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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을 슬퍼하여 꽃도 눈물 흘리고

시절을 슬퍼하여 꽃도 눈물 흘리고

: 요시카와 고지로의 두보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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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5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600g | 153*225*30mm
ISBN13 9788990024893
ISBN10 8990024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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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역자 : 박종우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국 한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율곡 이이의 시세계에 대한 일고찰」, 「전기소설 삽입시의 기능과 성격」, 「16세기 호남사림(湖南士林) 한시(漢詩)의 무인(武人) 형상(形象)」 등이 있고, 공역서로 『국역고산유고(國譯孤山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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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 시의 위대함을 내용적으로 혹은 사상적으로 파악한다면, ‘인간은 어떻게 존재해야 할 것인가’라는 인식의 올바름이라는 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두보가 품었던 인간관(혹은 세계관)을 결론적으로 잘 보여주는 작품은 아주 만년에 지은 오언율시 「추야秋野」의 한 연입니다.

易識浮生理, 뜬 구름 같은 삶의 이치 알기 쉽지만,
難敎一物違. 한 사물로 하여금 어긋나게 하기는 어렵네.

부생浮生, 즉 이래저래 불안정한 것이 인생이지만, 불안정한 인생의 ‘도리’라는 것은 인식하기 어렵지 않다, 아니 인식하기 쉬운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일물一物, 그러니까 단 하나의 존재라도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 있는 것은 견디기 힘들다. 만약 그러한 사태가 일어나면 모종의 저항감을 느끼는, 그것이야말로 부생의 도리라는 말입니다만, 모든 존재가 행복하게 조화를 이루어 존재하는 그러한 세계가 두보의 이상이었습니다. 두보의 모든 시의 근저에는 응당 이런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끝없이 주장하고, 또 그 실현을 방해하는 다양한 요소에 끝없이 항의하는 태도가 깔려 있습니다. --- pp.14-15

그러한 시로서의 위대함을 두보는 두 가지 방향으로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치밀함입니다. 정밀함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시가 소재를 통해 감동을 낳는다는 사실은 새삼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만, 소재를 통해 감동을 낳기 위해서 우선 소재의 윤곽을 이루는 것을 또렷하게, 치밀하게, 정확하게 포착하여 감동의 기초를 확실히 하려는 성질이 우선 있습니다. 두보 시는 본래부터 격렬한 시입니다. 모든 존재의 조화를 얻은 공존을 바란 그는 정치사상 면에서는 늘 현실개혁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시는 늘 격렬합니다. 그러나 격렬한 언어가 갖기 쉬운 조분함, 거친 면은 없습니다. 늘 치밀합니다. 이것은 우선 인간의 사실이나 자연의 사실을 섬세한 부분까지 관찰하려는 숙시熟視, 끝까지 관찰한 것을 마음속에서 곱씹는 숙려熟慮, 그리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데에서는 매우 치밀한 언어로 나타납니다. 표현 면에서의 치밀함은 이지理智에 의한 계산 또한 거부하지 않는 것이었고, 그런 까닭에 그는 대구對句의 명인입니다. --- p.15

그런데 지금까지 말씀드린 두보시의 치밀함, 이것은 두보시에 얼마간 접한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대상으로 삼은 소재의 윤곽을 분명하게 잡아내는 방향입니다. 그런데 두보시에는 또 하나의 방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상의 배후에 있는 것에 닿으려는 방향입니다. 이야기를 간단히 하기 위해, 그것을 초월의 방향 혹은 비약의 방향이라 부르겠습니다. --- pp.26-27

내 생각에 두보의 시는 대강 네 개의 시기로 나뉜다.
아주 젊은 시절의 두보의 시는, 뒷장에 서술하겠지만, 현재 전해지지 않고, 지금 전해지는 것은 삼십대의 작품부터이다. 그런데 이때부터 사십대 중반까지, 현종玄宗 황제의 화려한 치세治世에 살면서도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아 장안長安에서 낙백落魄했던 무렵의 시는, 이미 훌륭하여 완성에 가까우면서도 여전히 어딘가 습작의 냄새가 남아 있다. 시인의 눈은 내부보다는 외부를 향하고, 시야를 넓히고, 어휘를 갈고닦기에 바빴다. 그것이 첫 번째 시기이다.
이윽고 마흔네 살 되던 해 겨울, 돌연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터져 영광스러운 시대가 갑자기 암담한 시대로 바뀌고 두보 개인의 운명 또한 격랑에 휘말리면서 시인은 오직 내면의 우수를 노래한다. 적군賊軍에 의한 감금, 그곳에서의 탈출, 생애 최초이자 최후로 맛본 궁정생활, 그런 일들을 숨가쁘게 경험한 뒤 가족과 함께 식량을 찾아 감숙 땅에 이르러(후반생에 점철된 표박漂泊생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우수는 절정에 달한다. 이것이 두 번째 시기이다.
마흔여덟 살의 겨울, 다시 남쪽으로 향하여 사천의 성도成都에 들어가 벗들의 도움으로 그곳에 초당을 짓고,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몇 년을 보낸다. 이때의 시는 평화롭고 원숙하며 자연의 선의善意에 민감하다. 그것이 세 번째 시기이다.
그러나 이윽고 행복한 생활은 깨지고, 양자강을 내려와 사천의 동쪽 끝에 자리한 작은 도시 기주夔州에 자리를 잡는다. 그곳은 험준하기로 이름난 삼협三峽으로, 양쪽 기슭의 절벽에 둘러싸인 양자강이 허연 거품을 일으키며 흐르는 곳이다. 이 비장한 풍경 속에서 두보의 시는 최후의 완성에 도달한다. 우수를 노래하더라도, 그것은 이제 한 개인에 머무르지 않는, 인류의 보편적인 우수를 담은 노래였다. 그리고 770년, 호남湖南의 배 안에서 쉰아홉의 나이로 죽는다. 이것이 네 번째 시기이다.
어느 시기에도 동일한 성실한 인격이 각각의 형태로 분출되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만, 그의 일생에는 같으면서도 다른 이러한 굴곡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내가 전기의 형태를 취한 것은 이 굴곡을 좇아가며 시인의 인생을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pp.50-51

내용의 충족 면에서 획을 그은 천재는 외형의 정비에서도 비약을 가져왔다. 가장 엄격한 운율을 지닌 시형 오언율시, 칠언율시의 완성자 또한 두보였다. 이 면밀한 운율형식을 보유함으로써 중국시의 감정은 비약적으로 세밀해졌다. 요컨대 두보의 시는 그때까지의 시에 대한 혁명이다. 게다가 두보의 역량은 두보 이후의 시도詩道를 규정하여, 이후 천년 동안 모든 시인이 두보의 길을 걷게 할 만큼 강력했다. 두보 이후 당 말기부터 송·원·명·청을 거쳐 최근의 민국 초기의 문학혁명에 이르기까지, 두보는 중국시의 완전한 전형이었다. 이 천몇백 년 동안의 중국 시인들은 모두 두보의 조술자祖述者였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 p.52

요컨대 삼십대 중반부터 사십대 중반까지 10년의 번화한 서울, 벗들에게 기식하던 두보는 도저히 실현될 것 같지 않은 희망을 품고 속을 태우던 불우한 사람이었다. 그 주변을 둘러싼 것은 차가운 공기였고, 차가운 공기에 반발하여 끓어오르는 두보의 정열은 강인한 것이었지만, 정열이 끓어오르면 끓어오를수록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파도뿐이었다. 불평으로 가득한 얼굴로 귀공자가 부른 연회에 참석한 두보, 고관대작의 저택 응접실에서 이제부터 바치려 하는 시문을 품에 안고 꼿꼿하게 주인이 좌석에 나오길 기다리는 두보, 나는 그러한 두보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 p.116

여기서 두보는 벗 이백의 천재로도 열지 못했던 신경지를 개척하게 되었다. 또한 그것은 다만 두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고대시를 근세시로 전환시키는 대전기이기도 했다. 이백과 두보 모두 대시인이다. 그러나 이백은 두보에 비하면, 더 단순하고 덜 혁명적인 시인이다.
장년의 두보는 세계의 본질을 자세히 바라보고 거기서 찾아낸 새로운 것을 종횡으로 노래하려 했고, 그런 그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시형은 칠언가행, 즉 칠언고시였으리라 생각된다. 생각건대 그것은 중국 시형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시형이기 때문이다.
이 자유로운 시형을 통해 두보는 다양한 것을 노래했다. 먼저 노래한 것은 당시의 세상이었다. 천보 시대는 개원 시대와 달리, 세상은 이미 상승의 꼭짓점을 지나 하강의 길을 걷고 있었다는 사실은 앞장에서 설명한 대로이다. 어딘가 모르게 태평의 영속을 위협하는 듯한 사상事象이 쌓여가고 있었다. ‘악을 미워하여 강장을 품은’ 두보가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두보는 이 칠언고시 형태로 그러한 사상 몇 갠가를 노래하고 있다.
출정한 병사의 노고를 노래한 시에는 「병거행兵車行」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부지런히 사방의 오랑캐를 경략經略했던 현종 대에, 농민들은 종종 국경 경비를 위해 징집당했다. ‘병거행’의 ‘행行’은 노래[歌曲]라는 뜻이다. 뒤에 나오는 ‘○○행’ 또한 마찬가지이다. --- p.139

이렇게 자연이나 인사人事의 변화를 좇아 자유로이 노래하려 한 두보는, 때로는 시야를 극도로 좁혀서 단 하나의 사물에 시선을 집중하여 거기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을 노래하는 시형으로도 칠언가행을 사용하고 있다. 말 또는 말을 그린 그림을 읊은 여러 편의 시가 그것이다. 여기서는 「고도호총마행」을 예로 들어본다. ‘고도호高都護’는 고선지高仙芝 장군이니, 당시 안서安西의 도호都護, 즉 서역방면군 총사령관이었다. --- p.166

또한 두보의 칠언가행은 그가 시세계 전체에 일으켰던 혁명을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그때까지는 시문학의 대상이 아니어서 시 이외의 문학이 담당했던 것을 시문학에 도입하여 시의 영역으로 삼은 것이다. 「병거행」, 「여인행」에서처럼 시사時事에 대해 거침없이 지적하는 것은 예전에는 역사의 임무였지 시의 임무는 아니었다는 점은 이미 설명했다. 두보는 그것을 시의 대상으로 끌어안았다. 두보의 시가 ‘시로 쓴 역사[詩史]’라고 불리는 것은 이런 작품 때문이다.…… 고전을 존중하는 동시에 고전을 자신의 새로운 형식으로 되살리는 것, 그것이 두보 문학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이념의 하나였다. --- pp.171~172

좌씨의 별장에서 지은 시만으로 자연과 인사에 대한 두보의 새로운 감각을 충분히 맛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같은 부류의 시를 몇 개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보를 둘러싼 현종의 시대는 벌써 급속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두보와 함께 태평스러운 날의 임천林泉을 잠시나마 더 소요하고 싶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하씨 성을 가진 장군의 별장에 초대받아 지은 연작 오언율시 10수이다. 앞에서 설명했던 좌씨 별장의 시가 감각의 새로움을 보이면서도 여전히 초당풍初唐風으로 대강 넘어가는 부분을 남기고 있는 데에 비해, 이 10수의 시는 더욱 세밀한 감각을 보여준다. 시의 제목은 「정광문을 모시고 하장군의 산림에서 노닐다 10수陪鄭廣文遊何將軍山林十首」이다. --- p.190

이러한 곤란한 조건에서 도보여행이 이어졌다. 모두 저쪽으로 피난하려는 피난민들로, 이쪽으로 돌아오는 이는 없었다. 비와 물, 번개 말고도 여행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또 있었다. 굶주림이었다. 굶주림에 지친 자그마한 딸은 아빠의 손가락을 물어뜯고, 두보는 딸의 울음소리를 들짐승이 듣지 못하게 하려고 품에 안고 달래는데, 딸은 끝내 몸부림치며 울부짖는다. 사내녀석은 사내녀석대로, 먹을 수도 없는 나무 열매를 손가락질하며, 따달라고 조른다. 열흘에 닷새 정도는 천둥을 동반한 비가 내려, 우비가 없는 일행은 음력 7월의 냉기로 오싹한 진흙탕 속을 서로 도와가며 걷느라, 하루 종일 몇 킬로미터밖에 못 간 적도 있다. 밤에는 나무그늘을 침대 삼아 노숙했다.
다만 주가와周家窪라는 곳에서 안면이 있는 사이였던 손재孫宰가 보여준 친절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곳에 도착한 것은 날이 저물녘이었는데, 손재가 일행을 등불 아래로 불러들였다. 금세 발 씻을 물을 데우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부적을 불에 태웠다. 서로의 가족을 등불 아래에서 소개하고, 자고 있던 아이들도 흔들어 깨워 밥을 먹였다. 감격한 나는 손재와 의형제를 맺고, 거실에서 편안히 잠을 잤다. 벌써 그 일이 있은 지 1년, 안녹산 일당의 반란은 아직도 종식되지 않았다. 날아가는 새가 되어 그대 앞으로 날아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필시 그 이듬해에 지었을 추억의 시 「팽아행彭衙行」은 노래하고 있다. 팽아는 백수현의 옛이름이다. --- pp.231~232

명료한 예고는, 예를 들어 천보 14년 11월, 안녹산이 거병하기 며칠 전에 지은 「장안에서 봉선현으로 가는 길에 회포를 읊다 500자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이다. 이때 처음으로 장안 조정의 미관말직을 얻은 시인은 시골에 맡겨두었던 가족을 만나보려고 휴가를 얻어 이 시의 소재가 된 짧은 여행을 하게 되는데, 여행길은 현종 황제가 양귀비와 함께 해마다 추위를 피해 온천욕을 즐기는 여산의 이궁 기슭을 지나게 된다. ‘붉게 칠한 문엔 술과 고기 썩어나는데朱門酒肉臭, 길에는 얼어죽은 뼈가 나뒹구는구나路有凍死骨.’ 이 유명한 구절은 위기를 초래하게 될 사태를 지적하며 그때에 터져나온 것이다. 그리고 500자에 이르는 이 장시는 ‘근심스러운 점은 종남의 산과도 나란하고憂端齊終南, 홍동하여 그칠 수가 없다네「洞不可」’라고 끝맺고 있다.
여산의 이궁 기슭에서 한 지적은 위기가 현실이 되기 직전에 나온 것인 만큼 특히 명료하게 느껴진다. 그보다 조금 앞서 양귀비 일가의 사치를 비판한 「여인행麗人行」, 현종의 확장정책을 비판한 「병거행兵車行」 모두 위기로 치닫는 요소들이 쌓여가는 모습을 명료하게 지적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명료한 지적들은 물론 시인적 직관이 낳은 것이겠지만, 사상가로서의 두보의 이성 또한 거기에 참여하고 있다. 두보는 고대주의古代主義의 사상가로서, 당시의 새로운 이성이었다. 고대 유학의 사상, 특히 그 정치·사회사상에 대한 신뢰는, 어떤 사람들이 경솔하게 예상하는 것처럼 과거의 중국에서 늘 같은 강도로 유지되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두보 직전의 시대, 육조에서 당나라 초기에 걸쳐서는 오히려 등한시되고 있었다. 그것에 대한 관심과 신뢰는 두보의 시대에 이르러 개혁을 바라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새로이 생겨난 것이고, 두보는 그 가운데 유력한 한 사람이었다. ‘임금을 요순의 위에 이르게 하고는致君堯舜上, 다시 풍속을 순후하게 하려 하였답니다再使風俗淳.’ 역시 초기시에 나오는 이 유명한 연이 ‘다시’라는 말에서 보여주듯, 고대의 현인 정치의 재현이라는 새로운 척도를 가지고 속류 정치를 비판한 것이다. ‘붉게 칠한 문엔 술과 고기 썩어나는데, 길에는 얼어죽은 뼈가 나뒹구는구나.’ 그 연의 배후에도 맹자의 말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을 식량을 먹는데도 단속할 줄을 모르고, 길에 굶어죽은 시체가 나뒹구는데도 창고를 열어 구제해줄 줄을 모른다’는 것이 척도로서 작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성적 점검으로 옮겨가기 전에, 두보에게는 우선, 그러한 이성적 점검을 촉구하고 강화하는 것으로서, 시세時世의 장래에 대한 망막茫漠한 불안, 망막하기 때문에 더욱 불안한 감정이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시인으로서 그가 지닌 독특한 점이고, 120수의 시 도처에 은근히 드러나 있다. 특히 대자은사의 높은 탑에서 장안 시가를 내려다보고 지은 오언고시는 그 대표작일 것이다. 천보 몇 년, 안녹산의 난까지는 아직 몇 년의 여유가 있을 무렵의 작품이다. --- pp.242~243

두보가 시인의 양심으로서 임무로 삼은 것은 광범위하게 사람들을 덮쳐오는 불행을, 널리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사람들을 대신해서 노래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자기가 겪고 있는 슬픔과 분노를 묻어버리지 않는 것이 또한 두보의 태도였다. 오히려 자기의 불행에 대한 분노를 언제나 광범한 공공의 분노의 기초로서 주장한다. 이 시(「여러 공들과 함께 자은사탑에 오르다同諸公登慈恩寺塔」)의 결구도 예외는 아니다. --- pp.251~252

(「어린 자식을 생각하다憶幼子」의) 하구, ‘사립문에 늙은 나무가 서 있는 마을柴門老樹村’은 만약 아직까지 건재하다면 기자가 엄마, 형, 누나와 함께 있을 부주의 시골집을 생각한 것이리라. 간혹 상구 ‘간수공산도澗水空山道’도 그런 식으로 읽는 설이 있지만,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상하구가 단순한 되풀이가 되기 때문이다. 억거수지수憶渠愁只睡, 자배부청헌炙背俯晴軒. 앞 시와 마찬가지로 ‘거渠’라는 인칭대명사를 쓰고 있다. ‘그 녀석, 그놈’ 정도의 어감인, 거칠기 때문에 친밀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담긴 3인칭이 아닐까, 많은 증거를 준비하지 않았지만, 나는 생각한다. 그 녀석 생각이 자꾸 나네, 눈부시게 봄 햇살이 비치는 베란다, 배를 대고 엎드려, 등에 햇볕을 쬔다. 나는 이 연을 아주 좋아한다.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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