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운동에 적합한 이름을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운동을 구체적으로 조직화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했지만, 인류가 생긴 이래 가장 복잡한 조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름 짓는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 운동과 상관이 없는 외부인들은 무력한 운동일 뿐이라고 비판하지만 그런 평가도 이 운동의 성장을 막지 못한다. 수년 동안 여러 현상들을 연구하고 이 운동을 구성하는 단체들에 대한 데이터를 동료들과 함께 수집해본 결과, 이 운동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거대한 사회운동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무도 이 운동의 규모를 정확히 알지 못할뿐더러 이 운동의 작용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신비롭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아주 굉장하다.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응집력 강하고 유기적인 단체들을 자발적으로 조직해서 변화를 목표로 헌신한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미래에 대해서 비관적인지 낙관적인지를 물어오면 내 대답은 항상 똑같다. 오늘날 지구상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듣고도 비관적이지 않다면 정확한 데이터를 접하지 못한 사람이고, 이 '이름 없는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고도 낙관적이지 않다면 심장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 p.9
우리가 스스로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의 운명이다. 이 책은 우리를 너무나 힘들게 했던 이데올로기 근본주의보다 더욱 매혹적인 이야기를 인류가 새로이 찾아냈는가를 묻고 있다. 너무 자주 듣는 이야기는 힘을 잃기 마련이지만 인류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작가 윌리엄 키트리지William Kittredge가 적고 있는 것처럼'스스로 명명이 가능한 사회는 스스로의 이야기들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이야기를 뗏목처럼 타기도 하고 지도처럼 탁자 위에 펼치기도 한다. 결국 그 이야기는 항상 시들해지고 다시 수정된다. 세계는 너무나 복잡다단해서 하나의 이야기가 오래토록 이어질 수도 있다.'세계가 스스로의 진화적 잠재력을 깨닫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새로운 이야기와 집단을 필요로 할 것인가? 이야기는 우리보다 더 거대하기 때문에, 그 관대함과 다양함에 기대어 꿈꿀 수 있다. 아이들에게 요정과 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먼 곳을 바라보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의 가족과 공동체는 우리들에게 옛 이야기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해준다. 이 운동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이자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이다. 2백만, 3백만, 아니 5백만 개의 시민주도형 단체들이 인류의 생활방식과 지배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인식의 전환은 미래의 어느 순간에 이루어질 것인가? 지배적 소수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 민주주의란 어떤 모습일까? 우리의 문제들을 완전히 근원까지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을 고안해낸 세계는 어떤 느낌일까? 우리들 대부분이 머리를 과거로 향하고 있어서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지 못하는 인류발전의 과도기에 막 들어선 것이라면 어떨까? 기본적인 가치들이 세계적으로 다시 퍼져나가 복잡한 사회적 의미망들이 힘을 얻게 된다면 어떨까? 아직 스스로를 운동이라고 깨닫지도 못한 운동에 던질 수 있는 질문이란 이런 것들이지 않을까 싶다. --- p. 52
카슨은 기업 그 자체에 대한 반대의견을 피력한 것이 아니라 기업우선주의가 몰고 오는 악영향에 주목했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생물다양성보존협약에 서명을 거부하면서 자신은'기업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자유주의자와 개혁론자들은 상업을 매도하고 경제발전을 저해한다'는 기업계의 판에 박힌 불평을 그대로 답습했다. 이런 논리는 돌처럼 굳어져서 끝없이 되풀이되었다. 하지만 과거 역사를 언뜻 훑어보기만 해도 기업의 권리가 보호되지 않은 경우는 사실상 찾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계는 기업이 가치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자신들의 권리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기업의 이윤추구 과정에서 파괴되는 가치도 만만치 않다'라는 반박을 야기한다. 그 가치가 자원 같은 자연환경에서 나온 가치이든, 임금이나 노동조건, 건강 같은 노동자에서 연유한 가치이든, 이런 가치들은 기업의 가치 계산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레이첼 카슨의 결론은 한번 명성을 얻은 기업은 가치를 파괴하는 제품마저도 생산한다는 것이다. 한 번 정도를 넘은 기업은 계속 공중보건을 위협하게 된다. 기업의 권리는 그것이 다른 기업의 권리를 박탈하거나 시민의 권리와 상충되거나 다른 생명체를 절멸시키는 것이라면 보장받지 못한다. 경제적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기업이 사회적 비용을 강이나 마을, 환자, 전 세대에 떠넘기지 않고 스스로 완전한 대가를 지불하게 만들기 위해서 시민들이 200년 뾵안 노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p. 108
에머슨에서 소로로, 소로에서 간디와 킹으로, 간디에서 파크스와 킹으로 이어지는 사상의 흐름은'사상은 세계 속 사람들에게 이어진다'는 에머슨의 신념이 옳음을 보여준다. 역사는 변화의 핵심이 되는 일상적인 행동을 지워버리는 경향이 있다. 만약 소로가 에머슨의 강의에 참석하지 않았거나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소로가 인두세를 납부했다면? 소로의 책 제목이『시민 불복종』으로 바뀌지 않았다면? 로자 파크스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버지니아 더가 후원하지 않았다면? 「인도 타임스」의 편집자가 소로의 책을 간디에게 건네주지 않았다면? 로자 파크스가 운전기사에게 겁을 먹고 자리를 옮겼다면? 킹이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의 지도자가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 앞에 높인 갈림길에 대한 속담을 잘 알고 있다. 졸업식에서든 교회에서든 우리에게는 편한 길과 남들이 잘 가지 않는 덜 편한 길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이런 갈림길에 놓인다. 삶은 모든 순간이 가능성의 연속이다. 남들의 삶과 내 삶을 구분 짓는 것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한 가지 요소인 의지뿐이다. 로자 파크스의 의지는 킹이나 소로, 간디와 마찬가지로 깊고 흔들림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제멋대로 돌아가지만 사람의 의지만큼은 그렇지 않다. --- p. 141
생물종의 멸종과 문화의 소멸은 세계화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세계화란 자원 채취와 경제적 팽창을 통한 진보 추구를 의미한다. 원주민들은 백인들이 선언한 많은 공약 중에서 지켜진 것은 자신들의 나라를 빼앗겠다는 맹세뿐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침략자들은 모든 것을 빼앗지는 못했고, 오늘날 대략 5,000개의
토착문화가 그들의 고향땅(지구 땅 면적의 1/5을 차지)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많은 경우 이들의 땅은 가장 적게 파괴된 숲과 산, 풀밭이어서 아직까지 수많은 자원이 잠자고 있는 보고나 마찬가지이다. 이 땅에 가해지는 폭력은 진보와 현대성의 논리로 무장한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군사적인 힘이다. 토착부족민과 이들을 지지하는 이름 없는 운동은 이제까지의 정치 집단들과는 완전히 다른 본성을 지닌 정치적 행위자들이다. 그들에게는 전투기와 군대, 화폐제도, 유엔 기구 같은 것들이 없다. 대신 그들에게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가치를 지닌 것이 존재한다. 바로 이야기와 문화로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조상의 땅이다. --- p.168
시장 세계화를 반대하는 주장에서 부족한 부분은 세계적 빈곤문제를 해결할 대체적 경제모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화된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부분은 급속한 경제변화의 결과로 일어난 생태학적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점이다. 어떻게 번영과 비참함과 환경파괴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가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민자와 난민, 농민이 도시의 슬럼으로 몰리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자유무역을 가장 굳건히 받치고 있는 기관은 세계은행이지만 인류가 처한 상황을 가장 비관적으로 보는 기관도 세계은행이다. 세계은행은 2030년이 되면 50억 이상의 사람들이 하루에 2달러도 되지 않는 돈을 벌 것이며 그들 중 20억 명은 대도시의 슬럼가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세계의 미래는 슬럼가의 절망과 분노, 음침함 속에서 배양되고 있다. 진화적 용어로 말하자면 날마다 20만 명의 새로운 이주자들이 도시빈민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군사분석가들은 젊은 층의 인구가 증가하면 범죄가 급격히 늘어난다는 이론을 인용하면서 슬럼가는 사이코패스와 미치광이, 선동가, 민병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마이크 데이비스Mike Davis는『슬럼, 지구를 뒤덮다Planet of Slums』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미래의 도시는 이전 세대의 사람들이나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상상한 것처럼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도시가 아니라, 손으로 찍어낸 벽돌, 지푸라기, 재활용 플라스틱, 시멘트 덩어리, 나뭇조각으로 지어진 도시다. 21세기의 도시는 하늘을 찌를 듯 빛나는 도시가 아니라, 공해와 배설물과 부패로 둘러싸여 더러움 속에 눌러앉은 슬럼일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슬럼에 거주하는 10억 명의 빈민들은 9,000년 전 도시생활의 여명기에 세워진 아나톨리아 정착촌 차탈휘위크의 튼튼한 진흙집 잔해를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돌아보게 될 것이다.' --- p.221
미래에 희망을 제시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인류의 모임일 것이다.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이 세계의 상처를 모두 치료할 수는 없기 때문에 중앙집중화되지 않고 각각의 대표성을 지닌 모임이 늘어나는 것이야말로 낙관적인 미래를 예상케 해준다. 어떤 이데올로기도 심각한 상황의 일시적 진통제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역사가 보여준다. 면역체계는 신체에서 가장 복잡한 체계이며 인간문명은 유?체들이 가장 복잡하게 얽힌 모임이다. 이 운동은 단체들이 가장 복잡하게 연합된 조직이다. 무정부주의자, 억만장자, 거리의 예술가, 과학자, 청년운동가, 토착민, 외교관, 컴퓨터 괴짜, 작가, 전략가, 농민, 학생 등이 공통된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하는 모습은 영원히 멈추지 않는 인간의 욕구를 증명한다.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같은 욕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서로 협력하게 된다. 이 운동은 따로 떨어진 가장자리의 세력들을 연결하여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함께 공통의 걱정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준다. 지구와 사람들이 받는 끝없는 부당함과 상처에 잘 대응하려면 개인으로서 우리의 기능과 잠재력을 이해한 후에 공동의 행동을 벌여야 한다. 항원은 우리 몸의 세포 표면 위에 살짝 내려앉는다. 바이러스와 병균은 고유의 항원을 가지고 있고 우리 몸은 그 항원이 이물질임을 경고 받는다. 수백만 개의 서로 다른 항원은 각자 다른 미생물에 붙어서 우리 몸으로 들어올 길을 찾는다. 비슷하게 수백만 개의 서로 다른 항체는 항원에 톱니바퀴처럼 딱 맞붙어서 침입자를 중화하는 동시에 다른 면역세포에게 도움의 신호를 보낸다. 이것이 면역반응의 시작이다. 이 운동을 구성하는 수십만 개의 단체들은 권력이라는 병원균에 맞붙는 사회적 항체들이다. 그 면역반응이 현재는 아주 많이 불완전해서 많은 실패를 거듭할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함께 작용해야하는지에 대해 배워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지구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온 방식이다. --- p.264
생태학적 복원은 대단히 간단하다. 스스로를 치유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치워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심장과 지식, 돈, 사회적/생태학적 요소를 최적화할 감각까지 지니고 있다. 이제 유해한 모든 것을 버릴 시간이다. 1백만 명의 경위대가 바로 이곳에서 제국의 악몽과 전쟁의 비참함을 바꾸려 하고 있다. 우리는 위반하는 사람이고 용서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 검은 운동이나 갈색 운동이 없으면 녹색 운동도 있을 수 없다. 가장 유해한 요소는 우리 안에 존재한다. 과거의 누적된 상처와 슬픔, 부끄러움, 기만, 모든 문화가 공유하는 치욕 등이 유전자처럼 폭력과 탐욕의 역사로 모든 인간에게 전해졌다. 환경보호운동이 우리의 생존에 불가결한 운동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말 그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지구가 불타고 있으니 환경보호운동가들의 입장에선 사회정의운동이 환경보호운동 버스에 올라 타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불을 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회정의 버스에 올라타서 우리
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에는 그 버스가 그 버스이니까 말이다. 이런 깨달음으로 무장하면 우리는 모든 외부의 위험에 대처할 수 있다. 이름 없는 이 운동이 주는 살아있는 지식이 우리를 이끌어줄 것이다. 매초마다 기적을 일으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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