들어와 먹고살기에 나쁘지 않았다.
더불어 유독 홍이가 수를 놓은 배자는 마을 아낙들뿐만 아니라, 어느 먼 곳에 산다는 선비에게도 인기가 좋아 그 삯 또한 톡톡히 챙겨 받고 있었으니. 그 누구도 남부러울 것 없는 ‘가족’이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명 ‘가족’의 울타리에 자신이 존재했었다.
“어차피 혼자였잖아.”
중얼거리던 붉은 입술은 살을 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핏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꽁꽁 얼어버린 뽀얀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괜찮아. 어차피 혼자였어.”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혼자라고 몇 번이나 되새기는 내내 왜 이리도 마음이 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자신은 제단 위에 버려져 있어야 했는지, 그 이유라도 듣고 싶어 결정한 길이었다.
마을로 내려가면, 번화가로 가면 이십 년 전 그날 밤의 일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확신은 없다. 그저 할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 그러하니, 그 말을 따르고 싶었던 것뿐.
그녀의 품에는 몇 푼 되지 않는 쌈짓돈이 들어 있었다. 정말 급할 때에 요긴하게 쓰려 가져오긴 했다만. 당분간 주막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몸을 뉘이면 될 것이다.
할아버지가 조금씩 모아놓은 쌈짓돈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찬바람에 콱 막히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던 그때, 홍이는 걸음을 우뚝 멈춰야 했다.
뽀득뽀득.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에 온몸에 오도도 소름이 돋았다. 분명 혼자 내려오던 중이었다. 혹 누군가 따라올까 부러 늦은 시간을 택했는데.
뽀드득. 뽀드득.
힘을 주어 걷는 듯, 깊숙이 들어가던 발자국 소리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겨우 그쳤던 눈보라가 다시금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강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던 그때, 뒤쪽으로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낭자, 어딜 가시오?”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이런 산중에 사내라니. 산적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허이, 이런 산길에. 눈발이 이렇게 굵은데 어딜 가시는가?”
결국 불길한 예감은 사실이 되고 말았다. 그녀의 앞으로 덩치 좋은 사내들이 다가와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털모자에 털배자, 거기에 얼굴 위를 지나는 굵은 흉터까지 보아하니 산적이 분명하다.
이 얼마나 해괴망측한 일인가.
“비, 비켜주십시오. 마을로 내려가는 중입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하지만, 그 끝이 떨리고 있었다. 겁을 먹은 게 보이니 사내들은 히죽거리며 더욱 목청을 높였다.
“마을? 마으을? 얘들아, 들었냐? 마을로 내려가신단다.”
“아이고, 성님! 그럼 우리가 데려다줍시다. 거, 이 산길이 어찌나 험한지 낭자 혼자 가는 건 힘들어.”
“암! 그렇고말고. 뭐 그에 대가는…….”
한 사내가 바지춤을 붙잡은 채 추켜올리는 시늉을 하니 주위에 있던 사내들이 껄껄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몇은 입맛을 다시며 그녀를 쳐다보았고, 또 몇은 홍이에게 가까이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총 여섯. 홍이 혼자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숫자였다.
“비, 비켜주십시오. 왜 이러십니까!”
“낭자, 왜 이러시다니요. 가는 길이 험하니 이 듬직한 사내들이 함께 가주려 하는 것이지요!”
“괜찮습니다. 필요 없다 하지 않습니까! 홀로 가겠습니다.”
앙칼진 홍이의 목소리에도 사내들은 껄껄 웃음만 터뜨릴 뿐이었다. 무어가 그리 신나는지, 저들끼리 대소하며 그녀를 놀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끙, 앓는 소리를 내던 홍이가 달음박질치려 마음을 먹던 그때였다.
“형씨들, 그림이 보기 좋군.”
야산에 딱 어울리는 낮은 목소리가 홍이의 귓가를 스쳤다. 아니, 그것은 스치는 것보단 흘러들어 오는 느낌이나 다름없다. 휘익 날카로운 휘파람이 그녀의 곁을 지나간다. 뒤를 돌아보라는 듯, 이리 오라는 듯.
“거, 여자 혼자 두고 사내가 여섯이라니. 어지간히 굶주렸나 보아?”
낄낄, 웃음을 터뜨리는 목소리에 홍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두꺼운 음색이 마음까지 파고들어 그녀의 머리를 홀린 탓이렷다.
“뭐야? 허 참. 야 이놈아! 나와서 얼굴을 보고 말해, 얼굴을!”
그의 말마따나, 구름에 파묻힌 달빛 덕에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둠으로 가려 있던 그의 모습이 드러나려면 구름이 움직여야 할 터인데, 그것의 행렬이 어찌나 긴지 달빛이 드러날 생각을 않은 채 꽁꽁 숨어 있었다.
산적들의 웅성거림이 거세지던 그때였다. 거짓말처럼 구름이 걷히고, 달빛이 아래로 훤히 드리웠다.
“저, 저놈 머, 머리 색을 좀 보, 보게!”
“히익! 서, 설마. 설마.”
산적들의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그들이 히익- 괴상한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치는 소리가 들렸다. 뽀득, 뽀드득. 그 소리의 간격이 좁아질 때마다 사내는 그들의 앞으로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누, 눈요괴다! 다, 다들 피해! 피해!”
“서, 설산요괴! 설산요괴가 나타났다!”
달빛에 드러난 사내의 모습에 산적들이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홍이에게 치근덕거리던 태도는 간데없고, 그녀만을 오도카니 남겨둔 채 저들의 발을 움직이기에 바빴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달아나던 그 순간에도, 홍이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금색의 머리칼이 달빛 아래에서 휘날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하늘색을 닮은 눈동자가 하얀 눈발에 반사되어 반짝이는데, 그것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홍이의 입이 다물어질 생각을 않았다.
요괴, 라 불리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만 알고 있던, 그런 모습.
“그대는 왜 도망가지 않고.”
뽀드득.
사내의 걸음이 홍이를 향해 왔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조소가 유독 아름다워 보인 건 왜였을까.
“나를 그리 뚫어져라…… 쳐다보는가.”
또다시 뽀드득. 눈을 밟는 소리와 함께 사내가 홍이에게 가까워졌다. 하늘색, 혹은 물색과 같은 눈동자는 날카롭게 찢어져 있었다. 손을 베어버릴 듯 날렵한 눈매와 흩날리는 금색 물결이 퍽 잘 어울렸다.
“요괴…….”
“그렇다면, 더욱 도망가야 할 터.”
길게 뻗은 그의 손가락이 홍이의 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손톱의 끝이 와 닿는 느낌이 어쩐지 오싹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리가 꽁꽁 굳어버렸다거나, 두려움에 잔뜩 젖어 도망가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 자리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뿐이었다.
“저를…… 잡아먹으실 건가요?”
하나 그 두려움은 감출 수 없는 법. 바들바들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사내가 비죽 웃음을 그렸다. 그리고 차갑게 얼어붙은 손톱을 바짝 세워 그녀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기 시작했다.
맨 처음으로는 뽀얀 살갗을,
“내가 요괴라고 하여, 인간을 먹어 치운단 소리는 어디에서 퍼졌는지 모르겠네만.”
그다음으로는 붉은 입술을,
“나는…… 인간을 먹지 않아.”
뒤이어 높은 콧대를 어루만지던 그가 한쪽 입술을 비스듬히 말아 올렸다.
“네들의 생기를 빨아먹으며 사는 것뿐.”
마지막으로 사내가 홍이의 눈을 유심히 바라보던 순간이었다.
“네 이름이 무어냐.”
그의 목소리가 괴상하게 비틀어지는가 싶었다. 묘하게 꺾인 그 음색에 홍이가 몸을 흠칫, 떨었다. 눈을 깜빡거리는 것과 동시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워, 원래 이름은 모릅니다. 저를 주워 키워주신 조부께서 홍이라 이름을 붙여주셔서…….”
“주웠다?”
날카로운 눈매가 더욱 사납게 찢어졌다. 저를 바라보는 그 눈매에 홍이의 몸이 또다시 흠칫거렸다. 잔잔한 물이 흐르던 눈동자가 매섭게 빛을 발했다. 당장에라도 홍이의 몸을 찢어발겨 죽인다 하여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었다.
“당장 말하라, 그 노인이 어디에서 너를 주웠느냐.”
홍이는 노인, 이라는 말에 울컥 화가 차올랐지만 지금은 자신이 가타부타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거세지는 바람이라던가, 더욱 굵어지는 눈발이 그를 말해주고 있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던 그녀가 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사내를 향해 입술을 달싹였다. 흡, 숨을 들이켜는 괴상한 소리가 괜히 거슬릴까 지레 겁을 먹고 말았다.
“요…… 요 앞에 있는 제단에서…… 데려왔다고 했습니다.”
“그 계절이 겨울이렷다?”
“예……. 지금, 지금처럼 눈이 오는…….”
홍이의 마지막 한마디에 사내가 히죽 웃음을 그렸다.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꽉 움켜쥔 뒤, 다른 한쪽 손으로는 홍이의 얇은 목을 덥석 잡았다. 차디찬 감촉에 화들짝 놀란 그녀가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를 향해 입 한 번 뻥긋할 수 없었다.
“잠시 너의 기억을 들여다볼 것이다.”
안 돼!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목 끝이 꽉 막힌 것 같아 아무런 말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아아, 목을 긁는 신음만이 새어 나와 그녀의 마음을 전달할 뿐.
“만약 내 예상이 옳다면.”
저 먼 산 중턱에서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그녀의 얼굴 위를 내려치고, 사내의 머리칼을 흩뜨렸다. 그 바람 안에 담긴 건 날이 잔뜩 선 칼이 분명했지만, 어쩐지 홍이는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제 목을 잡고 있던 그의 손이 전해주는 냉기 때문일 것이다.
“네가 나에게 너무 늦게 온 것이겠지.”
도통 알 수 없는 소리를 남기던 사내가 홍이의 이마에 제 이마를 가져다 대었다. 그 찰나, 둘의 주위로 거친 눈바람이 일었다. 그들을 볼 수 없게 하려는 듯,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듯.
그렇게나 매섭게 치던 눈바람에 둘의 모습이 파묻혀 가고 있었다.
매듭달, 열이레에 일어난 일이었다.





가느다란 피리 소리가 구불구불한 선율을 그리며 낮은 기와를 타고 흘렀다. 여인들의 높은 웃음소리와 사내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그 선율에 뒤엉키면서 주변의 공기는 묘한 흐름으로 뒤바뀌었다.
홍등가처럼-물론 인간들이 만드는 홍등가와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도깨비와는 다르게 요괴들은 붉은색을 좋아했다- 여기저기 붉은빛을 비춘 기와집은 아주 넓게, 또 길게 분포되어 몇이 그곳에 머무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더불어 올려다보기만 해도 온몸으로 오도도 소름이 돋는 절벽. 그 까마득한 아래에 위치해 있던 기와집들은 뿌연 안개를 지붕 삼아, 저들의 모습을 꽁꽁 숨겨놓고 있었다.
긴 담뱃대를 문 채,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들은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뾰족하게 솟은 귀와 금색 머리칼, 더불어 설산의 눈을 꼭 닮아 창백하게 느껴지는 하얀 피부까지. 그들은 세간에서 말하는 요괴, 다른 차원에서 태어난 존재였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북쪽, 살을 에는 추위만이 지속되는 지역이었다. 간혹 날이 사납거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경우가 빈번한 것은 아마 그들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동쪽과 남쪽, 서쪽에 있는 요괴들과는 다르게 거친 이들이 많았기에 더더욱 날씨마저도 짓궂게 변해 버린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하루의 낙이란, 긴 담뱃대를 문 채 뻐끔거리는 것이 유일했다. 의미 없는 하루 속에, 늘 반복되는 삶을 살아갔다. 담뱃대를 무는 것 외에 또 하나의 낙이 있다면, 그것은 저들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것이었다.
인간들의 세상에 섞여 지내다 들통이 나 혼쭐이 난 일, 혹은 그들의 세상에 조화롭게 섞여 도와주다 그 욕심에 지쳐 저들의 세계로 내려온 일 등 이야깃거리는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요즈음 화두가 되는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이번에도 요화가 태어나지 않았다지?”
동서남북. 각자의 위치에서 살아가는 요괴들을 통솔하는 요괴들의 두령, 그가 응당 가져야 할 여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서쪽에는 진즉 태어났다는데, 왜 북쪽엔 여직 소식이 없을꼬.”
그 여인은 요괴들의 꽃이라 하여 요화라 불리었고, 대부분 새로운 두령이 탄생함과 동시에 함께 태어난다 하였다. 조금 늦는 경우가 있다고 했지만, 북쪽의 요화는 벌써 이십년 째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흐응, 요화의 흔적이 조금은 늦게 나타날 때도 있다던데. 내가 아닌지 몰라.”
콧소리를 내던 여인이 요염하게 몸을 배배 꼬았다. 요화가 태어나지 않을 시, 가장 적합한 여인에게 그 징표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징표는 다름 아닌 붉은 눈동자. 더불어 길게 흐르는 찬란한 흑색의 머리칼과 눈처럼 하얀 피부라 했다.
물론 그들은 여인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모두가 그러한 환상을 하나씩 갖고 있었지만, 그것은 모두 ‘환상’에 그칠 뿐. 만약 누군가 요화였다면, 진즉 그 징표가 나타났어야 옳은 일이었다.
그러나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징표에 오늘도 내가 요화일 것이다, 네가 요화일 리 없다 옥신각신하는 여인들의 시샘 가득한 목소리만 더해지고 있었다.
뿌연 안개를 뚫고 하얀 눈발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음에도 요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홍등가에 오밀조밀 모여 저들 나름대로의 향락을 즐기던 그때,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두령께서 돌아오셨다!”
요새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입구, 어둠이 집어삼킨 뻥 뚫린 굴로 그들의 시선이 향했다. 그곳은 바깥과 이어져 있는 제법 복잡한 굴이었다. 간혹 호기심에 인간이 들어오곤 했지만, 길을 잃어 목숨을 잃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오롯이 요괴만이 통과할 수 있지만, 북쪽의 두령이 허락하지 않으면 요괴라 해도 쉬이 들어올 수 없는 요새의 입구였다.
두어 달 전, 인간들이 사는 곳을 둘러보고 오겠다며 홀로 바람처럼 떠난 그들의 두령이 돌아온단다. 언제 오려나, 오매불망 손을 꼽아가며 기다렸기에 그 반가움은 배가되었다.
침묵은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그 사이를 유독 크게 가로지르는 것은 거칠게 내뱉는 그 누군가의 한숨 소리였다. 많은 이들이 숨죽여 요새의 입구를 주시했을 때, 낮게 깔린 어둠을 가로지르는 금색의 빛이 보였다.
“두령이다!”
그 순간,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수많은 요괴들이 동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여인들은 서둘러 치장을 하였고, 사내들은 두령을 반기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조금씩 금색의 빛이 선명해지고, 머리칼에 이어 그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곱게 빛을 내는 남색의 두루마기가 그 끝자락을 살랑거리며 완연한 모습을 드러내니, 와아! 커다란 함성이 한 번에 뚝 끊기고 말았다.
“이, 인간이다!”
“두령이 인간을 데려왔어!”
웅성거림은 파도처럼 타고 흘러가 동굴 앞을 가득 채운 사내들이나, 홍등가에서 몸을 치장하고 있던 여인들마저도 의아한 시선과 볼멘소리를 던졌다.
하나, 그것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 여음이었다.
“조용히들 하라. 함부로 입을 놀리면…….”
북쪽의 두령, 무연의 곁에서 그를 호위하는 사내 흑강 때문이었을 것이다. 손톱을 길게 뺀 그의 행동에 많은 이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하나로 질끈 묶은 금색의 머리가 살랑이는 바람에 흔들렸다. 흑강의 갈색 눈동자가 딱딱하게 굳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육 척은 더 되어 보이는 신장에, 떡 벌어진 어깨와 다부진 체격이 퍽 압박이었는지 하나둘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모든 요괴들이 요력을 갖고 태어난다 하지만, 그중 강한 요력으로 두령을 호위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날씨를 궂게 만들어 인간들을 골리거나, 모습을 바꾸어 인간들의 틈에 섞이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하나, 흑강은 아주 어릴 때부터 남다른 요력을 보여주었다. 그 해에 서해의 요괴들이 폭주해 북쪽으로 쳐들어왔을 때, 그들 중 반을 제압한 이가 고작 여덟 살의 흑강이었으니. 그 사건을 아는 이들은 웬만해서 그에게 함부로 대들지 않았다.
무연에게 향하는 흑강의 걸음에 맞춰 남색 쾌자가 살랑거렸다. 그는 호위무사가 된 뒤로 무연의 눈동자 색과 똑 닮은 물색의 저고리를 줄곧 고집하고 있었다. 붉은 허리띠에 매달린 칼집을 꽉 잡은 그가 무연의 귓가 근처로 고개를 숙였다.
“웬 인간 여자입니까.”
무연은 저에게만 들리는 흑강의 작은 목소리에 품 안에 든 홍이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길게 늘어진 흑발이 내리는 하얀 눈송이와 대조되어 더더욱 아름답게 빛을 내고 있었다. 곤히 잠들어 있는 그녀의 눈가를 보다 괜스레 웃음을 그렸다. 기다란 속눈썹마저도 그의 맘에 쏙 드는 듯했다.
“두령.”
조급한 건 흑강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혹 무연이 홀로 생기를 취하고 싶어 데려왔다 하면, 그 주위를 봉해야 할 것이라. 인간의 생기는 요괴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유혹이니, 몇이 폭주해 무연에게 달려들어도 이상할 게 없으니 말이다.
흑강의 채근에 무연은 잠시 말을 잇지 않았다. 그리고 곧 내려다보고 있던 홍이를 지그시 쳐다보다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요화(妖花). 북쪽의 요화를 이제야 찾았다.”
실로 그 파장은 대단했다. 인간 여자가 요화라는 말을 수긍할 수 없었는지, 몇 요괴들이 목청을 높였다. 그녀가 요화임을 믿을 수 없다 소리 지르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 이들을 매섭게 노려보는 흑강 때문이었다. 하나, 무연은 그에 연연하지 않은 채 홍이를 안아 들고 제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기와집의 가장 끝, 총 세 개의 층으로 나뉜 거대한 그곳은 무연의 이름을 따 무연각-보통 두령이 바뀔 때마다 이름이 바뀐다-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무연각의 가장 높은 곳, 제 침실에 홍이를 눕혀놓은 무연은 벌써 한 시각째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홍이의 기억이라지만 결국 그녀를 잉태하고 있던 여인의 기억. 그것을 곰곰이 되씹자 절로 쓴침이 올라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씁쓸함이었다.

“이 아이를 바치겠습니다.”

기억 저편에서 보았던 건, 매우 허름한 차림의 사내였다. 얼마나 굶었는지 얼굴이 반쪽이 된 그는 앙상한 팔로 배가 부른 아내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며 의아하단 표정을 짓는 건 전대 두령이요, 자신의 아비와 같은 자, 화평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의 모습에 사내는 입술을 떨었다.

“이 아이를 당신에게 바칠 테니…… 고, 곡식을, 곡식을 주십시오.”

인간과 요괴의 거래였다. 보통 인간들은 부귀영화, 혹은 요괴의 힘을 빌려 나라를 정복하는 걸 꿈꾸고는 한다. 그렇기에 남쪽의 요괴는 황실과 내통해 벌써 동쪽을 잡아먹지 않았던가.
유연국과 송안국이 하나가 된 것에 많은 요괴들이 분을 터뜨렸었다. 인간에게 힘을 빌려준 것도 모자라, 같은 동지를 제 아래에 무릎 꿇게 만들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각 지역의 두령들은 개의치 않아 했다.
강한 자가 강한 힘을 얻고, 그 강한 힘으로 누군가를 굴복시키는 건 저들 사이에서 당연한 일이었으니. 굴복당하고 싶지 않다면 강해져야 했다. 누군가를 짓밟고서라도, 혹 그 목숨을 빼앗아서라도.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곡식이면 되는가?”
“예. 저희 가족들이 먹고살 만큼만 주시면 됩니다. 금붙이도 좋고, 곡식도 좋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꼭, 꼭 바칠 테니.”

사실 홍이의 기억 속 애절한 사내의 목소리에 무연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보통의 요괴라 함은, 희로애락을 느끼기보단 그저 눈앞에 보이는 향락에 집착하는 경우가 컸으니 말이다.
그러나 전대 두령 화평은 여인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느낀 듯했다. 사내의 애절한 눈빛을 본 것인지, 배 속의 아이가 요화로 태어날 것을 감지했기 때문인지.

“네 아이가 붉은 눈동자로 태어나면, 북쪽 산 제단 위에 아이를 올려놓고 가거라. 그때까지 먹을 곡식은 매달 대줄 테니.”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음에도 그 거래를 승낙했다. 물론 성인의 생기, 그에 반도 미치지 못하는 아이의 생기를 취하기 위해 거래를 한 건 아닐 터였다.

“붉은 눈, 꼭 붉은 눈동자로 태어나야 한다.”

미리 알아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요화임을 진즉 알아보고 그러한 거래를 한 것이라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째서 인간의 모습으로 요화가 태어난 것이란 말인가. 아니, 그걸 떠나서 어째서 그녀는 진즉 제 곁으로 오지 않았던가.
그녀의 존재를 알아채고 나니, 이제 그 사실이 괘씸해지기 시작했다.
“어서 일어나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무연이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뽀얀 피부를 훑었다. 몇 번을 어루만져도 손끝에서 금세 느낌이 사라져 버리니, 손을 떼는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그 눈동자를 다시 한 번 보여주어야 한다.”
만약, 그녀가 요화가 아니라면 그는 두령의 자질을 가지지 못한 채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껏 요화가 태어나지 않은 두령을 다른 이들이 따를 리도 만무할 테고 말이다.
요화는 두령의 또 다른 힘이나 다름없었다. 요화를 얻은 두령과, 그렇지 않은 두령의 힘은 확연히 커다란 차이를 보였다. 더더군다나 남쪽의 요괴들이 호시탐탐 북쪽과 서쪽을 노리는 이때, 요화란 무연에게 꼭 필요한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더욱 간절했다.
“나는 네가 필요하다.”
요화의 존재와 그 존재가 가져다줄 힘이. 그에겐 가장 절실했다.
“나는 너를…… 아주 오래 기다렸다.”
잠든 홍이를 내려다보던 무연의 얼굴 위로 회심의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얼굴을 쓸어내리던 그때, 문 바깥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인상을 잔뜩 쓴 그가 고개를 돌려 오색의 발이 드리운 문을 바라보았다.
크지 않은 발소리, 더불어 흔들림 없는 움직임. 흑강이 분명했다.
“들어와라, 어찌 바깥에서 그리 서성이는 것이야.”
무연은 인상을 잔뜩 쓰고 있던 얼굴을 조금 펴 다시금 홍이를 내려다보았다. 혹 눈을 뗀 사이에 깨지는 않았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뒤이어 문을 열고 들어온 흑강이 무연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침대에 누워 있던 홍이를 힐끗거리다 꿀꺽, 침을 삼켰다. 말로만 듣던 요화의 모습을 실제로 본다는 것 자체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가 보았던 요화라고 해봤자, 다 늙어버린 전대 요화뿐이었으니.
“아직 깨지 않으셨습니까.”
흑강의 질문이 조금 거슬렸던 걸까. 그를 흘깃 쳐다보던 무연은 고개만을 끄덕였다. 뽀얀 볼 위를 헤매던 손이 내려와 그녀의 보드라운 손을 어루만졌다. 손등은 그 어떠한 솜털보다 부드럽건만, 손바닥은 왜 이리 거친 것인지.
저도 모르게 차오르는 노기에 입술을 꾹 눌렀다.
“이 여인을 만나러 인가촌까지 행차하셨던 것입니까.”
흑강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무연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굳이 이 여인을 찾기 위해 내려간 건 아니었다. 그저 마음이 답답하여, 동굴의 안쪽 절벽 아래에서 사는 것이 답답하여 인간들의 세계를 구경하고자 간 것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돌아오는 길에 홍이를 발견한 것이지, 커다란 의미는 없었다. 검은 머리칼을 버렸고, 눈동자에서 어둠을 물렸다. 그렇게 자연스레 눈에 묻혀 돌아오던 길이었을 뿐.
“그럴 리가.”
고개를 두어 번 도리도리 저어대니, 그의 뾰족한 귀가 머리를 뚫고 솟아 나왔다.
“요화의 탄생에 모두들 기뻐하는 눈치입니다.”
“그렇겠지. 오매불망 기다렸으니.”
뒤이어 흑강의 짤막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것이 거슬렸던 건지, 무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왜 한숨을 쉬냐는 눈빛이었다.
“하나, 몇은 인간의 아래에서 살고 싶지 않다며 부락을 떠났습니다.”
분명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었건만, 무연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금 홍이에게 제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윽고 그의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놔두어라. 저들이 싫다 떠난 것을 어찌 잡으랴.”
“하지만 두령.”
“서쪽으로 가든, 동쪽으로 가든. 그냥 두어라. 요괴들이 터를 옮기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무연의 말이 곧 법이었으니, 흑강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러한 말을 뱉은 무연 역시도 그리 마음이 좋지 않은 건지, 짤막한 한숨만을 반복하며 내뱉었다. 하늘에서 이렇게 정해준 것이라 받아들이겠다마는, 계속해서 요괴들의 부락 이탈을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자신이 지켜야 할 요괴들이었다. 이제껏 북쪽에서 태어나 북쪽에서 내리 살아온, 삶의 터전과 함께한 이들. 두령으로 태어나 첫 번째로 받은 천명이 그들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결국, 시간을 두고 결정하려 했던 이야기를 꺼내기로 한 것이다.
“요화가 깨는 대로…… 의식을 준비할 것임을 일러라.”
무연의 결정에는 일말의 망설임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말로는 괜찮다,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찌 마음이 그리 평탄할 수 있으랴. 더 이상의 탈주자가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남쪽의 요괴들이 동쪽 다음으로 노리는 건 분명 요화가 나타나지 않은 북쪽일 것이다. 아직 힘을 갖지 못한 저 자신이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먹이일 터. 더욱이 북쪽을 탈주한 이들을 이용해 이곳을 뒤엎어 버리는 건 교활한 그들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었다.
물론 흑강이 무연의 그런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아주 오래전, 무연의 종자가 되었던 그 어린 날부터 지켜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아닌 것 같았다.
비록 자신이 한낱 종자에 불과하다 하여도 아닌 건 아니라 말을 해주어야 했다.
“두령,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그의 결정에 가타부타 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두령의 명령이 절대적이라는 것 역시도 잊은 건 아니다. 다만 어렵게 얻은 요화가 그 꽃잎 한 번 피어보지 못하고 시들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 흑강의 행동에 무연은 조금 놀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늘 제 의견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행하던 사내였다. 그림자처럼 제 곁을 지키며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힘을 실어주던 그가 따로 할 말이 있단다.
그것도 자신이 결정한 일에 대해서 말이다.
“말해보라.”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모습에 흑강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조아렸다.
“요화께서 깨어나면 놀라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혹, 아무것도 모른 채 의식을 치르다 충격이라도 받으신다면…….”
“받는다면?”
“혹, 그것이 독이 되어 변이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에 무연이 흠, 낮은 숨을 뱉었다. 가늘고 길게 뻗어져 나오던 그의 숨소리가 홍이의 볼에 스며들었다. 여전히 잠에서 깨지 못하는 그녀를 내려다보던 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제대로 먹지도 못한 건지, 앙상한 손목이 돋보였다. 그 위로, 위로 올라갈수록 여인의 풍만함이란 그녀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보통 인간들의 기력보다도 못하는 것 같으니, 당분간은…….”
흑강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의 두령, 그의 주인 무연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냉정하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그 속은 하염없이 부드럽다. 다만 그것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는 것뿐.
한참이나 고개를 끄덕거리던 무연이 흑강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네가 나보다 낫구나.”
뒤이어 희미한 미소가 만연했다. 퍽 마음에 드는 제안인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그가 이번엔 몸을 돌려 흑강을 쳐다보았다. 미간을 좁히는 것이 무언가 곤란하다는 표정이었다.
“한데, 이 여인이 싫다 하면 어쩌지?”
“예?”
“생각해 보아라. 내가 무조건 요화가 되어라, 한다고 인간이 예, 그러겠습니다, 하겠냐 이 말이야.”
그의 물음에 무연이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단 한 번도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무연이 원하면-물론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는 게 답답했지만- 그 어떤 여인이든 그의 침소에 들어야 했다. 그것뿐인가. 그가 원한다면 정인이 있는 여인이라도 그에게 바쳐져야 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어둠에게서 태어난 요괴, 요괴가 만들어 요괴가 된 것이 아닌 어둠의 피가 흐르는 진짜 요괴-흑강을 비롯한 요괴들은 인간처럼 출산으로 태어나지만, 두령이 될 요괴들은 어둠으로 만들어진 동굴, 그곳에서 태어난다. 두령의 탄생은 두령만이 알 수 있다-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마음을 얻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마음을 얻어? 그건 어찌 얻는 것이냐.”
그 질문에 흑강이 눈을 깜빡였다. 도르륵, 눈알이 굴러감과 동시에 머리 역시도 생각을 이어갔다.
“마음을 주어라, 고 하면 주는 것이냐.”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입술을 꾹 누르던 흑강이 무연과 눈을 마주했다.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 두 눈에 보였지만, 그 역시도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했다.
“말해보아라. 그게 아니라면 마을에라도 가서 사와야 하는 것이냐? 그 마음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을? 요력이라도 부려야 하는 것이야?”
또다시 흑강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저 역시도 모르는데, 그에게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까. 한참이나 그와 눈을 마주하던 흑강이 고개를 조아렸다. 결국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없다는 게 왜 이리도 죄스러운 걸까.
“죄송합니다. 저도 잘…….”
흑강에게 무언가를 기대했기 때문일까. 고개를 조아리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그의 행동에 무연의 입이 슬쩍 벌어졌다. 세상을 다 잃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다 흠, 낮은 한숨을 뱉었다.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듯, 머리를 한참이나 굴리다 다시금 흑강에게 시선을 굴려 입술을 달싹였다.
“찾아오너라.”
그에 흑강이 놀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토끼 눈을 한 채 무연을 쳐다보고 고개를 살짝 비틀었다.
설마, 잘못 들었겠지.
“예?”
“듣지 못하였느냐? 찾아오라 하였다.”
설마, 아니겠지.
흑강의 미간이 좁아지는 듯, 좁아지지 않는 듯 애매한 차이를 유지했다. 두령을 앞에 둔 채 안 된다고 말을 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무엇을…….”
“무엇이겠느냐.”
꿀꺽. 침을 삼키는 흑강의 모습에 무연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어쩜 이렇게 답답할꼬. 한쪽 다리를 무릎 위로 올려 다리를 꼰 그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알고 있지만 알 수 없는 정적 속에 흑강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닐 것이다. 무연이 저에게 터무니없는 것 따위 시킬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에 들린 무연의 말이 흑강의 머리를 쾅 내리쳤다.
“여인의 마음을 얻는 방법.”
단호했다. 꼭 찾아와라, 는 말이 아닌 찾아와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입술을 꾹 다물고 있다 하하, 어색하게 웃음을 그렸다. 저 역시도 여인의 손을 잡아본 것이 언제 적인지 생각조차 나지 않건만.
“저…… 두령.”
“내가 믿을 건, 너뿐이니라.”
그래도 어쩔 수 있으랴. 저만이 믿음직하다는데, 믿을 이가 저밖에 없다는데. 그 말이 꽤 마음에 들었던 건지, 흑강이 금세 웃음을 그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요화의 마음이 나만을 향할 수 있는 법이어야 한다. 이 여인이 나를 떠날 수 없는 최고의 방법 말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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