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름발이는 문 앞에 서서 전후좌우를 휘휘 둘러보더니, 아무도 보는 이가 없는 줄 알고 안심한 듯이 문 앞에 바싹 다가섰습니다. 그러자 대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한 사람이 내다보고 무어라 쑤군쑤군하는 것 같더니, 절름발이는 안으로 쑥 들어가고 무거운 문은 다시 굳게 닫혔습니다. “저놈의 집이 까닭이 있는 집인 모양이군!” 두 사람은 우두운 구석에서 뛰어나와 그 이상한 벽돌집을 두루 살피기 시작하였습니다. --- p.85
상호는 순자의 손을 잡고 “자, 어서어서!” 하고, 잡아당기면서 저편 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는 땅속 길로 통하는 구멍이 뚫여 있었습니다. “아무 염려 말고 내 뒤만 따라 오너라.” 상호는 앞에서 휘장을 헤치고는 머리와 허리를 굽혀 좁다란 구멍으로 기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순자도 오빠를 따라가는 기쁨에 무서운 것도 괴로운 것도 다 모르고, 오빠의 뒤를 따라 부지런히 기어갔습니다. (중략) 나가던 것을 멈칫 중지하고 몸을 웅크린 상호는, 어둠 속에서도 머리가 아찔하고 온몸에 얼음물을 끼얹는 것같이 저렸습니다. 공교롭기도 하지요. 이 땅속 길에서 머리를 맞부딪히게 되니, 이 노릇을 어찌 하겠습니까?
곡마단에서 자란 상호와 순자는 서울에 공연을 하러 왔다가, 어느 날 한 조선 노인을 만나 자신들이 조선 사람이라는 것과 친남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노인과 상호가 만나는 모습을 본 곡마단 단장은 서둘러 서울을 떠나 중국으로 가기로 한다. 그날 밤 상호는 순자와 함께 곡마단을 탈출하려고 하지만 순자는 탈출에 실패하고, 상호는 한기호라는 학생과 함께 순자를 되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으로 건너가 칠칠단의 소굴로 들어간다. 상호는 고난을 이겨 내고 순자를 빼내는 데 성공했으나 다시 곡마단 단장에게 잡히고 만다. 그 사이 한기호는 중국에 살고 있는 상호의 아버지를 찾아내고, 많은 조선인들의 도움으로 상호와 순자는 무사히 구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