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4,50대 가장들 중 택시기사를 꿈꾸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 꿈이 좋아서 꾸는 꿈이 아니라 택시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함에서 할 수 없이 꾸는 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절박한 꿈인데도 불구하고 택시를 못하고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 내가 아무리 어렵지만 그 돈(백여만 원) 벌어서는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택시기사에게 물어봐도, 뉴스를 들어도, 주위에 물어봐도 12시간 중노동에 백여만 원!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또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사실이라는 것도 맞는 말이다.
택시기사는 머리를 굴리면 안 된다. 승객이 있으면 태우고 가자는 대로 가면 되는 것이다. 돈 되는 손님과 돈 안 되는 손님이 어울려야 돈이 되는 것이다.
장사꾼이 아침에 진상 손님이 왔다 가면 가게 앞에 소금을 뿌린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금을 뿌리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좋은 손님만 올까? 물론이다. 좋은 손님만 오라고 뿌렸으니까. 장사꾼은 그걸 믿는 것이다. 택시도 마찬가지다. 내가 친절하면 승객도 알아차리고 내 차를 탄다고 믿는 것이다. 세상에 즐겁게 일하는 사람과 믿고 확신에 찬 사람을 누구도 이길 수는 없다. 아침에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하면 하루가 잘된다는 것은 다들 경험해 본 일이 아닌가!
“어서오세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이 말만 할 줄 알아도 벌써 친절한 기사의 반열에 올랐음을 스스로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이렇게 택시기사 생활을 하고 집사람도 열심히 일해서 아들, 딸 시집, 장가 다 보냈고, 미국 유학 3년도 보냈으며, 10년 만에 빚도 거의 갚았고, 그 후론 손주들 유학 자금으로 매월 100만 원씩 저축도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택시기사 생활을 토대로 책도 쓰고 신문, 잡지에도 나오고 라디오, 텔레비전에도 출연하고, 강연도 몇 차례 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아마도 승객을 상대로 한 강연은 천 번이 넘을 것이다. 그래도 난 아직 목마르고,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난 지금도 청춘이고 청춘으로 죽을 것이다.
그는 녹음까지 하면서 진지한 태도로 경청하였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장애우들에게 내 강의를 들려주고 택시기사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해주고 싶다는 말과 함께 아내가 꼭 전해주라고 했다며 봉투 하나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 옴을 느꼈다. 나는 봉투를 열어 감사의 마음만 꺼내고 돌려준 후 천호동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다음날 새벽 5시. 정시에 출근한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선생님의 1호 제자입니다. 좋은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안전운행 하세요!’ 나는 그에게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줬지만 그는 내게 삶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진정한 스승은 내가 아니고 그였다.
나에게는 한 가지 장점이 있다. 바로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즐겁게 일을 할 줄 아는 장점! 똥 푸는 사람이 똥 냄새가 구수하다는데 그걸 누가 말릴 수 있을까? 맞아! 택시기사가 손님과 같이 놀러 다닌다는데, 그걸 누가 말릴 수 있을까? 하루 12시간씩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놀러 다닌다고 생각을 하자. 그 후로 나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 오로지 놀 뿐이다. 나와 같이 놀기 위해서 하루에 수십 명의 남녀노소가 손을 흔든다. 그들은 방황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나와 놀고 난 후의 일을 생각하고 그쪽으로 가면서 놀아주기를 원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여름에 더우나 겨울에 추우나 쾌적한 실내에서 세상구경하며 내 얘기를 듣고 자기 얘기를 한다. 나도 나지만 말에서 향기가 나는 사람들이 있다. 말투에서, 어휘 선택에서, 말의 흐름에서. 내용에서 각기 다른 향기가 난다. 외모와는 전혀 관계없이 순전히 말에서만 느껴지는 향기! 서로의 향기를 느끼며 헤어질 때가 되면 그들은 형편껏 놀아준 대가를 지불한다.
이렇게 노는 것도 일하는 것만큼 힘든 것 같다. 12시간을 놀았는데도 12시간을 일할 때와 같이 12시간을 자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일만 하는 일벌레가 아니라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인간이다!’라는 자기합리화에만 성공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주변에서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다른 택시기사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애쓰는데 너는 왜 놀기만 하냐는 것이었다. 사실은 이렇고 내막을 알고 보면 저렇다는 변명을 해봤자 손님들과 놀고 있는 것은 사실인지라 일도 해가면서 놀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 글 쓰는 일을 하자!’ 2년 전에 책 한 권을 낸 경험도 있지 않은가? 한 권 쓴 놈이 두 권 아니 열 권은 못 쓰겠는가! 그래서 나는 12시간을 놀고 12시간을 자면서 열 권의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12시간을 자는 것에 대해서는 쓸 말이 없지만 12시간을 논 것에 대해서는 쓸 말이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법인택시기사 12년차로 한 달에 삼백만 원 정도를 버는 필자는 택시기사도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는 직업임을 믿고 있다. 또한 아무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나이에 월 삼백만 원을 벌 수 있다면 좋은 직업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경제적인 문제를 떠나서도 택시기사란 직업은 매력적이다. 아무도 간섭하는 이가 없는 직업. 교통경찰만 빼면 무서운 사람이 없는 직업. 남의 돈으로 세상 유람할 수 있는 직업. 퇴근 후 일거리를 집에 가져가지 않는 직업. 다양한 계층의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직업. 이러한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택시기사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승객에게 친절하라는 교육보다는 친절해야 돈을 번다는 교육을, 승차거부 하지 말라는 교육보다는 승차거부를 안해야 돈을 번다는 교육을, 출퇴근시간을 지키라는 교육보다는 출퇴근시간을 지켜야 돈을 번다는 교육을.
‘기자님, 오늘 신문에 난 인터뷰 기사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우가 노력을 하면 수가 되고 작은 빗방울이 모이면 큰물이 됩니다. 좋은 예감이 듭니다. 진심입니다. 택시기사 이창우’ 나는 ‘세상의 모든 어려운 일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다.’는 신념을 갖고 산다.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필명을 이창수로 하고 싶다.
“아저씨, 죄송한데 제가 좀 급합니다. 가능하면 신경 좀 써주셔서 빨리 좀 부탁드립니다.” 하는 손님과 “아씨, 급하니까 좀 밟으셔.” 하는 손님, 심지어는 “한 번 쏴 보셔.” 하는 손님도 있다. 부탁드린다는 손님이 가장 급하고 쏴보라는 손님이 가장 한가하다는 것을 기사들은 다 안다. 특히 쏴 보라는 얘기는 같이 죽자는 얘기인데, 자기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수 있는 말인가.
“저기서 우회전이요.” “고맙습니다.”
“아니요, 여기 말고요. 조금 더 가서요.” “고맙습니다.”
“됐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차비는요?” “태워주신다고 하셨잖아요.”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