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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하늘과바람과별과시(큰글한국문학선집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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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글로벌콘텐츠 201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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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초한대9
삶과 죽음11
거리에서13
공상15
꿈은 깨어지고16
남쪽 하늘18
조개껍질―바닷물 소리 듣고 싶어19
병아리20
창구멍21
기왓장 내외22
비둘기23
이별24
모란봉에서25
황혼26
종달새27
닭28
산상(山上)30
오후의 구장(球場)32
이런 날34
양지쪽35
산림36
곡간(谷間)38
빨래40
빗자루41
해비43
비행기45
굴뚝46
편지47
버선본48
겨울50
황혼이 바다가 되어51
거짓부리53
둘 다55
반딧불56
만돌이57
달밤59
풍경60
한난계62
그 여자64
소낙비65
비애67
비로봉68
바다70
창72
유언74
새로운 길75
비오는 밤76
사랑의 전당77
이적(異蹟)79
아우의 인상화(印象畵)81
코스모스82
슬픈 족속83
고추밭84
해바라기 얼굴85
애기의 새벽86
장미 병들어87
투르게네프의 언덕89
산골 물91
자화상92
소년94
위로95
팔복(八福)―마태복음 5장 3~1296
병원97
간판 없는 거리98
무서운 시간100
눈 오는 지도101
새벽이 올 때까지103
십자가104
눈 감고 간다106
태초의 아침107
또 태초의 아침108
돌아와 보는 밤110
바람이 불어111
또 다른 고향113
길115
별 헤는 밤117
서시121
간122
참회록124
흰 그림자126
흐르는 거리128
사랑스런 추억130
쉽게 씌어진 시132
봄135
창공136
참새138
아침139
장140
야행141
어머니143

저자 소개1

尹東柱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발표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만주 용정과 경성 신촌 일대에서 문학청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시를 썼기에 청춘의 고뇌가 담겨 있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1년(15세)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16세)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썼고 이는 오늘 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했다.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를, 1937년 [카톨릭 소년]에 동시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했다. 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1939년 조선일보에 「유언」, 「아우의 인상화」, [소년(少年)]지에 「산울림」을 발표하였다. 처음 윤동주 시들은 노트에 봉인된 채, 인쇄되지도 않았고 신문 지면에 발표되지 않았다. 그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지고 난 후 동문들이 그의 노트에 있던 시를 모아 정음사에서 출판한다. 유해가 안치된 지 3년 후, 그러니까 1948년,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어 혼란한 시기에 청춘 시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만주 북간도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를 발표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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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2월 08일
이용안내
  •  배송 없이 구매 후 바로 읽기
  •  이용기간 제한없음
  •  TTS 불가능
  •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인쇄 기능 제공 안함
지원기기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PC(Mac)
파일/용량
PDF(DRM) | 1.97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55쪽 ?
ISBN13
9791158520182
KC인증

출판사 리뷰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제목이 [병원]으로 붙일까 했던 사연:
윤동주는 1941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하려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두고 그동안 써왔던 시 19편을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자필 시고집 세 부를 만들어 한 부는 자신이 갖고, 한 부는 연희전문의 영문과 교수인 이양하에게, 또 한 부는 후배 정병욱에게 전달했다. 현재 그 유일한 원고는 정병욱에 의해 보관되어 전해졌다.정병욱 선생의 말을 빌자면 다음과 같다.

별 헤는 밤을 완성한 다음 동주는 자선 시집을 만들어 졸업기념으로 출판을 계획했다.
서시까지 붙여서 친필로 쓴 원고를 손수 제본한 다음 그 한 부를 나에게 주면서 시집의 제목이 길어진 이유를 서시를 보이면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서시가 완성되기 전) 처음에는 시집 이름을 병원으로 붙일까 했다면서 표지에 연필로 '병원'이라고 써넣어 주었다.
그 이유는 지금 세상은 온통 환자투성이기 때문이라 했다.
그리고 병원이란 앓는 사람을 고치는 곳이기 때문에 혹시 앓는 사람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느냐고 겸손하게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잊지 못할 윤동주의 일들, [나라사랑] 23집, 외솔회, 1976)

**이 시고를 받아 읽은 이양하 역시 윤동주에게 출판을 보류하길 권한다. 십자가, 슬픈 족속, 또 다른 고향 등 몇 편의 시가 일제의 검열을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며, 일본 유학을 앞둔 윤동주의 신변에도 적지 않은 위험이 따를 것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이양하의 권유를 받아들여 당시에는 출판하지 않지만, 졸업 직후 용정으로 돌아와서도 아버지와 출판 문제를 의논하는 등 시집 출판에 미련을 버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윤동주는 결국 생전에 시집 출판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그 뒤 윤동주와 이양하가 갖고 있던 시집은 행방을 알 길이 없다.정병욱에게 전해진 시집은 정병욱의 어머니가 명주 보자기에 싸서 장롱 속 깊이 감춰둔 덕분에 해방 뒤 1948년 1월 30일 세상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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