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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손가락을 앓으면

생손가락을 앓으면

문학의전당 시인선-80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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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7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22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3481327
ISBN10 899348132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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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 가는 길

시나브로 등 뒤를 쫒던 파도소리 가랑비에 젖어 질척거렸다 어물전 꼴뚜기 제 살 베먹는 여자는 나이보다 더 삭은 검버섯 훈장 달고 굽은 삶보다 휘어진 칼을 휘둘렀다 울진 삼거리 어귀에서 영덕대게는 동해를 울컥 토하고 비릿한 청춘을 소모한 장명등이 눈을 감고 흘러간 유행가 가락에 젖었다

물살에 패인 모래밭에 등 떠밀린 소나무 군락들이 뱉어내는 통곡소리가 푸른 물결 밀어내고 휘청거리는 어깨를 가까스로 세우는 가마우지 떼의 날갯짓이 까맣게 흔들렸다 소나무 잎새 머리카락 듬성 빠진 듯 호젓하게 옷매무새 여미고 있었다

쓰러지는 들녘마다 소슬하게 태양처럼 익어가는 고추밭 서로 탐스런 살갗을 쓰다듬는 살찐 관능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길은 고개 너머 앞을 달리고 풍어제 붉은 깃발을 펄럭거렸다 정류소 옆 과일가게 싱그러운 토마토가 끓어오르는 욕망에 벗은 몸을 뒤척였다 노을에 젖은 포구 술 취한 사내들이 선창에서 일렁거렸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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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빛을 따라가면 김시월의 시에는 바람이 온 천지를 뒤덮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방에서 부는 바람으로 인하여 그녀의 시 세계는 귀를 찢는 소리와 온몸을 소름 돋게 하는 추위, 그리고 이것들을 아우르며 펼쳐진 스산한 풍경으로 가득 차 있다.
독자로서 그녀 시가 구축한 세계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왜 시인은 으슬으슬한 생세계를 그리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어보는 것은 당연하다. 왜 바람인가, 바람이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 실지로 그녀 시의 전반을 아우르는 이미지는 바람, 그것도 음습하고 스산하기 짝이 없는 바람이다. 그 바람이 그녀 시의 문맥을 붙잡고 휑뎅그레하게 불고 있다. 바람은 문장 속을 불어 다니며 그녀 시의 부호와 이미지에 구멍을 내어 불연속 속의 연속을 확실케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 시를 감상하기 위해 그녀 시의 중심부로 걸어가려는 사람은 그녀 시가 건설하는 바람의 나라를 헤쳐가지 않으면 안 된다. 바람이 부는 한가운데로, 바람의 힘에 밀려, 점차 바람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녀의 시를 이해했다고 할 수 없으리라. 그녀의 시는 저 깊은 의식의 심연에서부터 바람의 지평과 울타리를 갖추었을 뿐 아니라, 바람이 갖는 풍화의 힘에 그녀의 전 생애가 바스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로서 우리는 풍화의 힘에 소멸되지 않으려 애쓰면서 그녀 시의 방문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경복(문학평론가,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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