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세계 전체가 저절로 작동하는 하나의 커다란 기계이고, 인간 개개인은 그 속의 개개의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은, 인간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도, 통제하고 있지도 못한 상태에서 존재하고 작용하고 있는 현대의 과학기술이 빚어낸 이미지이다. 또,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미래에 인간이 하던 일들을 하나하나 로봇이나 컴퓨터 등의 기계가 해주고 인간은 점점 할 일이 없어져가리라는 식의 여러 공상적 예측들도 같은 종류의 이미지를 빚어 내어서, 그것들은 많은 경우 편리함이나 행복함에 대한 기대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감과 공포를 안겨준다. ---p.16
엉터리 과학지식을 앞세운 검은 상술이 활개를 치고,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괴담’이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증폭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 과학정신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합리적, 비판적, 개방적, 보편적인 과학정신이 일상화되지 못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적극적인 과학 대중화 노력도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괴담이 훨씬 더 강한 설득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p.24
“과학자의 오만은 무지에서 오는 오만만큼 위험하지 않다.” ---p.25
진리와 사이비, 문명과 야만간의 구분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면 하나의 과학보다는 다원적 과학, 그리고 과학만능이 아닌 다양한 지식과 가치체계들이 서로 소통하고 어울리는 그런 사회가 인간에게 더 바람직하다. ---p.29
우리는 무엇보다도, 과학중심주의에 내포돼 있는 인간의 오만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과학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오만함, 과학으로 인간에게 모든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오만함을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p.31
인류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역사상 가장 많은 과학적 발전을 이룩했고 인간 삶의 질은 급격히 향상됐다. 한마디로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물론 실제적인 응용에서 엄청난 진보를 이뤘다. 그러나 21세기는 보이는 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시대가 될지 모르겠다. 이것은 미래의 불확실함과 불안감, 그리고 과학주의의 부정적 단면에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다. ---p.36
과학이 발전하면 확실하고 단순하며 위험이 제거된 세계가 도래하리라고 믿었던 근대주의자들의 낙관은, 오늘날 우리가 원자력과 환경오염, 유전자조작 및 광우병의 예에서 보듯이 점점 더 불확실하고 복잡하며 위험해지는 세계 앞에 그 신뢰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p.38
‘근대성’ 논의에서 과학과 기술의 문제는 왠지 비켜나 있는 듯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국내의 자연과학자와 공학자들은 ‘근대성’ 논의가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근대적 과학과 기술은 비록 서구에서 먼저 생겨난 것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자연에 내재한 법칙을 반영하고 체화하였으므로 인류 공통의 보편합리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과학기술자들은 아직 계몽주의의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p.41
근대의 원리가 이성의 준칙에 따르는 합리성, 인간의 해방과 자유, 자율성을 보증하는 데 있음에도 이성은 그 전개 과정에서 수많은 역기능과 왜곡현상을 초래하였다. 그 원인을 아도르노는 물화(物化)하는 사유에 빠진 근대의 모순, 계몽의 변증법적 전개에서 찾았다. ---p.46
문제는 전통 과학기술을 시대적 역사성을 떠나서 현대의 과학기술과 단순 비교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전통시대의 기술들이 장인들의 오랜 세월 경험에 근거해 얻은 ‘슬기로운 지혜’라면, 현대의 기술은 과학적 이론에 토대를 두고 체계적인 기술혁신을 통해 얻어진 ‘과학적 지식’이다. ---p.48
세계화에 의해 추동되어 치달려온 과학의 상품화 추세는, 개방성과 공공성을 특징으로 해야 할 과학의 기본토대와 사회적 지지기반을 뒤흔드는 근본 위협이 되고 있다.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과학연구의 비밀주의, 상업적 연구 이외 분야나 다양한 과학적 견해를 억압하는 획일주의, 생명윤리와 환경정의를 희생시키고 이윤을 우선시하는 이기적 물질주의 등은 과학의 상품화가 초래하는 필연적 귀결이기 때문이다. ---p.53
장애인과 치매 노인에게 줄기세포 치료라는 신기루는 약속하지만 정작 현재 그들의 이동권과 복지에는 무관심한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생명과학이란 비싼 실로 짠 새 옷이 대부분의 장애인과 난치병 환자에게는 입어보지도 못할 부유층의 옷이 될까 걱정스럽다. 진정 빈자를 위한 과학은 현실에선 불가능한 꿈인가? ---p.65
첨단과학은 인류사회 전체를 변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첨단과학에 대한 적지 않은 두려움을 가지고 산다. 과학도 이제는 소비자 중심이 돼야 한다. 소비자 중심이란 국민이 과학기술에 대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일에서 출발한다. 과학자와 국민의 대화, 곧 과학대중화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p.82
풀뿌리과학운동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매우 가까운 것이다. 삶의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또는 뭇 사람들과 함께 해결하기 위해 과학을 찾아나서는 일만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없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과학연구에 엄청난 세금을 투자하고 있고, 그렇게 해서 생산된 과학지식을 우리의 개인적, 공동체적 삶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일만큼 유익한 것이 없다. 사이언스카페와 같은 풀뿌리과학운동을 생각해볼 때다. ---p.95
‘과학적 시민권’이란 사회 속에서 과학기술이 일으키는 쟁점들을 공론장으로 끌어들여 다양한 시민들에 의해 토론되도록 만들고 그러한 민주적 토론을 바탕으로 이들의 정책결정 참여와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을 뜻한다. ---p.97
인위적인 ‘영웅 만들기’를 통해 과학을 키우겠다는 국가의 야심은 잘못된 것이다. 과학자 스스로도 과학계의 검증보다 국가의 지원을 통해 영웅이 되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과학에서는 위대한 발견 못지않게 조작과 사기 논란도 종종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처럼 온 나라를 뒤흔들지는 않는다. ‘영웅 만들기’는 과학과 국가의 잘못된 결합이고 결국 핵폭풍의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다. ---p.105
황우석 박사에 열광했던 애국주의 과학은 민족주의적 과학정책 모델과 부합한다. 앞으로 한국 사회의 과학 기술화가 진전될수록 ‘민족주의적 과학정책’과 ‘민주주의적 과학정책’ 사이의 갈등은 더욱 뚜렷해지고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점점 더 널리 인식, 확산될 것이다. ---p.111
과학기술 관리의 또다른 길은 ‘과학기술 정보의 공개’와 ‘사회적 검증’이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의 내용만이 아니라 그 사회적 의미를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인류 공동의 지적 자원인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당위적 차원만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전략이다. ---p.115
‘지속 가능한 발전’은 지금 우리의 현재 욕구를 충족시키지만, 동시에 후속 세대의 욕구 충족을 침해하지 않는 발전을 의미한다. 또 지속 가능한 발전은 경제적 활력, 사회적 평등, 환경 보존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발전을 의미한다. 지금 지구의 전 인구가 선진국 수준의 풍요를 누리기 위해서는 지구 자원의 3배 이상을 소모해야 하는데, 이러한 발전은 지속 가능한 발전이 아니다. 결국 우리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능케 하는 ‘지속 가능한 과학기술’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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