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대9
삶과 죽음11 거리에서13 공상15 꿈은 깨어지고16 남쪽 하늘18 조개껍질―바닷물 소리 듣고 싶어19 병아리20 창구멍21 기왓장 내외22 비둘기23 이별24 모란봉에서25 황혼26 종달새27 닭28 산상(山上)30 오후의 구장(球場)32 이런 날34 양지쪽35 산림36 곡간(谷間)38 빨래40 빗자루41 해비43 비행기45 굴뚝46 편지47 버선본48 겨울50 황혼이 바다가 되어51 거짓부리53 둘 다55 반딧불56 만돌이57 달밤59 풍경60 한난계62 그 여자64 소낙비65 비애67 비로봉68 바다70 창72 유언74 새로운 길75 비오는 밤76 사랑의 전당77 이적(異蹟)79 아우의 인상화(印象畵)81 코스모스82 슬픈 족속83 고추밭84 해바라기 얼굴85 애기의 새벽86 장미 병들어87 투르게네프의 언덕89 산골 물91 자화상92 소년94 위로95 팔복(八福)―마태복음 5장 3~1296 병원97 간판 없는 거리98 무서운 시간100 눈 오는 지도101 새벽이 올 때까지103 십자가104 눈 감고 간다106 태초의 아침107 또 태초의 아침108 돌아와 보는 밤110 바람이 불어111 또 다른 고향113 길115 별 헤는 밤117 서시121 간122 참회록124 흰 그림자126 흐르는 거리128 사랑스런 추억130 쉽게 씌어진 시132 봄135 창공136 참새138 아침139 장140 야행141 어머니143 |
저윤동주
관심작가 알림신청尹東柱
윤동주의 다른 상품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제목이 [병원]으로 붙일까 했던 사연:
윤동주는 1941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하려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두고 그동안 써왔던 시 19편을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자필 시고집 세 부를 만들어 한 부는 자신이 갖고, 한 부는 연희전문의 영문과 교수인 이양하에게, 또 한 부는 후배 정병욱에게 전달했다. 현재 그 유일한 원고는 정병욱에 의해 보관되어 전해졌다.정병욱 선생의 말을 빌자면 다음과 같다. 별 헤는 밤을 완성한 다음 동주는 자선 시집을 만들어 졸업기념으로 출판을 계획했다. 서시까지 붙여서 친필로 쓴 원고를 손수 제본한 다음 그 한 부를 나에게 주면서 시집의 제목이 길어진 이유를 서시를 보이면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서시가 완성되기 전) 처음에는 시집 이름을 병원으로 붙일까 했다면서 표지에 연필로 '병원'이라고 써넣어 주었다. 그 이유는 지금 세상은 온통 환자투성이기 때문이라 했다. 그리고 병원이란 앓는 사람을 고치는 곳이기 때문에 혹시 앓는 사람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느냐고 겸손하게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잊지 못할 윤동주의 일들, [나라사랑] 23집, 외솔회, 1976) **이 시고를 받아 읽은 이양하 역시 윤동주에게 출판을 보류하길 권한다. 십자가, 슬픈 족속, 또 다른 고향 등 몇 편의 시가 일제의 검열을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며, 일본 유학을 앞둔 윤동주의 신변에도 적지 않은 위험이 따를 것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이양하의 권유를 받아들여 당시에는 출판하지 않지만, 졸업 직후 용정으로 돌아와서도 아버지와 출판 문제를 의논하는 등 시집 출판에 미련을 버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윤동주는 결국 생전에 시집 출판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그 뒤 윤동주와 이양하가 갖고 있던 시집은 행방을 알 길이 없다.정병욱에게 전해진 시집은 정병욱의 어머니가 명주 보자기에 싸서 장롱 속 깊이 감춰둔 덕분에 해방 뒤 1948년 1월 30일 세상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