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다니시면서 아이를 셋이나 낳으셨네요. 계속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나의 질문에 인터뷰 상대방은 당황한 듯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뗐다.
“내 자녀 계획과 회사 일이, 무슨… 상관이 있나요?”
대답을 듣고 나서 한동안 나는 멍해져 있었다. 진심으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워킹맘, 그것도 아이가 세 명이라니… 정말 힘들겠다.’라는 나의 선입견을 보기 좋게 날려버린 순간이었다. --- p.008
하지만 정신없고 몸은 바쁜 가운데서도 뭔가 팽팽한 삶의 끈이 다시 조여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이 아닌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오롯이 내 능력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시간. 물론 일도 하고 집도 챙겨야 하니 할 일은 몇 곱절로 늘어나고, 너무 피곤해서 출근한 지 일주일 만에 체중이 2킬로그램이나 빠지기도 했다(그동안 쉬고 있던 머리가 갑자기 팽팽 돌아가느라 에너지를 많이 소모시킨 걸까?). 그러나 단순하게 ‘누구 엄마’가 아닌 ‘남정민 씨’라고 불리는 것 자체만으로 엔도르핀이 팍팍 돌고 활력이 샘솟는 느낌이었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바짝 생겼다고나 할까. 확실히 처음보다는 여유가 있었다. 어쨌든 두 번째 육아휴직 후 복귀 첫날, 낯선 환경에 긴장해서인지 집 생각도 잊고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3시 생방
송에 들어가기 직전에야 갑자기 아이들 생각이 났다. 두 아이가 눈을 뜨기도 전에 혼자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고 출근한 터라 둘 다 제대로 밥은 먹었는지, 큰아이는 셔틀버스 안 늦고 잘 등원했는지, 작은아이는 눈 떠서 엄마가 없다고 울거나 보채지는 않았는지…. 이런저런 걱정을 하던 찰나에 카톡 알람이 울렸다. 친정아빠였다.
‘애들 걱정하지 말고 회사 일에 전념해. 그 조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돼! 엄마, 아빠가 아이들 잘 돌봐줄 테니까.’ --- pp.026-027
실제로 주변 친구들을 만나보면 “요즘 세상 정말 좋아졌다.”, “요즘 워킹맘은 엄청 편해진 거지.”라고 말하는 상사들의 경우, 남성보다는 오히려 여자 선배들이 더 많다고들 한다. 60년대, 혹은 70년대 초반생의 여자 상사들의 경우 종종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본인의 과거 임신, 출산, 복귀에 관한 경험을 영웅담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고 보면 지금 후배들은 너무 엄살이야. 예전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어디 감히 ‘저 일 년 동안 애 키우고 회사 나올래요.’라는 말이 나와? 어림없었지.”라면서 예전의 환경이 안 좋았다는 얘길 하는 건지, 요즘 환경이 좋아진 게 배 아프다는 얘긴지 헷갈리게 말하는 여자 선배가 있다는 얘기를 듣노라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옛말이 절로 떠오른다. --- pp.049-050
이 회사 본사에서 근무하는 A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녀는 몇 년 전,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부터 출근 시간을 8시에서 9시 반으로 늦췄다. 출근 시간을 조정하니 아이들의 등원과 등교 준비를 챙겨주고, 유치원 셔틀버스를 타는 아이를 손수 배웅할 수 있게 되어서 아이도 만족하고 A씨 스스로도 마음이 더 놓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러시아워를 피해 출근을 하다 보니 아침 시간이 오히려 더욱 여유로워졌다. 그녀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시간에 쫓기듯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 출근길도 즐겁고 일의 능률도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이런 것은 A씨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인 셈이다. 늦어진 출근 시간을 활용해서 첫째뿐 아니라, 올해 유치원에 입학한 둘째 아이의 등원까지 챙겨주고 출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 첫째가 중학생이 되면 그녀는 가능한 업무 범위 내에서 재택근무를 신청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 pp.065-066
그때 가장 속상했던 것은 바로 ‘남들은 나를 그렇게 보고 있구나. 일 년 365일 동분서주해가며 회사에서 일에 몰입하고, 또 집에 돌아와서 애들에게 몰입하는 모습이, 그저 남들 눈에는 ‘자기 일한답시고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내팽개치는 무책임한 엄마’로 보이는 것이구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껏 남에게 잠시 아이를 부탁할지언정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적은 워킹맘이라서 먹을거리나 아이의 관심사, 발달 상황에 대해서 오히려 보통의 엄마들보다 더 신경을 많이 써왔다고 생각했는데, 기를 쓰고 살아온 것이 그 순간에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말을 듣고도 내가 일을 계속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분하긴 해도, 내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이 지껄인 말에 그렇게 신경 쓸 필요가 있었나 싶다. 그래도 당시에는 너무 속상했던 것이 사실이다. --- p.124
심지어 이런 계획 짜기 연습은 육아를 하면서 시기별로 들여놓을 책 리스트라든지, 이 시기에 꼭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두는 데도 도움이 됐다. 중간중간 유용한 정보를 얻거나 조언을 받을 때에는 계획표에 반영해서 조금씩 수정해나갔다. 말하자면, 나만의 육아 계획을 짜나갔다고나 할까?
그 덕분에 큰아이가 여섯 살이 된 지금까지, 주변에서 엄청난 양의 육아 정보들과 추천 도서 목록, 사교육에 관한 조언들이 쏟아져도 마음이 갈대같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 거쳐야 할 육아의 과정들은 아직도 길고 험난하겠지만,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래왔다고 자신할 수 있다.
물론, 육아와 정확한 범위와 과목이 정해져 있는 시험은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성공적인 복직을 위한 육아휴직 준비에 있어서만큼은 시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어느 정도의 답은 정해져 있다는 의미다. --- p.154
다만 엄마를 완벽히 대체할 수 있는 분은 사실상 없다는 전제하에, 처음부터 모든 면에서 완벽한 대리양육자를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본인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예를 들어, 음식 솜씨나 청결도, 정리정돈 솜씨, 아이와 적극적으로 놀아주기 등)이 무엇인지를 구인 전에 미리 생각해보자. 항목별로 우선순위를 매겨두고 구인 작업에 착수하면 적합한 분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우선순위는 아이의 연령이나 엄마의 근무 조건 등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가령, 돌봄이 우선시되는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은 가사 비중보다는 육아와 정서적 안정을 중시할 것이고, 기관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어 육아 업무가 많지 않은 집이라면 청소와 반찬 만들기 등 가사일의 비중을 높게 생각할 것이다. 또 엄마의 근무 시간과 출퇴근 시간에 따라서도 아주머니가 맡을 역할이 변할 수 있다. ‘선택과 집중’의 원칙이 이 부분에도 통하는 것 같다. 물론 사람을 대면하면서 느끼게 되는 엄마의 ‘감’도 무시하지 말자. 다시 말하지만, 엄마의 직감은 대부분 맞는 경우가 많다.
--- pp.192-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