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다른 세상에 선 듯하다. 전쟁이나 혁명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그저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된 추문이 사실로 확인된 것인데, 며칠 사이에 딴 세상이 되었다. 모든 권위는 궁극적으로 도덕적 권위라는 얘기를 절감하게 된다.
이제 실질적 궐위기(闕位期) 다. 대통령은 바뀌지 않았는데 도덕적 권위를 잃어 궐위 상태가 된 것이다. 절차에 따라 선출되어 완벽한 도덕적 권위를 확보한 대통령이 그것을 잃은 과정을 살피는 것은 그래서 진단과 처방의 첫걸음이다.--- p.32
중국은 왜 그렇게 ‘시비를 위한 시비’를 거는 것일까? 이 심각한 물음에 대한 답을 제대로 얻으려면, 우리는 중국이 아직도 공산주의자들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중국 공산당은 국공내전(國共內戰)을 치를 때와 한국전쟁에서 국제연합군과 싸울 때 지녔던 정체성과 본질적으로 같은 정체성을 지녔다. 이 점을 놓치면, 우리는 중국의 정체성도 행태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중국이 THAAD 배치에 거세게 반대하면서 한국을 압박할 때 중국측에 붙어서 한국 정부와 미군을 비난한 한국인 퀴즐링(Quisling)들이 그렇게도 많았던 데엔, 물론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작용했지만, 그들이 중국 공산당 정권에 대해 잘 몰랐다는 사정도 분명히 작용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당연히, 그들은 외교와 협상에서 자유주의자들과 판이한 행태를 보인다. --- p.100
이제 공산주의, 파시즘, 그리고 나치즘으로 불리던 전체주의 체제는 거의 다 사라졌다. 그러나 그런 체제를 가능하게 했던 대중의 득세는 오히려 강화된다. 대중은 20세기에 갑자기 나타난 존재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마음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같다는 것에서 안정과 만족을 얻는다. 대중은 자신들이 평범하다는 것을 알 뿐 아니라 그런 평범을 자랑스럽게 여겨 사회 전체에 강요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대중에게 그렇게 강요할 힘을 준다. 이제 대중의 취향과 뜻을 거스르는 의견은, 아무리 합리적이고 정의롭더라도, 나오기 어렵고 박해 받는다. 그렇게 대중이 득세한 사회에선 너그러움이 줄어들고 갖가지 소수들은 박해를 받는다.
반어적으로, 이런 대중의 득세는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위협한다. 개인은 궁극적 소수다. 그래서 대중의 뜻이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도덕이나 법 위에 자리잡으면, 누구의 자유도 확고하게 보장될 수 없다. 조지 오웰이 경고한대로 대로, 여론에 의한 지배보다 더 압제적인 정치는 없다. 그것은 어떤 압제적인 법이나 폭군의 지배보다 압제적이다. 대중의 뜻이나 취향을 거스르는 말 한 마디로 한 사람의 삶이 문득 부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날마다 만난다.--- p.128
모두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얘기다. 교훈을 얻는 것은 중요하고 교훈은 과거의 경험에서 얻을 수밖에 없는데, 과거의 경험을 다루는 학문이 바로 역사학이다.
그러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그런 실용적 차원보다 훨씬 근본적인 수준에서 중요하다. 폴란드 역사학자 레스제크 콜라코프스키의 말대로, “우리는 처신이나 성공의 방법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역사를 배운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p.212
초강대국이 된 뒤 중국은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 질서의 모습을 밝히지 않았다. 실은 나라가 커지면 책임도 커진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한 세기 전 일본이 한문문명을 수호할 기회를 놓쳤듯이, 지금 중국은 인류 문명의 진화에 기여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높은 도덕 수준이 떠받쳐야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제 이웃들이 중국에게 도덕적 행동을 요구해야 한다. 도덕심은 사람의 천성이므로, 도덕을 강조하는 것은 어느 경우에나 현명하고 현실적인 방책이다. 모두 힘과 전략을 얘기하지만, 중국이 도덕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모래성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의 근본은 도덕이다. 국제 사회라고 다르지 않다. --- p.268
실제 전쟁은 전세가 기울면 끝난다. 역사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두고두고 나라들과 민족들 사이의 관계를 독성으로 만든다.
1894년 5월 일본군 4천명이 제물포에 상륙했다. 조선의 요청이 없었는데도, 내란이 일어난 조선에서 거류민을 보호한다며 일본이 일방적으로 파병한 것이다. 이 출병이 청일전쟁, 러일전쟁, 조선 합병, 만주사변, 중일전쟁으로 이어져 끝내 태평양 전쟁을 불렀다. 당시 일본군을 지휘한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 소장의 외증손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다.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총리가 전범으로 수감되었다는 사실과 외증조부가 첫 해외 출병을 지휘했다는 사실을 아베 총리가 무겁게 받아들이고 옳은 교훈을 얻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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