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전상들은 지위와 체면에 있어서 전당업자들보다 한 단계 위에 있었다. 비록 이윤의 정도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지만 말이다. 그들은 ‘반키에레 인 메르카토’라 불렸다. 이는 도시의 시장 중 한 곳 혹은 그 근처에 있는 상점이나 작은 노점에 일반적으로 계산대, 즉 그들 명칭의 유래가 된 반코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에서 통용되는 지방 화폐는 매우 다양했기 때문에 그들의 기본 업무인 환전은 복잡하고도 중요했다. 세계 도처의 환전상들이 수세기 동안 해온 것처럼 그들은 저울과 동전 더미, 동전 주머니를 가지고 가게 뒤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15세기에 근대적 의미의 이체 및 예금 은행업을 시작했다.
--- pp.48-49, 제조업, 무역 그리고 화폐
성벽 요새의 건축은 보통 시가 조직하고 지불하는 공공사업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단연코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었다. 성벽은 자유시에게 독립의 보호 수단으로 필수적이었으며, 중세의 혼란한 시기에도 성벽은 번영하는 도시에게 안전을 제공했다. 또한 성벽은 다른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시 정부는 치안 장벽과 관세 장벽의 역할을 하는 성벽의 존재로 인해 도시에 누가 출입하는지를 통제할 수 있었고, 성문에서 관세를 징수했다. 많은 도시에서 성벽이 18세기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특히 관세 징수의 기능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여타의 다른 기능만큼이나 중요했던 점은 성벽이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 즉 한 도시의 권력과 부를 보여주는 가시적이고 압도적인 상징이었다는 것이다.
--- p.107, 교회와 국가
교황들은 하나의 제도로서 교황권을 회복하고, 교황청의 소재지로서 로마를 재건하는 정책에 착수했다. 화려한 새 건물을 짓는 것은 그 정책의 일환이었다. 교황 니콜라우스 5세는 1455년 선종 당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교양이 부족한 대중의 정신에 견고하고 안정된 신념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시각에 호소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한다. 교리에만 의존하는 대중의 신앙은 미약하고 동요될 수밖에 없다.” 신앙은 건축물을 통해 강화될 수 있었다. “인상적인 비례를 갖추고 기품과 미가 조합된 훌륭한 건축물은 교황의 권위를 고양시키는 데 막대한 기여를 할 것이다.”
--- pp.188-189, 눈부신 로마
파리 전역의 카페에서는 점차 프랑스의 정치·사회적 체제가 가진 경직성에 좌절을 느낀 활기차고 지적인 전문직 종사자들과 이들에 공감한 귀족층에 의해서 계몽사상이 확산되고 그와 관련된 토론이 이뤄졌다. 볼테르, 장-자크 루소, 드니 디드로, 장 르 롱 달랑베르, 콩디야크 같은 계몽사상의 선구자들은 카페 프로코프와 카페 드 라 레장스에 출입했다. 파리에서의 이 다섯 인물의 존재와 이들의 회합은 한 도시가 어떻게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는가를 개략적으로 보여준다. …… 모든 도시에서 커피하우스, 클럽, 살롱, 협회, 아카데미는 국제적 소통망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1780년대가 되었을 때 파리의 카페는 매우 정치적으로 변해 있었다.
--- pp.333-334, 여가의 활용
뉴욕의 모든 초기의 고층빌딩은 최대한의 상업적 수익을 얻기보다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설계되었다. 예를 들면 보험회사, 신문사, 전신회사들의 본사 건물 등이 그러했다. 이 회사들은 각자 경쟁 관계에 있었으며, 자신들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거나 판매량을 증대시키는 데 있어서 높은 층수, 화려함, 인상적인 실루엣이 가지는 가치를 알고 있었다. 뉴욕에서 마천루의 광고 효과는 계속해서 중요성을 띠어갔다. 1902년에 세워진 싱어 빌딩, 1911년에 세워진 울워스 빌딩, 1930년에 세워진 크라이슬러 빌딩의 실루엣은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p.504, 미국과 마천루의 탄생
무엇보다 그는 ‘정원도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것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1902~1903년에 잉글랜드의 정원도시협회는 하트퍼드셔의 레치워스에서 최초의 정원도시 건설에 착수했다. 19세기의 정주지들이 수천 파운드의 자금을 모으는 데 실패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들은 토지를 구입하고, 계획을 실행시키는 데 필요한 15만 6,000파운드를 큰 어려움 없이 모금했다. 1905년에 앨프리드 R. 세넷은 《정원도시의 이론과 실제Garden Cities in Theory and Practice》라는 책을 출판해 유럽과 아메리카 도처에서 정원도시나 그와 관련된 계획이 확산되어지는 과정을 기술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정원도시! 연기로 뒤덮인 도시에서 질식할 것 같은 좁고 더러운 거리에 사는 노동자들에게 … 그것은 얼마나 상쾌한 이름인가! … 자연의 오솔길을 버리고 인공적인 도시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안식과 행복, 고결함은 사라지고 소란과 불안, 위선만이 남아 있다.”
--- p.552, 바빌론 혹은 예루살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