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아이스크림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의 척도였다. 나를 칭찬하고 싶으면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바닐라 맛이야.’ 그녀의 손가락에는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하나는 피스타치오, 다른 하나는 바닐라, 세번째는 산딸기, 이런 식이었다. 아침에 인사를 하러 들어오면 나는 그녀를 무릎에 앉히고 손가락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며 말하곤 했다. ‘바닐라…… 피스타치오…… 레몬……’” ---「지루한 이야기」중에서
“이 시간이면 누군가 방에 들어올까봐 두렵고 갑자기 죽을까봐 두렵고 내 눈물이 부끄럽다. 전반적으로 내 영혼 속에 무언가 견딜 수 없는 게 있다는 느낌이 든다. 더이상 램프도 책들도 마룻바닥 위의 그림자도 거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도 참을 수가 없다.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나를 거칠게 아파트에서 끌어낸다. 나는 벌떡 일어나 서둘러 옷을 입고 집안의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살금살금 거리로 나간다. 어디로 가느냐고?
여기에 대한 답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머릿속에 들어앉아 있다. 까쨔한테로.” ---「지루한 이야기」중에서
“내가 아무리 많이 생각해도, 그리고 내 생각의 범위가 아무리 넓어도, 내 소망은 무언가 아주 중심적인 어떤 것, 대단히 중요한 어떤 것을 결여한다. 그걸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과학에 대한 나의 애착, 더 살고 싶다는 나의 소망, 낯선 침대에 앉아 스스로를 알려고 하는 시도, 이 모든 생각과 감정, 그리고 내가 삼라만상과 관련하여 정립하는 개념들에는 모든 것을 하나의 전체로 엮어주는 공통적인 무언가가 빠져 있다. 내 안에서는 감정과 생각이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아무리 능숙한 분석가라 할지라도 과학과 연극과 문학과 학생들에 관한 내 의견, 그리고 내 상상력이 그리는 온갖 그림에서 살아 있는 인간의 신이라 알려진, 혹은 공통이념이라 알려진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지루한 이야기」중에서
“어째서, 어째서 당신들은 나를 치료한다고 했지? 브롬화칼륨, 휴식, 뜨거운 목욕, 감시 감독, 내가 한모금 넘길 때마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안달복달하기, 이 모든 것이 결국 나를 멍청이로 만들 거라고. 그래, 나 미쳤었어. 과대망상증이 있었어. 하지만 그때는 즐거웠고 건강했고 행복했어. 나는 재미있고 창조적인 인간이었지. 지금 나는 좀더 합리적이고 좀더 튼튼하게 되었어. 하지만 그 대신 그냥 보통 사람이 되었어. 평범한 놈이 되었어. 사는 게 지겨워…… 아, 당신들 나한테 정말로 잔인했어!” ---「검은 옷의 수도사」중에서
“너무나도 평범한 이 말이 어쩐 일인지 구로프를 갑자기 당혹스럽게 했다. 그의 말은 모욕적이고 불결하게 들렸다. 이 무슨 몰상식한 인간들인가! 이 무의미한 밤들, 이 재미없고 따분한 날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광란의 카드 게임, 폭식, 만취, 늘 똑같은 수다. 불필요한 행동과 판에 박힌 듯한 이야기들이 세월의 가장 좋은 부분과 활력을 가로채가고 결국 남는 것은 꼬리도 잘리고 날개도 잘린 삶인데, 우리는 마치 정신병동이나 수인부대에 감금이라도 된 듯 거기서 도망칠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다니!”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중에서
“어쩌면 이 변함없음, 우리 개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 완벽한 무관심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지상의 삶과 중단 없는 완성을 약속해주는지도 모른다. 새벽의 여명 속에서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이는 젊은 여성과 나란히 앉아 있노라니 구로프는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바다와 산과 구름과 드넓은 창공이 그리는 동화처럼 아름다운 광경에 매혹되었다. 우리 스스로가 존재의 고결한 목적과 자신의 인간적 가치에 관해 잊은 채 생각하고 저지르는 일들을 제외한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중에서