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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 소년이 사라진 거리

문학과지성 시인선-363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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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7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30g | 128*205*20mm
ISBN13 9788932019796
ISBN10 8932019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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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이철성
1970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1996년 『문학과사회』 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으며, 시집으로 『식탁 위의 얼굴들』이 있다. 현재 극단 〈비주얼 시어터 컴퍼니 꽃〉의 대표로 다양한 대안 연극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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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 소년이 사라진 거리

거리의 비파 악사 소년과
북을 치는 어린 여동생
소년의 신들린 노래와 연주는
거리를 한순간 평정했다.
사람들은 입을 닫아걸고
거리는 숨겨진 귀를 열고
지긋한 할머니의 다리가 행려병자처럼 춤추고
주머니의 돈들이 춤추며
악사의 가방으로 들어갔다.
노래는 끝이 없고
눈 감은 소년의 연주는 끝이 없고
가슴의 귀를 열어버린 사람들은
성급히 돈 가방을 닫고 사라지는
소년의 날 선 눈초리를 보지 못했는가.
음악이 사라진 거리
사람들은 바람에 날리는 빈 봉지처럼 서 있다.
─중국, 카슈가르

--- p.27


시의 향기

때는 밝은 아침
새들이 푸른 하늘서 내려올 때
나무 그늘에 앉아 시를 쓴다.

시는 그림을 닮아
낮은 집들과
아름다운 문양의 창틀과
붉은 기와들을 그린다.

시는 음악을 닮아
마당을 뛰어가는 아이의 짧은 고함과
그 붉은 볼과
너른 들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떨어지는 사과의 시큼한 순간을
적는다.

시는 중심에서 피어나는 향내처럼
모든 것들 속에서 피어나고
너른 하늘에 가득하고
내 얼굴과 코끝을 쓰다듬는다.

시는 가난한 연필이 훑고 지나간
작은 일기장 위에 있다.
일기장을 덮으면
시는 마개로 닫힌 과일향이 된다.
시는 내일 아침 아내가 몰래 열어보기 전까지
배낭 깊은 곳에 놓여진 때 묻은 작은 일기장이다.
─그리스, 메테오라

--- p.50


지친 시 1

지친 몸
지친 마음
지친 시
펜이 끌어다 놓은 글자들이
머리칼 같고
지문 같고
줄 맞춰 널어놓은 빨래 같다.

--- p.101


딸아이의 시계

길고 긴 밤
짙고 검은 밤
잠결에 눈을 뜰 때마다
아이의 머리 방향이 바뀌어 있다.
밤새
모두 눈 감은 어둠 속에서
아이의 머리는 방향을 바꾼다.
시곗바늘처럼
검은 바다 위를 항해하는 돛단배처럼
별들의 우주를 헤엄치는 우주선의 방향타처럼.
땀에 젖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주의 시계에 자신의 시계를 맞추기 위한
그 끊임없는 노력을 안쓰러워하며
생각해본다.
생명이 우주를 듣는 소리
갈매기가 육지를 맡는 냄새
눈먼 수캐가 횃대에 올라 바라보는
우주의 시계.
길고 긴 밤
짙고 검은 밤
아이의 젖은 이마에 코를 박고 들여다보는
검은 바다
그 속에 떠 있는 작고 빛나는 물병
우주의 시간.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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