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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

홍주

[ 양장 ]
진선유 | 눈과마음 | 2003년 02월 28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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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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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3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67쪽 | 500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9433620
ISBN10 898943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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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있어봐. 그래. 그대로 천천히…… 움직이지 말고 있어.”
세영은 마치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곱게 눈을 감고 앉아 있는 홍주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조금은 긴장했는지 장밋빛 뺨이 더욱 발그레하게 홍조를 띄우고, 산뜻한 입술을 앙다문 채 긴 속눈썹을 파리하게 떨고 있는 수줍은 모습은 그의 흥분을 더욱 고조시켰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흘러가는 탓일까. 그는 약간 싱거운 기분조차 들었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처음’이란 것은 언제나 그의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들뜨게 했다. 이제 조금만, 조금 더 닿으면 그녀의 석류알처럼 붉고 보드라운 입술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참으면 말야.
“안즉 멀었어예? 뭐 할라꼬 그랍니꺼?”
“거의 다 됐어. 조금만 더 기다려봐. 절대 눈뜨면 안 돼.”
“예.”
눈앞의 수줍은 산처녀는 그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채근하며 재촉했다.

¤ ¤ ¤

홍주의 기대치는 한껏 부풀어 있었다. 만난 지 겨우 일주일밖에 안 되었지만 그는 만날 때마다 그녀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주었다.
그는 처음부터 마을에 몇 안 되는 시커먼 선머슴들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몇 가닥씩 밝게 빛나는 길다란 노란 머리칼하며, 생전 햇빛도 받지 않고 자랐는지 계집인 자신도 갖지 못한 투명하고 뽀얀 피부를 자랑하고 있었다.
문경시는 저 유명한 문경새재가 있는 천혜의 관광지로, 매년 여름이면 숱한 외부인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지만 몇 가구 되지도 않는 홍주가 사는 싸릿골까지 들어오는 사람들은 흔치 않았다. 가끔 나이 든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소풍을 와 한바탕 시끄럽게 놀다가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런 일조차 극히 드문 경우에 속했다. 그녀가 사는 곳은 전기가 들어온 것도 불과 30년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깊은 산골짜기여서 거의 모든 문화적 혜택은 포기하고 산다고 할 정도로 작고 외진 마을이었다.
그런 외지고 작은 마을에 젊은 청년이 셋이나 나타난 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대단한 관심거리였다. 뭔가 흥미로운 구경거리래 봐야 가축이 새끼를 낳는 일이거나 열흘에 한 번씩 열리는 장터에 나가는 일 정도밖에 들먹일 것이 없는 무료하고 고단한 하루 하루의 연속인 마을에서, 화려한 외모에, 시골 사람들이 듣기엔 낯간지러울 정도로 상냥한 서울 말씨를 쓰는 세 명의 청년은 나이 든 노인들에겐 호기심의 대상으로, 몇 안 되는 마을 젊은이들에겐 대도시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타지에서 온 이방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관심은 그들이 마을에 머문 첫날부터 떠나는 날까지 마을 사람들의 입에 하루도 회자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다. 마을 사람들은 청년들에게 서로 자기 집에서 묵어갈 것을 원했고, 청년들은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을 담뿍 받으며 여름과 휴가의 정취를 물씬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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