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찔러 죽이고 배를 갈라 내장을 송두리째 꺼낸 다음 휘발유를 뿌려 태운다. 마사키가 말한 것처럼 틀림없이 정상적인 인간이 한 짓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범인이 정상이라면 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흉악한 짓을 저질렀을까? 아니, 그보다……. “인간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는 걸까?” --- p.72~73
이제 곧 차는 ‘죽은 사람의 나라’에 도착한다. 그러면 유스케와 나는 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함께 ‘죽은 사람의 나라’ 안에 있는 어떤 장소로 들어간다. 유스케는 오늘도 거기서 나를 훈련시킬 것이다. 내가 배우고 싶다고 유스케에게 말한 그것을. 앞을 보지 못하는 내가 다누마 야스오를 죽이는 방법을. 유스케는 그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 방법이라면 다누마를 죽여도 절대로 내게 죄를 묻지 못할 거라고 했다. 남은 문제는 내가 그걸 제대로 해낼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실패는 있을 수 없어. 난 반드시 해내야만 해. --- p.326
“우연이 아니었어요.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20년 전 미즈사와 부부를 살해한 사람은…….” 사와다의 목소리에서 원통하다는 느낌이 묻어났다. “아마 그때 열 살이었던 야마세 겐일 겁니다.” --- p.371
“열쇠는 두 종류의 나물 무침입니다.” “어떤 것?” “미나리 무침입니다.” 마사키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미나리 무침에는.” 사와다는 다타라를 빤히 내려다보며 마사키에게 대답했다. “독미나리가 섞여 있었을 겁니다. 미나리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독초죠.” --- p.373
히류무라가 물에 잠긴다. 가와즈 유스케, 야마세 겐, 미즈사와 이즈미가 태어나 자란 산골 작은 마을이 거대한 댐 밑바닥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가와즈가 사랑한 잠자리들의 낙원 오쿠노사와도 신종 무카시톤보가 서식하는지 어떤지도 모른 채 깊은 물속에 잠겨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 p.400
“처음 간 곳에 있는, 처음 들어간 집 안에서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이 처음 잡은 석궁으로 사람을 쏘아 죽인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증명할 수 있겠나? 만약 ‘똑같은 집이 두 채 있어 다른 한 채에서 석궁 연습을 했다.’고 하는 비밀을 알지 못한다면 이즈미가 다누마를 죽여도 재판에서는 입증이 불가능해 ‘추정무죄’가 될 테지.” “이것이 야마세 겐이 세운 ‘완전범죄’ 계획이야.” --- p.503
유유스케를 죽인 뒤 내 마음속에는 분노가 들끓었다. 물론 다누마 야스오에 대한 분노였다. 다누마가 이즈미에게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유스케가 이즈미의 부모를 죽이지 않았으리라. 유스케가 이즈미의 부모를 죽이지 않았다면 유스케는 이즈미를 만나지 않겠다고 할 이유도 없었을 테고 신종 잠자리를 찾는 일에 평생을 허비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십 몇 년 동안 유스케의 대역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유스케를 죽일 일도 없었다. 모두 다누마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p.521
불현듯 머릿속에 아득한 옛날 풍경이 되살아났다. 그것은 유스케와 이즈미, 내가 본 ‘거대한 잠자리’의 모습이었다. 어느 날 새벽에 우리 셋은 각자 집에서 빠져나와 함께 산에 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용처럼 유유히 드넓은 하늘을 나는 거대한 잠자리를 보았다. 그래, 적어도 그 사실만은……. 그 거대한 잠자리가 가짜였다는 사실만은 이즈미에게 마지막까지 알리고 싶지 않았다. 우리 세 사람의 가장 소중했던 추억이니까. 그건 틀림없이 거대한 잠자리였다. 그게 우리의 진실이다. --- p.526
가부라기는 멍하니 앉아 사라져간 잠자리의 환상을 뒤좇았다. 그리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가와즈 유스케는 정말로 신종 무카시톤보를 발견했던 게 아닐까? 잡을 수는 없었다고 해도 그 환상의 잠자리는 평생을 걸고 자신을 뒤좇아온 가와즈 앞에 딱 한 번 그 모습을 드러내준 게 아닐까? 어쨌든 그 잠자리는 오쿠노사와에 살던 잠자리일 것이다. 그리고 물밑에 가라앉은 낙원을 슬퍼하며 미련이 남은 듯 히류댐 위를 날고 있었으리라. 가부라기는 그렇게 상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