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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2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832쪽 | 674g | 115*170*40mm
ISBN13 9788962609967
ISBN10 8962609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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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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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이주영
어릴 때부터 공포소설과 환상소설을 좋아했고, 자연스럽게 번역가를 꿈꾸게 되었다. 세계 지성들의 삶과 죽음을 다룬 에세이 『죽음을 그리다』, 할리우드 스타 마릴린 먼로의 어두운 심리를 그린 소설 『마릴린 그녀의 마지막 정신상담』, 극우 정당이 들어선 프랑스 사회를 상상하는 소설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문학이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원문을 왜곡하지 않으면
서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우리말로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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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릭은 파리로 돌아가 살 집과 써야 할 희곡의 줄거리, 그림의 소재, 앞으로 찾아올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처럼 선한 사람은 행복을 누리는 게 마땅한데 어째서 그 행복이 빨리 찾아오지 않는지를 생각하며 우울한 시구를 읊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갑판을 건너 배 한쪽 끝에 종이 매달려 있는 곳으로 갔다. 그때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승객과 선원들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서 어느 시골 여자의 가슴에 늘어져 있는 황금 십자가를 만지며 온갖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있었다. 곱슬머리에 활기가 넘치는 그 남자는 마흔 살 정도 되어 보였다.
--- p.11

그녀는 마치 낭만적인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 같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야말로 낭만 소설 속 여자 그 자체. 우주가 갑자기 넓어진 것 같았다. 그녀는 모든 것이 하나로 모인 찬란한 빛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흔들리는 마차에 몸을 맡긴 채 눈을 반쯤 감고 구름을 보며 달콤한 상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브레에 도착한 그는 말에게 여물을 먹일 시간도 기다리지 않고 혼자서 앞으로 먼저 걸어갔다. 아르누가 아내를 ‘마리’라고 불렀던 것이 생각났다. 그는 큰 소리로 “마리!”라고 외쳐봤으나 그 소리는 이내 허공으로 사라졌다.
--- p.25

데로리에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한가하게 잠이나 자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해! 두고 보라고. 1789년의 혁명 같은 것이 다시 한번 올 테니까! 헌법, 헌장, 잔재주, 거짓말, 모두가 지긋지긋해. 내가 신문이나 연단을 갖고 있다면 이 모든 것을 비난해댔을 거야. 하지만 뭘 시작하려면 돈이 필요해. 그런데 술꾼의 아들로 태어나 빵값을 버느라 청춘을 낭비하고 있으니 참으로 저주받은 놈이지.”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얇은 옷을 걸친 채 추워서 떨고 있었다.
--- p.37

그는 새로 산 공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첫 강의를 들으러 갔다. 모자를 쓰지 않은 300명이 넘는 청년들이 계단식 강의실을 꽉 채우고 있었다. 붉은색 교수복을 입은 나이 든 교수가 단조로운 목소리로 수업을 하고 있었다. 종이 위로 펜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교실의 퀴퀴한 냄새, 똑같은 모습의 교단, 여전한 지루함을 다시 느꼈다! 두어 주는 그럭저럭 보냈으나 3장에 이르기도 전에 민법은 포기했고 ‘법률상 인간 구분’ 부분에서 법률 요강도 덮어버렸다.
기대했던 기쁨은 전혀 없었다. 도서관의 책들을 거의 다 읽고, 루브르의 전시품도 전부 보고 공연도 여러 번 감상했지만 그런 다음에는 끝없는 권태를 느꼈다.
--- p.48

그는 피아니스트의 재능이나 병사의 얼굴에 난 칼자국이 부러웠다. 그녀의 관심을 끌 수 있다면 중병에라도 걸리고 싶었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이 있었다. 그건 아르누에게는 질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옷을 걸치고 있는 모습 이외의 다른 모습은 상상되지 않았다. 그 정도로 그녀의 정숙함은
타고난 듯 당연히 생각되었고, 그녀의 성은 신비의 그늘 속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함께 살고, 서로 말을 편하게 주고받고, 그녀의 가르마 탄 머리에 오랫동안 손을 얹거나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두 눈 속에 그녀의 영혼을 들이마시는 행복을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는 운명을 바꿔야만 했다. 그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자 신을 저주하고 비겁한 자기 자신을 탓하면서 죄수가 감방 안을 헤매듯 욕망 속을 방황했다. 끝나지 않는 고통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는 몇 시간이나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거나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p.139

갑자기 지난겨울 저녁이 생각났다. 처음으로 아르누 부인의 집을 찾아갈 때, 희망으로 가슴이 뛰어 이 다리 위에서 가던 길을 멈춘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검은 구름이 달 위를 스쳤다. 그는 달을 바라보며 우주의 위대함, 인생의 비참함, 모든 것의 허무함에 대해 생각했다. 날이 밝았다. 이가 딱딱 마주쳤다. 그는 잠에 취하고 안개에 흠뻑 젖어 눈물범벅이 된 채, 어째서 괴로움을 끝내지 못할까 하고 생각했다. 행동만 하면 될 텐데! 머리가 무거워지면서
자신의 시신이 물에 떠 있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는 몸을 굽혔다. 난간은 폭이 약간 넓었다. 난간을 뛰어넘지 못한 건 피곤하기 때문이었다.
--- p.153

겨우 3,000프랑의 연수입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렇게 계속 5층에 살면서 하인이라고는 문지기만 둘 수도 없었고, 손끝이 바랜 꾀죄죄한 검은색 장갑을 끼고 꼬질꼬질한 모자를 쓰고 1년 내내 프록코트를 입은 모습으로 그녀 앞에 나타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안 돼, 안 돼, 절대로! 하지만
그녀 없이는 살 수 없었다. 재산이 없어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데로리에가 대표적이었다. 별것 아닌 일을 갖고 크게 부풀려 생각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달리 생각해보면 가난하기 때문에 재주가 더 많아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다락방에 살면서도 열심히 공부한 유명인들을 생각하며 프레
데릭은 흥분했다. 아르누 부인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감동하여 따뜻한 위로를 해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의 불행은 행복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지진으로 땅속 보물이 솟아나는 것처럼 불운으로 인해 타고난 재주를 발견하게 될지도 몰랐다. 이러한 부유함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파리! 예술, 학문, 사랑(펠르랭이 신의 세 가지 얼굴이라고 말한)은 파리와는 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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