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道德經)』을 표제가 은유하고 있는 함의에 맞춤하게 읽기 위해서는 『사랑의 파문 : 노자 · 아나키 · 꼬뮌』(삶창, 2016)을 짝패로 독서해야 함을 권하고 싶다. 노자 주석을 위한 기획에서 에로스는 동시대와 세계를 해석하는 주제어로서 새로운 세기, 그러니까 분단체제 이후, 통일이행기를 관찰하고 응시하는 생명선이다. 그 생명의 흐름을 통해 우리는 거의 병영국가체제로 굳어져 가고 있는 듯한 현 단계 남·북의 정치적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노자의 정치적 사유와 응시를 오늘의 분단 체제에 이입하는 과정은 그러므로 조금 더 비정치적으로 정치적인, 언어의 이중구속적 자질을 요구한다. 데리다가 『그라마톨로지』에서 ‘차연’이라고 말한 그 언어, 들뢰즈가 ‘철학은 개념을 창안하고 만들어내는 예술’이라고 언명했을 때의 그 예술의 언어를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 노자 주석의 두 주제어가 에로스와 국가인 이유이다.
---「일러두기」 중에서
정치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할 때,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공동체적 해체와 사회 균열이 극심한 사회, 종교적, 이념적, 언어적, 문화적, 윤리적으로 다기하게 분열된 사회 구조에 적절한 탄력성을 지니고 있는 정치적 프레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협의체 민주주의에서 정치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자율적 개인이 집합적 형태로 조직된 집단(혹은 집합지성)이며, 그래서 한국적 전통의 두레나 향약, 서구적 꼬뮌과 유사한 형태를 상정해볼 수도 있다. 이 모델의 더 중요한 미래적 비전은 시장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지양하고 공동체적 구성원에게 공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삶의 가치를 승자와 패자를 넘어서는 공공선으로부터 찾으려는 상호부조의 정치 지향에 있다. 이 정치적 실험과 접목이 민중의 문화적 삶을 위한 마을 재구축 과정에 유효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제3장 무위의 정치적 거버넌스」중에서
지구도 지구 안의 다른 유기체가 그러한 것처럼 스스로 생명 활동을 한다. 그 생명 활동은 인간의 욕망으로 축적된 물적, 내면적 기제들을 평형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과정으로 압축된다. 말하자면 지구 안에 품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 활동을 다양하게 전개함으로써, 지구와 지구 안의 생명체들과의 관계성을 역동적으로 구현해나간다는 의미다. ‘대지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가이아의 생명 활동은 도의 무위적 특징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그 절정에 생명을 포태한 여성성이 있다. 노자나 플라톤에게서나 생명의 뿌리는 여성성으로 특징된다. 정치의 구조를 바꾸는 작업에서 여성성의(여성이 아니라) 회복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 있다.
---「제7장 가이아 가설(Gaia theory)」중에서
노자는 근대적 제도와 일상에서 밀려난 잉여와 주변적인 것에 무한 애정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우리는 그것을 단순하게 이성(남성)중심주의와 반인간주의에 대한 대안의 사유라고 불러도 좋다. 직선, 힘, 밝음, 효율, 소유욕, 합리성 등으로 웅변되는 근대적 삶과 사회가 지배해온 이데올로기는 국가와 자본으로 압축된다. 전자가 지닌 폭력성과 획일은 후자와의 결합을 통해 개별적 실존의 착취를 통한 억압의 시스템으로 환원된다. 자본의 폭력이 최종심급에서 한 인간에게 가하는 것은 그러므로 자발적 착취를 통한 내면의 분열이다. 분열된 인간은 결국 ‘소진된 인간’(들뢰즈)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통찰이 필요한데, 우리가 노자적 사유를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위한 모티브로 수용하게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제22장 근대적 사유 혹은 남성성의 이면」중에서
분명한 것은 이 언술이 정치 혐오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향한, 정치의 혁명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 혁명은 정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과 관계한다. 거짓 전문인의 정치로부터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정치를 찾아오는 일에서 출발하여 내 안의 그것으로, 우리의 그것으로, 마침내 생명의 지속을 위한 생활정치, 협업의 정치, 연대의 정치, 분업의 정치, 정치의 아마추어화, 제비뽑기의 정치, 놀이의 정치, 공장의 정치, 여행의 정치, 마을 정치, 과정의 정치로.
---「제53장 정치의 부재로부터 다른 정치로」중에서
정치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것은 생물과 같아서 살아 움직이며, 그러므로 벡터적 에너지를 내재하고 끝없이 진화한다. 그 정치에 대한 깊은 응시가 없으면 괴질과 역병이 돌고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도탄에 빠진 민중이 살길은 일단 도주하고, 훔치며, 마침내 다른 국가를 꿈꾸는 것이다. 그 꿈꾸는 국가의 기초가 되는 것은 생명이며 그 생명의 전제가 사랑이다. 그렇다는 점에서 노자의 에로스는 대긍정의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그 잉태를 언어로 수식하기 어려운 것은 그 언어가 시적 그것이기 때문이다.
---「제81장 에필로그-시적 언어와 정치적 언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