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꽃지랄 내 인생 _ 하루만이라도 다시 아부지와
아부지는 막내딸인 나한테만은 옥이야 금이야 끔찍하셨다. 어느 가을, 고구마 수십 가마니를 캐 팔아서 번 돈을 쌈지에 둘둘 말아 막내딸 허리춤에 채우고는 군산 시내 양장점 거리로 데려가셨다. 아부지가 ‘뺑그르르 돌믄 팍 양산처럼 퍼지는 후랴스커트플레어스커트’를 해달라고 하자 그 계집애들은 원단이 더 들어가니 돈을 더 내라고 했다. 나는 양장점을 나와 징징대며 졸랐다.
“그 언니들이 아부질 그지[거지]로 취급혔는디……. 천 자르기 전에 돈 돌려받고 딴 집으로 가유.”
아부지는 나를 등에 업고 달래셨다.
“딴 집 가도 마찬가지여. 아버지 실수여. 교회 가는 옷을 입어야 허는디. 이러고 딴 집 들어가 보까? 또 동전 줄 틴디.”
초등학교 입학해서 비가 많이 오면 학교 앞에 리어카에 우산을 꽂아 두고 기다리셨다. 한글을 다 깨치고 입학한 애는 나 하나였고, 또래들이 ‘가갸거겨’ 배울 때 나는 아부지가 푸대로 사 온 책 중에 「님의 침묵」을 읽었다. 내가 “아부지, 너무 어려워유. 내 나이에 맞는 책을 사줘유” 하면, 아부지는 “선구자는 앞서 가는겨” 하셨다. 옆에 계시던 엄니는 “저 썩을 년, 시금치 몇 푸대를 팔아 갖고 새 책 살라믄 한두 갠디 지랄허고 자빠졌네” 하셨다. --- 본문 중에서
2부 | 힘들면 연락해! _ 곁에 있으면 행복한 사람 _ 김혜자
천신만고 끝에 병세가 나아져서 다시 재기할 무렵,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달라져있었다. 모든 가족이 손을 놓고 틈만 나면 죽을 생각뿐인 나에게만 매달렸던 터라 금전적인 문제도 심각했다. 어느 날 언니가 “너 왜 나한테는 얘기 안 하니? 추접스럽게 몇 백만 원씩 꾸지 말고, 필요한 액수가 얼마나 되니?” 하셨다. 언니는 화장품 케이스에서 통장을 꺼내시며 “이게 내 전 재산이야. 나는 돈 쓸 일 없어. 다음 달에 아프리카에 가려고 했는데,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다 찾아서 해결해. 그리고 갚지 마. 혹시 돈이 넘쳐 나면 그때 주든가” 하셨다. 언니와 나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는 그렇게 못한다. 사업을 수십 년 해왔던 남편은 어디서 일 억도 구해오지 못했고, 몇 백 억 자산가인 시누이도 모른 체 했었다.
얼마 전, 언니가 아프리카에 가신다고 하기에 나는 언니가 혹시 납치되면 내가 가서 포로 교환하자고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당시 외국에서 한국인 선교사들의 납치 사건이 있었다). 만약 정말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나는 무조건 간다. 꼭 가고야 만다. 언니가 살아야 단 돈 천 원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아이들 수 천 명도 산다. 나는 언니 통장에서 뺀 돈으로 빚 갚다가 조금 남는 돈으로 샤넬 핸드백을 산 미친년이다.
‘행복한 자와 불행한 자를 식별하라. 행복한 자를 곁에 두고 불행한 자를 멀리하라. 불행은 대개 어리석음의 대가이고 그에 가담하는 사람에겐 거세게 전염되는 질병이다. 아무리 작은 재앙에도 문을 열어 두어선 안 된다.’
일기를 쓰는 버릇처럼 늘 마음 한 구석에 두고 곱씹어 보는 글이다. 이 글을 떠올릴 때마다 내 곁에 언니가 있다는 것이 참 위안이 되고 든든하다.
‘주님, 언니를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니는 주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분이라 믿습니다. 이 죄인도 언니처럼 살게 해주세요.’ --- 본문 중에서
3부 | 친구는 나의 힘 _ 내 ‘꼬붕’ 이효재
십오 년 전 KBS 「젊은이의 양지」라는 주말 드라마에서 내 역할이 이종원의 엄마로 강원도 탄광 근처 다방의 마담이었다. 드라마 상 시대도 20여 년 전이었다. 물론 방송국에서 의상을 준비해 주지만 뭔가 색다르게 입고 싶었다. 수소문 끝에 내 입맛에 딱 맞는 한복 디자이너가 있다고 누가 소개시켜 줬다. 대본을 보내 주며 한번 해보라고 했다. 나는 의상을 받고 세 번 놀랐다. 흔히 한복 박스에 넣어 보내는데, 분홍 보자기로 요살을 부려 장미꽃을 귀퉁이에 달아서 보냈다. 너무 예뻐 풀기 아깝지만, 한참 노려보며 웃다가 풀어 보니 세상에나! 바로 이럴 때 ‘안성맞춤’이란 말을 쓰는 것 같았다. 색상이며 마담이 입을 만한 디자인이며, 의상을 보는 순간 아마 연기는 저절로 되지 싶었다. 그리고 연보라색 갑사천으로 만들어 녹두알만 한 꽃을 단 봉투에 편지가 들어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봉투 속에서 편지를 꺼내니 마치 내가 여왕이고 신하에게 편지를 받은 기분이었다.
선생님!
치마 말기를 달면서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선생님의 책 《그리운 것은 말하지 않겠다》를 10년 전에 읽은 후 제 두 번째 소원이 선생님을 뵙는 거였는데……. 혼수예단 보낼 때 신부에게 그 책을 꼭 같이 보내고 있습니다. 살면서 만나야 할 사람은 빌며 기원하면 꼭 만나게 되나 봅니다.
겨자색 저고리와 쥐색 치마는 머리채 뜯고 캽우실 때 찢어지기 쉬운 천으로 만들었습니다. 상대 연기자에게 NG 안 나게 한 번에 북북 찢으라고 하세요. 설레는 마음으로 방송을 보겠습니다.
이효재 올림
남자가 여자를 보고 ‘뻑 갔다’라는 말을 쓰는데, 나는 정말로 ‘뿅 갔다.’ 얼마나 엽엽한지, NG 날 걸 대비해 저고리 하나를 더 보냈다. 서울시내에 사는 여자가 아니라 옛날 어느 소국에 사는 선녀 같았다. 드라마는 물론 이종원, 배용준 같은 주연배우들 때문에 시청률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아직도 내 팬 중에 드라마 속 한복이 찢기도록 싸우던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그 장면은 정말로 의상의 힘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인연이 됐다. --- 본문 중에서
4부 | 달콤 쌉싸름한 잔소리 _ 결혼을 안 하겠다고?
나는 결혼생활 35년차인데, 남편에게 양말을 벗어서 침대 밑에 던지지 말고 목욕탕에 놓으라는 잔소리를 30년 동안이나 하다가 그만두었다. 청소할 때마다 총채로 끄집어내고 잔소리를 하고, 어느 날은 질기게 싸우기도 하고…….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냥 포기해 버렸다. 들고 가기 힘들어서 먹어 버린 격이다.
어떤 힘이 작용한다는 것은 정반대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사가 심할수록 물은 시끄럽게 흐른다. 남자를, 남편을 내 성격, 내 정서, 내 입맛에만 맞추려 하지 말아야 한다. 흑백을 가리고 응징하려고만 든다면 가정은 피고가 없는 재판과 같이 되어 버린다.
남자가 어떤 면에선 여리고 소심하다. 간도 작아서,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때론 어린아이 같다. 결혼을 생각하는 여성들이여! 남자가 연하든 동갑이든 연상이든, ‘너는 지금부터 내 아들이다’라는 생각을 미리 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나는 삼십여 년을 싸우다 지쳐 포기하고 살아 봤더니, 요즘은 딴 남자하고 사는 것 같다. 진작 신혼 때 이럴 걸 싶다. 사랑, 열정 같은 것들은 이미 오래전에 꺼져 버렸다. 지금은 친구처럼 남매처럼 살고 있다. 자식도 머리가 커지니 조심스러운데,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사람이 됐다.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 연애할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얼음 딛듯 신중하게 해야 한다. 사업을 하듯 주판을 굴려서 계산이 얼추 맞아 떨어지는 결혼을 생각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예식장을 수련원으로, 결혼식을 입소식으로 생각하시길 바란다. 큰 것을 받아들이려면 큰 문을 열어놔야 한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