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사회적경제의 개념과 의미
김희송,홍성흡
1-1 서론
사회적경제(social economy)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부각되고 있는 학술적ㆍ실천적 개념 중 하나이다. 우리는 ‘사회적기업, 사회적기업가, 협동조합, 자활공동체, 커뮤니티비즈니스, 호혜의 경제’ 등 사회적경제와 연관된 수많은 단어와 관련 기사들을 언론보도를 통해 거의 매일 접하고 있다. 일부 보수단체의 반대와 국회 일정상의 문제로 법률제정까지 다다르지는 못했지만 사회적경제 지원을 명문화한 ‘사회적경제기본법’이 여야 합의로 마련된 것은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이 결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최근 1∼2년 사이에 사회적경제 연구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김희송, 2016)에서도 사회적경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매우 크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은 비단 한국적 현상만은 아니다. 애초 사회적경제를 시작하였던 유럽에서는 경제위기에 처한 국가가 경제위기의 타개책으로 사회적경제에 관심을 기울였다(주성수, 2010). 사회적경제는 2차 대전 이후의 침잠기를 거쳐 1989년 마침내 유럽에서 정부들의 협의를 통해 공식적인 용어로 인정받았으며 2002년에는 ‘사회적경제 유럽헌장’이 발표되기도 했다(장원봉, 2007). 특히 프랑스의 올랑드 정부는 사회적경제를 정부차원에서 뒷받침하기 위해 경제재정부에서 ‘사회경제(ESS)법안’을 제안하였으며, 상원에서는 협동조합 발전을 위한 6대 정책을 제안하는 등 사회적경제의 제도적 뒷받침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김현희, 2013).
이처럼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과 지원정책에 대한 모색이 가시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의 사회적경제에 대한 인식은 단절적이고 파편적이며 심지어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사회적경제의 역할과 관련하여, 사회적경제가 사회문제에 대한 부분적 해법 내지 보완의 수준을 넘어서 자본주의 체질을 바꾸는 거시적 역할을 기대하는 낙관적 입장(신명호, 2014)이 있는 반면에 사회적경제가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와 다름없다는 이데올로기적 비판(한국경제신문, 2015.6.14.)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적경제의 개념이 다양한 역사적 경험과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는 적응적 개념(adaptive concept)이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사회적경제에 대한 인식은 단절적이고 파편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곧 우리 사회의 사회적경제에 대한 높은 관심에 비해 사회적 이해와 합의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 장에서는 높은 사회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단절적이고 파편적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종합적 이해와 개념화를 도모하기 위해 사회적경제의 기원과 개념의 역사를 고찰해 보겠다. 사회적경제의 개념화는 사회적경제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사회적경제 개념의 형성과 역사적 변용을 파악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사회적경제의 기원과 개념의 역사에 대한 파악을 통해 한국에서는 사회적경제의 개념이 독자적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인지 아니면 국가나 시장 등의 개념에 대한 대응의 개념으로 사용되는지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사회의 층위를 정치ㆍ행정체계(국가)―경제체계(시장체계)―시민사회로 구분하는데(Cohen and Arato, 1992), 사회적경제가 어느 영역에 위치하면서 어떠한 위상과 역할을 갖고 있는지, 어떤 관점과 입장에서 사용되고 있는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1-2 사회적경제의 기원과 개념의 역사
이 장에서 사회적경제 개념의 역사를 살펴본다는 것은 사회적경제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적경제 담론의 역사를 파악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사회적경제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사회적경제 현장에 대한 연구라면 사회적경제 개념의 역사에 대한 고찰은 사회적경제 개념의 지배적 이해방식을 고찰하는 것으로서 사회적경제 개념의 형성과 변용과정을 파악하는 개념화의 과정이다.
그런데 사회적경제라는 개념이 각각의 국가적 상황과 지역적 상황에 따라, 즉 정치적ㆍ경제적ㆍ역사적ㆍ사회적ㆍ문화적ㆍ생태적 그리고 제도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적응적’ 개념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전세계 사회과학계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던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개념화를 다양한 역사적 경험과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는 적응적 개념의 전형적인 사례로 접근했던 것처럼(조효제, 2003), 사회적경제의 개념화도 적응적 개념의 사례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이 장에서는 유럽에서의 사회적경제 개념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살펴보면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
1. 사회적경제의 역사적 기원: 21세기의 새로운 발명품?
운동으로서의 사회적경제는 그것의 중추를 이루었던 대중적인 단체와 협동조합에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중적인 단체들의 운영원리와 가치체계는 역사적인 협동조합운동에 반영되었고, 지금의 사회적경제 개념을 형성해 왔으며, 세 개의 큰 조직집단―협동조합, 공제조합, 협회(민간단체)―에 기초를 두고 체계화되었다. 실제로는 이러한 조직집단의 역사적 뿌리는 18세기와 19세기의 산업사회의 개발에 의해 초래된 생존의 조건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영국에서는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가혹한 생활조건 속에 놓여 있던 산업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극복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협동조합이라는 실험의 첫 발을 내딛었다. William Thompson, George Mudie, William King, Thomas Hodgskin, John Gray, John Francis Bray와 같은 반자본주의자들에 의해 시도되었던 협동조합운동에 Robert Owen과 Ricardian에 의해 개발된 사회주의적 발상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824년부터 1835년까지 이러한 운동과 무역조합 사이에 밀접한 관계(노동자운동의 표현과 같은 목적 갖기-노동자 계급의 해방)가 확립되었다. 8개의 협동조합 회의가 1831년과 1835년 사이에 영국에서 열렸고, 협동조합과 무역조합운동을 조정했으며, 실제로 이 회의에서 전국노동조합대연합이 만들어져 영국의 모든 무역조합을 통합했다.
William King은 영국에서 협동조합운동의 출범에 직접적이고 결정적으로 개입했으며, 1844년 잉글랜드 로치데일에서 28명의 노동자에 의해 설립된 유명한 협동조합에 영향을 끼쳤다. 로치데일 개척자들의 노동을 관리한 유명한 협동조합 원리는 모든 종류의 협동조합에 적용되었고, 그 협동조합 원리에 의해 1895년 런던에서 국제협동조합동맹이 창설되었으며, 그 원리는 사회적경제의 근대적 개념의 개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왔다.
1995년 맨체스터에서 열린 ICA(국제협동조합연맹) 회의에 의하면, 조합의 의사결정이 협동조합 구성원들의 다수결로 결정되고, 투자자 혹은 자본가들이 다수를 점할 수 없으며, 잉여는 자본의 어떤 비례성의 기준으로도 배분되지 않는다는 원칙들은 협동조합이 민주적인 조직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대부분의 경우에 동등한 투표권을 인정하고, 이용 구성원에게 가입과 창설을 강요하는 자본의 분배는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며, 저축은 분배될 수 없다는 것은 심지어 조직이 해산된다고 해도 협동조합이 다른 회사들과는 그 기본적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처럼 로치데일로부터 기인한 협동조합의 원리는 이후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서 이루어진 자본주의 폐해에 대한 대안운동들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유럽 대륙에서 형성된 노동자연합주의는 상호부조주의자와 협동조합의 주도 하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독일에서 협동조합주의는 상조회와 함께 도시와 지방 모두에서 급격히 확산되어 나갔다. 독일에서 산업노동자조합운동의 이념은 Ludwig Gall, Friedrich Harkort, Stephan Born에 의해 19세기 중반 널리 보급되었다. 독일에서 직공과 방적공 그룹이 조직한 최초의 협동조합의 핵심 조직 원리였던 협동조합주의는 도시지역에서는 Victor-Aime Huber와 Schulze-Delitzsch의 노력을 통해, 지방에서는 대출자금클럽 소비자신용조합을 만들고 확산시킨 Friedrich Wilhelm Raiffeisen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러한 협동조합 중 첫 협동조합이 1862년 Anhausen에 설립되었다. 그리고 독일에서 협동조합운동이 급격하게 성장하였던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1877년 Raiffeisen 유형의 지방 협동조합의 독일연합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동시에 노동자 상조회와 농촌의 상호부조론은 독일 사회에서 제도로 조직되었고, 1876년 제국의 법률에 의해 제도화되었다.
스페인에서는 대중 연합주의, 상호주의, 협동조합주의 등이 확산되면서 강력한 연합조직체가 만들어졌다. 1840년 스페인에서 설립된 최초의 노동조합인 직물공(방직공)연합(협회)은 동시에 상호공제조합연합체였다. 이 연합체는 1842년 Compania Fabril de Tejedores(이른바 직물공 회사)를 만들었다. 이것이 스페인 최초의 협동조합이었고, “노동자생산협회(workers’ production society)와 상조회”가 혼합된 특성을 띠고 있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탈리아에서의 상조회는 19세기 중후반에 이미 상당히 많았다. Societa operaia di Torino는 1853년 이탈리아에서 설립된 최초의 소비자협동조합으로서 조합원들의 임금이 지닌 구매력을 지키기 위한 조직이었다. 그것은 상조회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었고, 이후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에서도 비슷한 소비자협동조합의 설립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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