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의 삶은 세간에서 짐작하는 종류의 화려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화려하다. 게다가 낯선 곳에서의 낯선 삶은 더없이 매력적인 덤이다. 지금껏 주로 정무를 맡아서 일했던 탓에, 업무상 알게 된 공적인 사항들을 책으로 펴내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겠지만 휴가 동안의 여행기를 엮어내는 거야 큰 흉이 될까 싶었다. 흉이라면, 좀 더 널리 보고 깊이 생각지 못한 것일 터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려 했던 것만을 본다. 여행기를 정리하며 문득 소망한다. 좀 더 많은 것들을 향해 내 눈과 가슴이 열리기를. --- p.7
[중동에서는] 정치 속에 종교가, 그리고 종교 속에 정치가 스며들어 있다. 사람들은 종교적 공동체의 언어로 일상생활을 한다. 안녕하세요?는 '아쌀람 알레이쿰'(알라의 평화가 그대와 함께), 잘 가세요는 '피 아만 일라'(알라의 평화 속에 가라), 글쎄요는 '인 샤알라'(알라의 뜻대로)인 것이다. 상투적 인사말이 아닌 대화에도 종교적 수사는 넘쳐난다. 마틴 루터나 쟝 칼뱅 이전의 서유럽 사람들의 언어생활도 그러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어쩌면 그런 의미에서만) 오늘날의 중동은 중세적 삶을 담고 있는 거대한 그릇이다. 사람들은 집에 있건 직장에 있건 공동사회Gemeinschaft에서처럼 행동한다. 대인관계는 전통사회의 풍습에 따라 규율되고, 사람들은 단순하고 솔직하게 직접 상대하는 관계를 맺으며, 이러한 관계는 감정과 정서의 표현들에 의해서 좌우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익사회Gesellschaft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최고급 핸드폰을 능숙하게 조작하고 주식시세에 관심을 갖는 중세인을 상상해 보라.
한국인인 나에게 이러한 삶의 방식이 아주 낯설진 않았던 걸 보면, 우리에게도 공동사회적인 특질은 많이 남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나는 미국에서보다 오만에서 쉽사리 정다운 벗들을 사귈 수 있었다. 아랍인들의 삶의 방식의 변화 속도를 매우 느리게 만든 제일 큰 원인은 어쩌면 이슬람이라는 종교보다 원유라는 자원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원인이 무엇이건, 아랍세계는 매우 느린 천이과정 속에 있는 저수지와도 같았다. 이제 세계화의 거센 해일이 이 둑을 허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갈등은 어떤 모습으로건 나타날 수밖에 없던 건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 문명사적 급변 사태는 빈부간의 다툼이라는, 역사와 전통이 아주 오랜 또 다른 싸움과 겹쳐서 벌어지고 있다. 아랍인들은(그리고 많은 비아랍인들도) 이 두 가지를 자주 혼동한다. 사람들은 오사마 빈 라덴이 예언자 모하마드의 후예이기보다 서구적 도시게릴라 운동가들의 후예라는 점을 자주 잊거나, 또는 짐짓 무시한다. --- pp.27-28
얼굴에 솜털이 있을 무렵 헤어진 삼총사가 이제 식솔들을 이끈 가장이 되어 고기집에서 소주잔을 나눴다. 이상하다. 오래 전에 사귄 친구들은 아무리 얼굴이 변해도 만나보면 그 옛날의 모습만 망막 속으로 쏙 뛰어 들어온다. 동창회를 하면 졸업하고 처음 만난 호호백발 할머니들도 서로 '어쩜 넌 하나도 안 변했니' 그러신다더니만…. 우리는 서로 살아온 얘기들을 나눴다. 옛 친구들을 만나면 기쁘고, 또 슬프다. 오래 전에 나누었던 우정이 떠올라 기쁘고, 막상 새롭게 나눌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슬퍼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슬픔은 쓰라린 종류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막막하고 어렴풋하면서, 조금은 달콤하기도 한 그런 슬픔이다. 추억 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없다. 막막하고 달콤한 이것을, 우리는 소주 안주로 삼았다. --- p.85
로버트 듀발은 성격파 배우다. 어떤 역할이건, 그는 늘 자기가 맡은 배역을 다른 누군가가 맡아서는 도저히 그렇게 소화했을 것 같지 않은 존재감으로 가득 채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연기로 영화를 압도하는 법이 없다. 눈에 띄려고 빨간 옷을 입고 결혼식장에 나타나는 신부의 친구 같은, 그런 연기를 하는 법이 없다고나 할까. 그런 그에게, 「Lonesome Dove」는 모처럼 제대로 깔아준 멍석이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가진 최상의 기량을 선보일 뿐만 아니라, 다른 배역들을 좀 더 생동감 있게 만드는 촉매 같은 역할도 해냈다. ... 「Lonesome Dove」가 선사하는 긴 여운을 한두 마디로 정리하려는 시도는 부질없다.
다만, 느닷없이 외계인이 나타나서 영어의 'frontiermanship'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드라마의 시청을 권해 주겠다. 무릇 프론티어 정신이란, 「Lonesome Dove」가 구현하고 있는, 소략하게 정리하기 어려운 정서의 몸뚱아리 전체에 가깝다. 어쩔 수 없이 '개척자 정신'이라고 번역되곤 하지만, 프론티어 정신은 산악인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 비슷하기도 하고, 연어가 고향으로 회귀하는 것과 정반대로 낯선 곳에 뼈를 묻는 역逆노스탈지아 같은 정서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미지未知에 대한 그리움'이라고나 할까. 영화 속에서 카우보이들이 죽을 고생을 하며 찾아왔던 몬태나. 비록 그곳을 나는 차를 타고 휙 지나가고 있지만, 내가 찾고 있는 것 또한 경계다. 변방이다. 스스로를 부수고 나아가야 할 저 너머의 어딘가다. --- pp.121-123
여행을 떠나기 전, 미국인 친구 앤디가 은근하지만 강력한 어조로 이 호텔을 추천한 덕분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말랑 자체를 여정에 포함시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하마터면. 나는 이 호텔에 투숙하고 나서 앤디가 말을 아끼는 친구라는 점을 새삼 느꼈다. 투구호텔은 내가 다녀본 호텔들 중에 가장 특색 있고 매력적인 장소였다. 이 호텔은 마치 미하일 엔데의 『자유의 감옥』에 묘사된 야릇한 공간 같았다. ... 벨기에를 여행할 때 브뤼헤에서, 방은 여남은 개뿐이지만 주인이 우리를 친척처럼 반갑게 맞아 주던 파트리시우스Patritius 호텔은 우리 외할머니의 식탁처럼 정갈했었다. 자동소총 소리 심난하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제일 오래된 호텔이라던 마르나 하우스Marna House는 옛 부호의 저택을 호텔로 개조한 곳이었다. 여행이란, 발자국을 객지에 남기는 일이 아니라 마음속에 남기는 일이다. 숙소를 잘 고른다면 일단 그 여행은 절반 이상 성공하는 것이리라.
--- pp.237-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